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8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6> “할머니는 잠자리에서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아요.”유리는 한 박사의 방으로 다시 와서 과일 바구니를 들여다보면서,“아빠, 엄마가 먹고 있는 제주의 귤과 이것은 어느 것이 더 맛있어?”한 박사는 오랫동안 개업의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잠깐잠깐 자는 데는 익숙해 있었다. 적당히 취하고 잠도 오고해서 어머니와 딸과의 대화를 흘려 듣고 있었다. 그 때다. 머리맡의 전화벨이 울렸다.“선생님, 프런트의 김진우입니다. 조금 전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어, 아니 오히려 이쪽에서 신세를 많이 졌는데 과일은 뭐하러 보냈어요? 괜히 폐만 끼친 것은 아닌가 싶어서,”“또 전화 같은 걸 걸어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쾌히 승낙하셨다는 것을 형에게 전했더니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교육 | 한지윤 | 2018-05-16 09:03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5> “형수는 줄곧 기저귀를 차고 있다고 합니다.““어떤 병이라도 앓고 있던가요? 아니면 수술이라도?”“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랍니다. 나면서부터 줄곧 그렇다고 합니다.”“야뇨증은 아니겠죠?”“아닙니다. 낮이나 밤이나 차고 있다고 합니다.”한 박사는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기하게 생각지도 않았다.“보지 않고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지만 ‘루’라는 병이 있어요. ‘루’라고 좀 어려운 글자를 쓰지요. 발생하는 부위에 따라서 이름이 다른데 질과 그 접촉 장기 사이에 구멍이 생기는 수가 있어요. 만일 뇨도나 뇨관이나, 방광이 연결되면 뇨루라고 해서 소변이 새어 나오게 돼요. 직장과 직장 사이에 이상한 회로가 생기면 분루가 되지요. 좀 곤란한 병이지만 수술을 하면 대개는 좋아지는 경우가 많죠 교육 | 한지윤 | 2018-05-09 09:16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4> “한 선생님이십니까? 프론트의 김진우 입니다.”“어? 어‥‥‥”한 박사는 안심했다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대진으로 와 있는 그 천세풍 박사가 어떤 실수라도 했나 싶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제 개인의 일인데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의논드리고 싶었던 것인데 오늘 야근이라서 나와 보니 선생님께서 와 계시기에 전화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내일 아침이면 낮 근무와 교대가 되니 아침 일찍 전화하기가 곤란해서 이 시간에 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우는 한 박사와는 구면이다. 호텔맨답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단정한 용모인 삼십대 초반의 사람으로서 프론트에 있는 여러 사람 중에서도 선임자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진우는 한 박사에게 교육 | 한지윤 | 2018-05-02 09:24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3> 이어낸 듯한 창고인지 알 수 없는 곳에 소용없는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놓고 있었다. 한 박사는 이런 점에서 무관심한 편이다. 현관의 미닫이로 된 문을 밀어보았으나 고장난 문인지 열리지가 않았다. 한 박사는 힘껏 밀어서 겨우 열었다.“인천에서 온 이순실입니다. 안녕하세요?”어머니의 목소리에 안쪽에서,“네, 나가요.”힘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한 박사는 목소리의 매력이란 그 음정이나 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긴장감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조금 있다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의 손질도 제대로 하지 않은 전 여사가 남자가 입는 듯한 허름한 옷을 걸치고 나타났다.“미안해요. 감기가 들어서 누워 있었는데.”전 여사는 손으 교육 | 한지윤 | 2018-04-25 09:26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2> “자넨, 언제나 한가할 때쯤 되면 오네, 그려.” 며칠 휴가 다녀올 동안 대신 진료하기로 한 천세풍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박사는 농담을 했다. 한 박사는 온양으로 휴양차 갈 때에는 언제나 인천시내에 들려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간다.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둘도 없이 효성이 지극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마마보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인 이순실 여사는 일흔넷이나 되었는데 인천의 옛집에 그대로 혼자 살고 있었다.1주일에 한 번 정도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빨래나 집안 청소 같은 것을 도와주고 있었으나 그 외 다른 것은 혼자하며 살고 있었다. 항상 머리도 단정히 빗고, 옷도 점잖게 입는 깔끔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지주집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대가 집 마님 교육 | 한지윤 | 2018-04-18 09:20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1> 한 박사는 아내인 이윤미를 금이 간 유리그릇 같은 파손 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결정적인 어떤 행동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이윤미는 어떻든 유리의 엄마가 아닌가. 그러나 한 박사는 아내인 이윤미를 진심으로 아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서로가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독신과 별다른 큰 차이는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박연옥 여사가 ‘한 박사도 역시 독수공방 혼자 아닌가’ 하고 물은 것이고, 한 박사가 껄껄 웃은 것도 일종의 긍정하는 의사표시였던 것이다.금요일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기 시작했다. 병원은 임산부가 세 사람이나 연달아 입원을 했다. 요즘은 계획분만이라고 해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날이나, 사주를 미리 보고 와서, 좋다는 날짜와 시를 맞추어 분만을 시 교육 | 한지윤 | 2018-04-11 09:06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20> “오늘 서울로 돌아가십니까?”한 박사는 항상 첫 번째의 검사는 가능한 빨리 끝내기로 하고 있었다. 불임증 환자들은 처음은, 누구나 성적인 요소를 타인 앞에 털어 놓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검사를 실시해 가는 동안 아이를 만든다는 것은 마치 목공예나 봉제와 꼭 같은 일상적인 순서를 밟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자들이 느끼게 되고 나서부터는 한 박사와 격의 없는 대화를 예사로 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의 변화를 한 박사는 느긋하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서울과 이천 두 곳에서 번갈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서툴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이웃 사람들과 도예를 같이 즐기고 있지요.”“좋은데요. 난 낚시를 좀 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 낚싯대를 메고 나서는 것 뿐 이었지만.”“요트는 즐 교육 | 한지윤 | 2018-04-04 09:04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9> 그 후부터 한 박사는 환자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주의하여, 상대가 어떠한 관계인지 이야기할 때까지는 지레 짐작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검사를 받으신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한 박사는 부인인 이서영에게 물었다.“네, 벌써 15년 전인데요. 그 후에는 전혀 진찰을 받지 않았어요.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고 탓하기 보다는 서로의 책임이랄까, 운명이랄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고 주인어른이 말씀하시기에 저도 그렇게 생각하며 줄곧 살아왔습니다.”“그 때는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받았던가요?”책임이니 운명이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한 박사는 이럴 때에는 아주 사무적인 문답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오래된 일이라서 잊어버렸지만 그 때 조직검사를 한다고 들은 것 같아요.”“렌트겐은? 교육 | 한지윤 | 2018-03-28 09:41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8> “육신을 말하는 건가요?”한 박사는 좀 비꼬는 듯 말했다.“처음은 선생께서 관여하는 것은 육신의 문제뿐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자세히 음미해 보면 정신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은 것 같군요.”“글쎄요.”한 박사는 글라스의 술잔에 입술을 적셨다.“그런 말을 하시니까 생각이 나는데, 병원을 개업한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일이었죠. 하루는 경찰서에서 호출이 왔어요. 이 근방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해서 좀 개화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게 많았습니다. 그 때가 아마 밤 9시쯤 되었을 걸요. 한 잔하고 얼큰해 있을 때였습니다. 비가 오는데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순경의 뒤를 따라서 나섰지요. 한 30분가량 걸었나 어두컴컴한 후미진 집 구석방에 갓난애가 죽어 있었어요. 산모는 교육 | 한지윤 | 2018-03-20 09:09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7> 이 남편 되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정자감소 증에 걸려 있었다.“댁의 바깥양반의 정자는 수도 적고 술에 취해 비틀비틀하고 있는 것이 현미경으로도 보이는군요.”하고, 한 박사는 임신이 되지 않는 원인을 설명했더니 다른 사람 것이 더 좋겠지만 구하기가 힘들 것이므로 선생님 것으로라도 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주문이었다.“자, 다 됐어요.”박 여사가 큰 쟁반에 간소하지만 소복하게 담은 몇 개의 반찬과 밥을 가지고 왔다. 밤참인데도 남자들은 밥과 국을 몇 공기씩이나 먹었다. 신부에게 맛있는 반찬을 모두 빼앗겼다고 한 박사가 불평을 늘어놓자 마테오 신부는 멍청하게 있는 쪽이 잘못이라고 말을 받았다. 박 여사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한 번 더 김치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한 박사는 신부를 마음에 교육 | 한지윤 | 2018-03-14 09:00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6> 마테오 신부의 말이었다.“금슬이 좋거나 나쁘거나 이 세상엔 좋은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박 여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한 박사가,“잠깐,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해요. 이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 하나도 없다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이 나쁘면 끝이 좋고, 처음이 좋으면 끝이 나쁘고‥‥‥”그 때 마테오 신부가 박 여사를 잠시 바라보다가,“누님이 별장에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쓸쓸한 곳이라고는 정말 몰랐습니다. 역시 이 집은 바깥어른의 추억이 구석구석 배어 있어 팔지도 않고 이렇게 혼자 살고 있는 셈이군요‥‥‥ 안 그래요?”박 여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글쎄, 여기 있는 현재의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 그래도 행복했던 과거가 아름답게 회상이 교육 | 한지윤 | 2018-03-07 09:43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5> 어머니는 새파랗게 질렸다. 어떻게든 중절이라도 해 달라고 수원의 병원 의사에게 매달렸으나 거절을 당했다고 했다. 부탁이라는 것은 한 박사에게 어떻게 수술을 좀 해줄 수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나도 거절을 했습니다. 첫째 하나의 생명체를 죽인다는 기분으로 수술을 해 준다 하더라도 6개월 태아라면 적어도 하나의 생명체로 거의 형체가 이루어져 있는 셈이죠. 7개월이면 인큐베이터(미숙아를 넣어 기르는 보육기)에 넣어 적어도 기를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의미에서든지 좋은 일은 결코 되지 못하는 겁니다. 고등학생으로 엄마가 된 것도 문제죠. 결국 무리를 해서 태아를 긁어내는 짓이므로 출산보다는 오히려 몸에 큰 지장이 있고, 또 아이는 7개월의 미숙아로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므로 양쪽 모두 좋지 못 교육 | 한지윤 | 2018-02-28 09:02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4> “아직 내 질문에는 대답해 주지 않았잖아. 인간 생명의 시작은‥‥‥”“누님은 언젠가 내가 중절수술을 태연하게 해 치우고 나자 비난스럽게 말 한 적이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생명을 죽이고 있다고 느껴 본 적은 없어요.”한 박사는 차츰 기분 좋게 알코올 기운이 오르고 있었다.“중절수술을 하면서 왜 그런 실감이 들지 않을까?”“어째서 라고 하면 다소 설명하기가 곤란하지만‥‥‥ 2,3개월까지의 태아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째서 우리들 의사에게는 그런 실감을 주시지 않는지 신의 존재가 있다면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걸요?”“왜, 어째서 그럴까? 한 박사는 결코 둔감한 분이 아니실 텐데 말이야. 수술 중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어떻게 마술사처럼 민첩하게 수술을 해 내느냐 이것뿐인 걸요? 교육 | 한지윤 | 2018-02-14 09:32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3> “의과대학에 가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산부인과를 전공하게 되면 당연히 그런 수술을 해야 된다는 것쯤 각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마테오 신부가 말했다.“아, 그래서 왜 산부인과를 택했느냐는 질문이신 것 같군요. 그건 내 스스로가 선택한 것입니다. 난 손 끝이 재빠르고 육감적인 센스가 빠른 편이죠.“한 박사는 얼굴에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의과대학 시절, 어떤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수술은 눈으로 보고한다. 중절수술만은 특별히 센스가 빠르게 돌고 손끝이 재빠른 놈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내게 제법 적성이 맞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지요.”한 박사의 대화는 곧잘 이런 투가 많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알맞게 둘러서 말하기 때문에 박연옥 여사나 다른 누구도 교육 | 한지윤 | 2018-02-07 09:06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2> 한 박사는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면서 낯선 자가용이 한 대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형으로 고물에 가까운 구식 자동차였다. 박 여사가 타는 자가용은 물론 아니었다. 벨 소리에 박 여사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한 박사는 꽃다발을 내밀면서,“늦었습니다.”하고 말했다.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오늘은 한 박사에게 소개해 줄 분이 벌써 와 계셔.”안경을 낀 삼십대 후반의 체격이 다소 왜소한 듯한 남자가 박 여사의 뒷편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렇게나 구겨 입은 바지에 투박한 쉐타 차림이었다.“마테오 신부님‥‥‥”박연옥 여사가 그를 나에게 소개했다.“이번에 항도성당의 주임신부로 왔지. 이 신부님의 누님이 나하고 대학동창생이야.”박 여사가 계속 말을 이 교육 | 한지윤 | 2018-01-30 09:46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1> 부족한 나머지 돈은 지금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과 대지를 은행에 담보로 넣어 겨우 병원이 세워진 것이었다.한 박사는 그 때가 마침 신혼 시절이었다. 병원의 개업과 하나밖에 없는 딸 유리의 출생은 불과 1개월 정도의 사이를 두고 겹쳤었다. 그 당시 그들의 살림집이란 다소 초라한 집이긴 했으나 한 박사는 병원 건물만은 병원답게 꾸며서 의사로서의 꿈을 살리고 싶었다.입구에는 환자 대기실을 겸한 원형의 홀을 만들고 2층과 3층의 남쪽 창문은 멀리나마 바다가 보이도록 할 계획이었다. 한 박사는 병원이라는 곳은 밝으면 밝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얼마 후 아내인 이윤미 씨는 자유분방한 성격 탓으로 곧잘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해외에도 구실을 붙여 종종 나가곤 했다. 더욱이 그녀는 점괘에 광적으로 교육 | 한지윤 | 2018-01-24 09:04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10> 이 간호사가 붉은 색 리본으로 묶은 한 묶음의 꽃다발을 가지고 와서 한 박사의 가슴 앞에 내밀었다.“아침에 드리고 싶었는데‥‥‥ 오전 중에 시간이 없어서 어머님께 부탁을 한 것이라서‥‥‥”“고맙군. 이렇게 생각해 줘서‥‥‥”그 날 저녁 7시 30분까지 누님의 친구인 박연옥 여사의 집에 가기로 약속한 한 박사는 생일 선물로 받은 꽃다발의 절반을 갈라 가지고 갔었다.간호사들이 생일 축하로 준 꽃다발은 흐드러질 정도로 양이 많았다. 꽃잎이 탐스럽게 작은 대신에 줄기에 힘이 있는 이러한 꽃들은 도시의 꽃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꽃이었다. 거의 야생으로 자라난 꽃송이들이었다. 따뜻한 지방에서는 1월부터 남향의 산기슭 등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계절 어느 때나 무슨 꽃이든 볼 교육 | 한지윤 | 2018-01-17 09:20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9> “하기야 오십 대의 사람입니다만 정성스레 불공을 드렸더니 그 덕분으로 아이를 얻었다는 일도 있긴 했지요. 십삼 년만이라고 하면서 퍽 좋아하더군요. 외동아들을 얻은 것이었습니다.”“선생님은 그런 일들을 믿으십니까?”“글쎄요‥‥‥ 부처님께 불임증의 치료를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불공도 기도도 좋다고 보는 편입니다.”“양자를 맞아들이면 시샘으로 임신을 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만 양자라도 들여 보라고들 하던데‥‥‥”“그건 나로서는 반대입니다. 임신을 하기 위해 양자를 들인다는 것은, 만일 부부 사이에 정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양자로 들어온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저도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교육 | 한지윤 | 2018-01-10 09:35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8> 현미경을 통해서 관찰된 임신중 씨의 정액은 그러나 살아 있는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시야 가득히 죽음의 정적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마리 정자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절망적인 상태였으나 한 박사는 솔직하게 이러한 사실을 환자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왜, 무엇 때문이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그는 단지 환자들에게 불성실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의사로서 그 순간 타인이 이해하지 못할 고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임씨 부부와는 여러 차례 면담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정도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파악하게 되었다. 한 박사는 그러한 짐작에서인지 두 사람은 마치 남매나 되는 것처럼 얼굴이 서로 닮은 데가 많은 부부처럼 보였다.부인인 신수경 씨도 교육 | 한지윤 | 2018-01-03 09:00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7> “문주희씨! 문주희씨! 끝났어요‥‥‥ 들려요?”나간호사가 말하자 환자는 졸린 듯한 목소리로,“네.”하고 겨우 대답하긴 했으나 아직 마취된 상태에서 의식이 또렷해진 상태는 아니었다.옷을 고쳐 여며 주고 축 늘어진 환자를 옆방의 안정실로 힘이 센 이나미 간호사가 옮겼다. 이나미 간호사는 워낙 힘이 센 여자라 사람 한 명 정도는 거뜬히 들어 올리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문주희씨가 수술을 받고 나간 다음에 곧 이어 들어온 환자는 안경을 낀 남자였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앞머리가 벗겨져 가고 있었다.차트에 이름이 임신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한박사는 직감적으로 오늘이 목요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인천에 새로 생긴 백화점의 판매과장직을 맡고 있는데 목 교육 | 한지윤 | 2017-12-27 09: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