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매처럼 벽공(碧空)을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氣像)을 가실 수는 없는가
상태바
우리는 왜 매처럼 벽공(碧空)을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氣像)을 가실 수는 없는가
  • 김세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15.02.06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7>

 

▲ 박용순 응사가 매사냥 공개시연을 하고 있다.


시절이 태평하여 농사나 즐기는 장사(壯士)는/식솔을 이끌고 기린협 골짝으로 떠났네/내린 눈 녹지 않은 지난겨울 언젠가/매를 끌고 동쪽 고을 지평현을 지났다는데. -박제가(1750~1805)가 벗인 백동수(白東修,1743~1816)를 그리며 지은 회인시.

“아침에 햇볕을 받는 곳은 저녁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핀 꽃은 먼저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운명의 수레는 격렬하게 구르며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사나이 대장부의 가슴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이 있어서 건곤도 좁아 보이고 우주도 내 손바닥에 있는 듯 가볍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정약용(1762~1836). <학유에게 주는 교훈>

다산 선생은 또 형님인 정약전(1758~1816)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자란 모름지기 맹금이나 맹수같이 사납고 살벌한 기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주물러 부드럽게 교정해 법도에 맞도록 만들어야 쓸 만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선량하기만 한 사람은 단지 자기 혼자 착하게 사는 정도에 맞을 뿐입니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기상이 높은 인물들은 귀한 모양이다.

응방(鷹坊)은 고려와 조선에서 매사냥을 위해 설치했던 기구다. 응방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변했으나 고려와 조선 시대 매사냥을 위해 설치된 관공서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군주들이나 왕들은 매사냥을 매우 좋아했다. 호연지기의 스포츠와 오락이라는 측면 외에도 군사적 이용의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사냥은 고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숙신족)들이 시작해 중동과 유럽으로 퍼졌다고 한다. 특히 왕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국의 샤를 마뉴 왕은 매 훈련사를 양성했고 프러시아 프리드리히 왕은 매사냥에 관한 책을 저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나라의 천조제는 매사냥에 빠져 나라를 망쳤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다.

 

 

 

 

 

▲ 해동청의 꿩사냥.

 

 


해동청(海東靑)이라고 불린 우리나라 매(송골매)는 몽고나 중국 왕실에서 선호했다. 우리나라 매사냥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사강목(東史綱目)》 등에서도 나타난다. 고려 충렬왕,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 연산군 등도 매사냥을 크게 즐겼다고 한다. 일본의 풍신수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매사냥을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이 많다.

“해동청은 천하의 좋은 매지만 새벽을 알리게 한다면 늙은 닭만 못하고, 한혈구(汗血駒)는 천하의 좋은 말이지만 쥐를 잡게 한다면 늙은 고양이만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닭으로 사냥을 하고 고양이로 수레를 끌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홍명(1592~1650), 《기옹만필(畸翁漫筆)》

매사냥은 화약·총포의 발명 이후인 17세기부터 급속히 쇠퇴, 명맥 보존이 어려워진 상태다. 민요에 등장하는 수진이, 날진이, 산진이, 보라매 등은 사냥에 쓰인 매들을 가리킨다. 사냥 맹금류의 종류는 매, 바다매, 북극매, 황조롱이, 참매, 새매, 검독수리 등 다양했다.

보라매-태어난 후 둥지를 떠난 지 6개월 이상이 지나 스스로 사냥을 할 수 있을 때 잡아 길들인 매./산지니(산진이)-산에서 1년 이상 스스로 자란 매./수지니(수진이)-사람의 손으로 집에서 1년 이상 길들인 매나 새매. 주로 꿩 사냥에 이용./초진이-1년 이상 2년 미만의 참매./재진이-2년 이상 지난 참매./날찐-야생의 매./수할치-매 사냥을 하는 사람./장산곶매-황해도 해주, 백령도 일대의 매. 장산곶매는 사냥을 나가기 전날 밤에 자기 둥지를 부수면서 부리를 날카롭게 갈아 출전(出戰)의 결의를 다질 정도로 용맹하고 총명하다. 황석영(1943~) 선생의 소설 《장길산》의 첫 부분에 매우 인상적인 장쾌한 묘사가 나온다./낙상매-어릴 때 공중에서 어미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낙상해 다리를 다친 매. 이런 매는 자라면서 더욱 사납고 억센 매가 되어 자신의 열등함이나 결함을 보충한다. 따라서 가장 우수한 사냥매가 될 가능성이 커 최고의 진상품으로 대접을 받았고, 금테로 발찌를 해 보통의 사냥매들과 구별하기도 했다.

 

 

 

 

 

 

 

 

▲ 김홍도의 '귀인응렵'.


매는 시력이 매우 뛰어나다. 사람의 경우 시상세포가 20만 개 정도인데 수리와 매류는 150만개 정도의 시상세포가 있어 사람보다 7.5배 정도 시력이 낫다고 한다. 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조삼래·박용순이 공저한 《하늘의 제왕 맹금과 매사냥》(공주대학교 출판부 2008년 출판)이 매우 유용하다. 매사냥의 역사부터 매의 훈련· 사육 등 알찬 자료들을 집대성하고 있다.

“내 가슴 속의 시인이 나와 함께 신비의 땅을 가로질러 간다. 우리는 여전히 천년의 꿈을 꾸는 사냥꾼일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계산과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근심하는 탐미주의자들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 관한 모든 것이 알려질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에드워드 윌슨.《지식의 대통합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서울:(주)사이언스북스.2005), pp. 408~409)

사냥과 관련해서는 밀렵(密獵)과 동물학대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성행하는 밀렵은 여러 가지 형태의 동물 학대 중 가장 극악한 사례다. 야생에 대한 살생과 무자비한 파괴행위다. 특히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이 밀렵의 인기 품목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밀렵의 정확한 규모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돈벌이 수단이 되는 밀렵은 중죄(重罪)다.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생물을 죽인다는 점에서는 어린이 유괴살해와 다를 바 없는 극악한 행위로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맹수에 의한 인간의 피해는 대부분 일방적으로 과장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찾고 있는 것이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 그 자체임을. -파스칼(1623~1662)
일부 국가에서는 야생동물의 사냥을 상당한 금액을 받는 대가로 허용하기도 한다. 스포츠 사냥을 무작정 반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하루 일당 10달러를 받는 원주민들이 코끼리 사냥에 대거 동원되는가 하면, 사자 한 마리가 300달러에 불법 거래되기도 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맹수의 경우 일정한 보호구역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인명과 가축의 희생을 막기 위해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일부에서는 맹수나 동물을 ‘해충’과 같이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법과 원칙, 관례, 적절한 규제를 지키는 사냥이 필요하다. ‘함정수사’ 하듯이 유인해서 사냥을 하거나, 대량 살상행위는 사실상 밀렵과 다를 바 없다. 입장료 등 수렵 참가비용을 대폭 인상하고, 상당 부분을 동물의 생태 연구비 지원이나 환경보호기금 등에 기부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수입 증대를 위해서는 야생동물의 사냥보다는 사파리 운영 등 관광이나 즐기는 레저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에서는 레포츠 명목의 사냥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즐거움을 위한 살생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동물옹호자인 톰 리건(Tom Regan)은 《동물 권리를 위한 변론》(1983 출간)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서는 안 되는 폭력적이고 모멸적인 일은 모든 동물에게도 가해서 안 된다며 축산업, 동물실험, 사냥 등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상황 외에는 동물의 생명을 박탈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도 주장의 핵심이다.

오색(五色)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이 사람의 귀를 귀머거리로 만들며, 오미(五味)가 사람의 입을 망가지게 하고, 말달리기와 사냥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노자

말을 달려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동문선(東文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