기사 (1,40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이 동네서 다 탄광으로 다녔슈”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6> “이 동네서 다 탄광으로 다녔슈” 스물두 살에 왔응께 60년 살았쥬. 그 때는 집이 이렇게 좋지 않구 초가집 흙안케 동안케 하구 살았쥬. 여기 탄광이 크게 있어서 한참 때는 살기 좋았었슈. 먹고 살 사람들이 탄광에만 다녔응께. 석탄 많이 나왔쥬. 우리 집 양반 쉰다섯 살 그때쯤 그만 뒀슈. 이 동네서 다 탄광으로 다녔응께 큰 트럭에 탄 실고 길도 크고 좋았었슈. 인저 자꾸 무너지고 그러니께 그렇게 되더라구.여기서 밥 장사 했슈. 열다섯, 열일곱 명까지 했쥬. 조 방이 하꼬방 마냥 지었던 방이유. 지방 사람들하구 딴데서 온 사람들하구 저 방에서 잤다닝께. 그 때는 방값은 안 받구 밥값만 받았지. 우리 집 양반이 자기도 다니닝께 힘들게 일하는데 뭐하러 방값까지 받느냐구.여기가 가까우니께 딱 한 시간 점심시간 주거든유. 도시락 갖고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9 09:17 산재사고 당한 환자에게 나타난 천사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6> 금마면 인산리 김선옥 산재사고 당한 환자에게 나타난 천사 2008년 홍성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던 최상부(53) 씨는 고압선에 감전돼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고압선에 접촉된 신체의 일부만 훼손된 채 생명은 건졌다. 오른쪽 손가락의 살이 심하게 타버렸는데 곧장 서울 한강섬심병원으로 이송된 최 씨는 1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부위의 살을 이식해 손가락의 원형을 겨우 살렸을 뿐 오른손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다. 원치 않는 장애인 신세를 한탄하며 병실에 누워 있던 그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매우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아직도 40대 노총각이었던 그의 병실을 찾아와 극진히 간병하면서 구혼까지 했던 것이다. 그 천사의 이름은 김선옥(48) 씨, 지금 금마면 인산리에서 최 씨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2002년 한국에 연수생으로 왔지요.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8 09:16 스스로 움직여 할 수 있는 농사 큰 매력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1> 홍동면 팔괘리 박병용 스스로 움직여 할 수 있는 농사 큰 매력 청년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뜻하며, 20대 정도의 나이대에 속하는 남성과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청년의 범위가 확대돼 39세까지도 청년의 범위에 들어간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만 34세로 규정하며, 각 지자체의 청년귀농·귀촌지원정책 등에서는 39세로 규정된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백세시대를 맞이해 청년의 범위가 확대된 것도 있고 특히 시골에서 39세면 그야말로 젊은이다.지난해 1월 홍동면 팔괘리에 둥지를 틀고 젊은 농부가 되기 위한 수고로운 과정을 겪고 있는 박병용(38)씨는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으로 유기농 밭을 임대한다는 광고를 봤다. 그 길로 홍동면에 내려와 밭을 보고 내친김에 마을 어르신에게 근처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8 09:12 “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0> 금마면 월암리 문성휘 “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게는 로망이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삼아 멋진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꿈 말이다. 물론 풍경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뻐꾸기가 울고 밤에는 소쩍새가 ‘솟적다’라고 울며 올해의 풍년을 알린다. 사계절을 지나며 온갖 꽃들을 지천에서 보고 느끼며, 자연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내가 무엇을 해 준 것도 없는데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혜택을 준다.지난 2012년 금마면 월암리에 귀농한 문성휘(58)씨는 “아침에 일어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스팔트 위에서 태어난 문 씨는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45살에 명예퇴직을 했다. 아내 복명순 씨와는 상의도 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내려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7년을 아내에게 졸랐다. 물론 그 때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9 09:16 “청소년 상담, 그 간절함 속으로 달린다” 순간포착 미디어속으로<1> “청소년 상담, 그 간절함 속으로 달린다”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을 위한 상담·복지 지원광천읍을 출발점으로 홍성·홍북읍을 지나 8개 지역 담당해 화창한 6월의 햇살을 따라 남쪽으로 달려가 본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남부에 있는 광천읍. 광천읍은 충남 서부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동쪽은 장곡면과 서쪽은 은하면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보령시 청소면과 북쪽은 구항면과 연접해 있다. 광천읍은 당초 결성군 광천면이었으나 홍성군과 결성군이 통합하면서 홍성군에 편입돼 1942년에 홍성군 광천읍으로 승격됐다. 산악과 구릉지대로 형성돼 있으며 광천천을 따라 내죽평야, 상지천을 따라 상지평야가 자리하고 있다. 광천읍의 동남부에는 억새꽃이 장관을 이루는 충남의 제2봉으로 불리는 오서산(790.7m)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광천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한기원 기자 | 2018-06-08 09:07 주말에는 홍성지역 필리핀 커뮤니티센터 역할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5> 홍성전통시장 ‘안나마트’ 마일래 사장 주말에는 홍성지역 필리핀 커뮤니티센터 역할 안나중고폰마트, 홍성전통시장 내에 한국인 상점들 속에 자리 잡은 필리핀 가게다. 그러나 가게 안 매대에는 휴대폰을 찾아볼 수 없다. 필리핀 출신 마일래(28) 사장에게 물어보니 처음 시작할 때 주요 품목으로 중고폰을 취급했으나 지금은 판매하지 않고 식료품만 취급한다고 했다. 가게의 투명한 유리창에 코팅된 예전 상호 그대로지만 필리핀 출신 다문화가족들에게는 이미 유명해진 집결장소라 마 사장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물론 가게에 진열된 식료품은 한국산이 아니다. 전부 필리핀에서 수입한 것이다. 마 사장은 홍성군에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이 약 100명 정도 된다고 추산하면서 특히 주말이면 좁은 가게가 미어터질 정도로 찾아온다고 했다. 가게를 처음 시작한 것이 지난해 9월. 사업 초기부터 마 사장은 대박을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4 09:08 농사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9> 홍동면 구정리 이지운 농사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해 농사짓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해서 먹고 산다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읍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창업을 해도 되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에서 아이템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로 오고 있는 도시인들이 있다. 지난 2016년에 홍동면으로 귀촌한 이지운, 이지영 부부는 반려동물문화공간 리조트인 ㈜도기플래닛을 오픈하고 시골에 정착했다.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면서 반려동물을 어딘가 맡겨 놓고 가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고, 데리고 가자니 선뜻 반기는 곳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에게는 최고의 휴양지인 도기플래닛은 강아지가 수영할 수 있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3 09:03 “바느질해서 남은 건 등 굽은 거 밖에 없네요”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5> “바느질해서 남은 건 등 굽은 거 밖에 없네요” 우리 집 양반이 66살에 돌아가셨어요. 돈 한 푼 벌어주는 거 한 번 못 보고 호미 들고 일하는 거 한 번 못 보고, 그저 논다네. 친구들하고 고스톱 치고 맛있는 거 먹으러나 다니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서 항상 원망했어요. 세상 왜 그렇게 사나. 그러커구 애들 가르킬러니께 가난했거든, 돈이 있어야지. 내가 시집 오니께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상 나 그렇게 17식구가 한 집에서 살았어. 저기서. 그래두 방이 4개니까 좁을 줄 모르고 고생한 줄 모르고 그게 사는 건줄 알고 살았지.어른들 귀염 받는 재미로 어려운 거 모르고 살았어요. 그리고 우리 시누들이 지금도 동네서도 다 일러. 저 집 시누 같은 사람 없다고. 다섯 시누들 농이니 이불이니 다 내가 벌어서 시집 보냈어요. 시누들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2 09:06 “이놈의 딸기 어렵다, 어려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8> 홍동면 운월리 조영식 “이놈의 딸기 어렵다, 어려워~”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스스로 계획해 정직한 노동력으로 수확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바로 농부다. 손바닥한 만한 땅뙈기에 상추나 호박 등을 심어 나 혼자 먹고 사는 것이면 그리 큰 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콩 심어 콩 나오면 먹고, 못생긴 호박이 열리면 못생긴 대로 즐겁고 행복한 노동이다.그러나 농사가 직업이 되는 순간 몸이 힘들어지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수익을 내서 자식들을 키워내야 하고 다가올 노후도 걱정해야 한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겁 없이 농업에 도전장은 내민 사람이 있다.홍동면 운월리 은방울 딸기농원을 운영하는 조영식(38)씨는 2016년 7월에 홍성에 내려왔다. 전북 완주가 고향인 조 씨가 홍성에 내려온 것은 장인어른이 홍북에서 딸기 농사를 지어서다.“사실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7 09:04 한국말을 전혀 섞지 않는 교수법이 경쟁력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4> 위즈덤영어학원 윤제다 원장과 제네비이브 씨 한국말을 전혀 섞지 않는 교수법이 경쟁력 홍성읍 홍성초등학교 정문 주변은 학원이 밀집한 곳으로 홍성군에서는 비교적 뜨거운 교육열을 느낄 수 있는 동네다.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학원들로서 그 가운데 외국인이 운영하며 가르쳐 차별화된 곳이 위즈덤영어학원이다. 이 학원의 윤제다 원장과 제네비이브 강사는 필리핀 출신으로 모국에서 공용어로 쓰는 미국식 영어에 정통한 원어민이다. 두 사람 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결혼한 남편의 나라 한국에 와서 영어교육시장에 뛰어들었다.윤제다 원장은 2014년 처음 홍성에 와서 영어학원에 강사로 취업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위즈덤영어학원을 인수했다. 윤 원장은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누구든지 영어로만 소통해야 한다. 오히려 그 점이 위즈덤영어학원의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1 09:20 “가족농사만큼은 잘 지었습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7> 홍동면 구정리 문형규, 정은락 “가족농사만큼은 잘 지었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인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정해진 퇴근 시간이 아닌 야근과 철야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려니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살아보지만 그렇게 큰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아이가 한참 커가는 시간에 새벽에 출근해 야심한 밤에 퇴근하니 아이와 눈 맞출 시간도 없다. 그러다 어느 광고에서 봤듯 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말이 “또 오세요”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셋째가 태어났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도시에서 사교육비가 감당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콘크리트가 아닌 땅에서 키우고 싶었다. 지금쯤 직업을 한 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지도를 펼치고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서울과 가까웠으면 좋겠고, 춥지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0 09:17 “조은 선생이었다 그것만 기억하지, 뭐 가르쳤나 기억 못 해”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4> “조은 선생이었다 그것만 기억하지, 뭐 가르쳤나 기억 못 해” 여기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들어갔어. 그 때는 교육환경이 열악해 가마때기에 엎드려서 그 땐 책도 없었지. 책 한 권 나오면 그거 베껴서 그런 교육과정을 거치다가 6·25 사변을 만났지. 내 5학년 때. 맨날 북한 노래, 반공호 파는 게 일이었어. 6학년 때는 전쟁통에 선생님들도 어수선하고 거기서 6학년 졸업하고 갈산중학교 내가 2회로 들어갔지. 공부 해보니까 내가 공부 머리가 모잘라. 못 따라가. 부모님들은 기대 수준이 높거든. 그러니 난 갈등이 생기는 거야.갈산중학교에서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갈산으로 피신 온 미술 선생을 만났어. 그 때 6·25 사변 끝나고 인재만 있으면 선생으로 썼지. 발령이 없었어. 그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우는데 내가 다른 선생님한테는 다 못한다는 소리만 들었거든? 영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19 09:01 “우리가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6> 장곡면 산성리 박해증 “우리가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남 진의 ‘님과 함께’라는 노래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첫 노래가사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 살아가면서 철이 되면 밖으로 나가고, 여행을 다니는 이유다. 그저 관광을 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을 자연과 함께 하고자 도시를 떠나 시골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귀촌인들이다.그래도 귀농인보다는 조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은퇴 후 텃밭에서 생산되는 작물들로 생활하고 퇴직금을 조금씩 아끼면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원주민과의 심적인 갈등이 귀촌인들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13 09:24 결혼 늦었으나 예쁜 딸 얻어 행복한 3대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3> 김상진·다랏트 부부 결혼 늦었으나 예쁜 딸 얻어 행복한 3대 김상진(55)·다랏트(55) 씨, 두 사람 다 동갑내기로 나이 42살에 만나 결혼했다. 늦은 나이에 첫 임신은 실패했지만 그 다음 해에 가진 아기는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금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10살이다. 기자가 이들 부부의 가정을 방문한 날 딸 호연이와 어머니 이광예(83) 여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 광천읍 광천천 건너 원촌마을에서 삼대가 함께 산다. 그러나 이 여사는 처음에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시동생이 태국 처녀가 평택에 있다고 해서 같이 가 봤는데 나이가 너무 많았어요. 손주를 못 볼 것 같아 싫었죠. 그런데 아들이 선을 한번 보고 와서는 자꾸 호감이 가는지 자식이 안 생겨도 둘이 재미나게 살고 싶다며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이 여사는 기왕이면 매우 젊은 며느리를 봤으면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8 09:05 “시골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지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5> 장곡면 상송리 곽현정 “시골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지요” 땅을 밟고, 흙을 만지고, 지천에 널린 나물을 뜯어먹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행여나 작물이 손상될까 두렁을 기웃거리는 이 모든 일이 귀농을 하면서 겪는 변화 중 하나다. 물론 모든 것이 좋지만은 않다. 쪼그리고 앉아 밭을 매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다. 마을 어르신들의 잔소리도 들어야 한다. 당장 여유 있는 현금도 없다. 그래도…그런데 말이다, 마음만은 그지없이 편하다.37살이 되던 해 귀농을 결정했다. 여성민우회 생협에서 일하면서 생산직 출장을 자주 다녔다. 홍성도 그 지역 중 하나다. 귀농을 하게 되면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 당시 실직 상태였다. 그런데도 같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은 “시골은 돈 벌러 내려오는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시골은 돈 벌러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7 09:04 “조서방네 사각모자가 부러우냐, 전서방네 돈이 부러우냐?”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3> “조서방네 사각모자가 부러우냐, 전서방네 돈이 부러우냐?” 이 집이 흙집이라 여름에는 시원해. 150년 됐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여. 다 부수고 남아 있어도 이 기둥이 통나무로 사각네모지게 깍아서 했는디 우리집만 옛날거 그대로여. 이 밑에는 다 썪었어. 요기꺼정 방이여. 옛날에 여그가 주방이여. 조그가 아래 윗방이구. 요기서부터 조기까지 큰 마루였어. 내가 시집 와서 얼마 안 돼 가지구 단을 냈어. 옛날엔 암것두 아니었어. 저것두 시방 한 50년 넘게 됐네. 사람 안 살믄 금방 무너져. 여기서 아들들이라도 와서 살거믄 집 짓는데 그때는 7,8천만 원이면 졌지. 한 30평. 그런데 그렇게 지으면 여기 누가 와서 살어. 다 홍성서 기반 잡아갔구서 사는디. 안 와 살어. 우리 두 늙은이 살다가 가는 거지. 우리 할아버지 내 생일 때는 우리 집에 다 못 와.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6 09:03 귀농,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십시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4> 홍동면 홍원리 박정완 귀농,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십시오 사람은 평생 몇 개의 직업을 가질까? 어떤 이는 평생 한 가지 직종에 종사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매번 새로운 직업을 찾아다니기도 할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직업을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체를 써서 생산물을 얻어내는 농부라는 직업은 삶의 도전이다.홍동면 홍원리에 귀농한 박정완(52)씨는 귀농에 대한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귀농은 말 그대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귀농하는 사람들은 돌아갈 데가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 와서 농사를 짓는 것이니 그저 직업을 바꾼 것이다. 귀농한 사람들을 보고 전업농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귀농한 사람은 그저 귀농인이다. 마치 딱지처럼 말이다.”지난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9 09:02 서민들의 간식 따뜻한 붕어빵 가족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2> 광천터미널 부근 노점상 이명성·뚜엔티 부부 서민들의 간식 따뜻한 붕어빵 가족 광천읍버스터미널 부근 시장 초입에 30년 전통의 붕어빵 노점이 있다. 두루뭉술한 포장을 둘러 벽과 지붕을 만들어 하늘을 가리고 기계와 좌판을 차린 가게지만 붕어빵만큼은 근사한 이름을 가진 고급 브랜드의 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빵을 굽는 사람은 뚜엔티(26), 키가 자그마한 베트남 여인이다. 그러나 베트남 붕어빵은 아니다. 그녀의 곁에는 자상한 시어머니 성복자(67) 여사가 사부 역할을 하며 며느리를 최고의 빵장사로 만들었다.성 여사는 거기서 붕어빵을 판지 29년이 됐다고 한다. 처음 노점을 할 때만 해도 광천읍이 인구도 많았고 경제적으로 매우 번성할 때여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회고한다. 그 때 열심히 돈 벌었으면 빌딩을 하나 짓거나 근사한 가게를 얻어 장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04-23 09:30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3> 구항면 지정리 정규실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약 세 번 정도 변화를 맞는다. 신체적으로 성숙해가면서 겪는 사춘기, 40대나 50대 즈음에 겪는 삶의 전환기, 그리고 노인이 되면서 느끼는 변화다.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그러나 짧지만 긴 인생, 그런 변화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랴.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다. 대기업 직원으로 승승장구했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어 닥친 외환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웠고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49살이 되던 해 스스로에게 파업을 선언했다.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아내에게도 대놓고 말했다.“나 그대로 냅둬!” 원도 한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배신, 뒷통수, 거짓말들에서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자연과 같이 할 수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2 09:30 가슴 아픈 말을 내가 누구한테 하나?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2> 가슴 아픈 말을 내가 누구한테 하나? 참외 장사, 엿 장사, 못 헌 장사가 없어큰 딸 핵교도 못 보냈어 그것이 원이여자리나 잘 잡아놓구 나 좀 데려가라구 수룡고지서 시집왔지. 18살 먹어서. 우리 할아배와 내가 갑자생, 쥐띠여. 우리 어매가 사위 선을 보러 여기루 왔어. 아버지가 “어떻댜?” 그러니 어매가 “아이는 별스럽지 않드만서두 시어매가 하구 사는 게 깔끔해서 그냥 하기루 했다구.” 그런다네. 그러니 아버지가 “시어매가 데리고 사남?” 그러는겨. 나는 철 모르는 마음에 그런데로 시집 보낸다고 그랬어. 동짓달 시집 왔지. 눈이 얼매나 왔다구. 저녁에 드러눠서 잠도 안 잤어. 할아배가 나를 만지면 톡 쏘고 톡 쏘고 그랬어. 난중에 할배가 가끔 그 소리를 하대.내 동기간이 여동상 하나, 남동상 두울, 오빠는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04-21 09:02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132333435363738394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