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아름다운 자연서 살고파 홍성으로 왔죠” “아름다운 자연서 살고파 홍성으로 왔죠” “도시는 화려하지만 고독합니다. 농촌은 단조롭지만 풍성함을 누릴 수 있죠. 도시에서만 오랜 기간 살아온 저에게 농촌에서의 삶은 선물과도 같습니다.”내포문화숲길 하영진 홍성담당의 말이다. 하 씨는 지난 2011년 1월 홍성으로 귀촌해 올해로 6년째 살아가고 있다. 하 씨는 고향인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오랜 기간 도시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어린 시절 종종 방문했던 외갓집이었어요. 시골인 외갓집에서 방학동안 생활하곤 했던 기억들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 언젠가는 농촌에서 생활하겠다는 소망이 있었죠.”하 씨는 지난 2010년 두 아이가 각각 다섯 살과 세 살이던 때, 농촌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연고도 없는 홍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9-29 17:01 건강한 땅에서 맛 좋은 복숭아 생산한다 건강한 땅에서 맛 좋은 복숭아 생산한다 “1997년도에 10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귀농을 하고 얼마 뒤에 IMF가 바로 터지더라고요.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가업이었던 과수원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지장골 복숭아농원 강태환 대표의 말이다. 강 대표의 집안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숙부 등 일가 대부분이 과수업에 종사했다. 사촌들은 가업을 이어 대부분 과수원을 운영했으나, 강 대표는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게 됐고, 우연찮게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사촌형이 1년에 5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도 퇴직금이 몇 천 만원에 불과한데, 과수원을 통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9-22 17:23 고향으로 귀어하며 새 희망을 찾다 고향으로 귀어하며 새 희망을 찾다 서부면 남당리 입구에 위치한 ‘벌써소문난집(대표 김원예)’에는 특별한 자매가 있다. 장혜선, 장미선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향이 서부면 남당항인 자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식당일을 도우고 있는 ‘귀어인’이다. 자매 중 언니인 장혜선 씨를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동생인 미선이가 저보다 먼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미선이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죠. 그러던 중 매스컴을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됐고, 저희 식당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식당 간판에도 미선이 얼굴이 새겨져 있으니까요. 저는 천안에서 생활을 하다가 2014년 고향으로 귀어를 하게 됐습니다.”혜선 씨는 아이를 낳게 된 것이 결정적인 귀어의 계기였다고 말했다. 부모님, 가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9-05 10:58 귀농 위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죠 귀농 위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죠 “서울에 살다가 귀농을 결심하며 먼저 전북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홍성으로 오고 싶었지만 워낙 경쟁이 심하고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지인이 있던 남원으로 향하게 됐죠. 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내다가 인연이 맞지 않아 다시 충남 공주로 향하게 됐고, 1년 정도 후 결국 제가 오고 싶었던 홍성으로 오게 됐습니다.”귀농인 이연진 씨는 벌써 홍성에 정착한지 7년이 지난 홍성의 농부다. 상하중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이 씨는 20대 후반부터 귀농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 결정적으로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하며 귀농에 대한 마음을 굳히게 됐다.“아이의 성장 환경과 교육을 위해 귀농을 결심했지만, 농사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귀농을 해서 다른 직업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농사를 짓고 싶었죠.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8-18 17:01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홍성에 온 지 2년 정도가 됐습니다. 원래 산을 좋아하고 자연 암벽등반을 즐겼는데, 홍성에 오면서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최근 홍성에서 클라이밍센터를 열게 돼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습니다.”홍성클라이밍센터 김희정 대표의 말이다. 고향이 부산인 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까지를 줄곧 부산에서 보냈다. 김 대표가 산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대학 새내기 때 산악부 동아리에 가입하면서부터다.“산악부라고 하니까, 산에 가서 모닥불 피우고 기타 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하는 줄 알고 덜컥 가입을 했죠. 그런데 처음 방문한 산에서 암벽 등반을 시키더라고요. 산에 가다보면 바위 길도 만날 수 있는데 돌아갈 수 없으니 오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때부터 암벽과의 인연이 시작됐습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8-05 09:09 “농촌의 치명적인 매력, 알리고 싶죠” “농촌의 치명적인 매력, 알리고 싶죠” 서울에 거주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조대성 씨. 평소 먹거리와 농사, 대안적 삶에 관심이 많았던 조 씨는 2010년 1월 귀농을 결심하고 홍성으로 내려오게 됐다.“첫째 아이가 6개월 무렵 귀농을 하게 됐습니다. 1년 정도 농사를 준비했고, 풀무학교 전공부를 알게 됐죠. 유기농업을 가르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전공부에 입학해 공부를 했고, 정민철 선생님과 함께 젊은 협업농장을 시작했습니다.”조 씨가 젊은 협업농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젊은 귀농인들을 위해서다. 정착 기반도, 자본도 없이 무작정 농촌과 맞닥뜨리는 젊은 귀농인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그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전공부 졸업생들이 뜻을 모으게 된 것이다.조 씨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젊은 협업농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지난해부터는 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7-21 14:24 진정한 삶의 행복 느끼게 해 준 귀농 진정한 삶의 행복 느끼게 해 준 귀농 “홍성으로 내려올 때 가장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안정적인 소득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농업으로만 성과를 거둬 기쁜 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홍동면에 거주하는 이상철 귀농인의 말이다. 이 씨는 지난 2012년 귀농을 한 상대적으로 ‘새내기 귀농인’에 속한다. 하지만 이 씨의 농사실력이나 소득은 결코 ‘새내기’가 아니다. 지난 2014년에는 1억원이라는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에도 7~8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홍성에 오기 전까지 경기도 일산에 거주했습니다. 저는 중소기업들의 서버관리를 하는 일을 했고 아내는 은행원으로 근무했죠.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했지만, 첫째 아들이 생활에 찌든 것 같은 모습을 보며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귀농을 결심하던 해 이 씨의 아들은 초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7-08 15:33 생활 속 작은 부분부터 환경운동 실천하죠 생활 속 작은 부분부터 환경운동 실천하죠 “일산에서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매장활동가로 근무하다가 홍성에 내려오게 됐습니다. 농사를 전혀 모르던 때 조금은 감상적 차원에서 귀농을 하게 됐죠. 벌써 13년이나 흘러, 이제는 거의 원주민이라 봐도 무관하겠네요.”곽현정 귀농인의 말이다. 곽 씨는 귀농을 한 뒤 농사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됐다. 농사는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곽 씨는 농업의 가치를 가슴 속 깊이 느끼며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이 아닌 맨땅의 흙을 밟을 수 있는 홍성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초창기에는 농사가 어렵고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이 안 돼 취직을 했습니다. 풀무학교 전공부에 잠깐 근무하고 아동센터에서 복지교사 활동을 하기도 했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농사에만 전념하고 있습니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7-07 14:26 진정으로 건강한 먹거리 위해 땀 흘립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먹거리 위해 땀 흘립니다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을 다녀온 뒤 농사를 짓게 된 ‘세아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기농) 농장’ 임영택 대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는 임 대표에게 어찌 보면 ‘귀농인’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귀농 선배인 이환의 씨는 임영택 씨를 ‘진정한 의미의 귀농인’이라고 여기고 있다.“결혼할 때 아내에게 ‘나 농사지을 건데 같이 농사짓자’고 청혼했죠. 그렇게 스물넷에 결혼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절대 반대하며 저희를 쫓아내셨죠.”임 대표의 아버지는 농업과 관련해 많은 교육을 받은 ‘선진 농업인’이었다. 때문에 임 대표는 다른 분들은 자식이 농사짓는 걸 반대하더라도 아버지만큼은 아니리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다. 그럼에도 임 대표는 꿋꿋하게 농사를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6-17 16:22 농촌의 소중함과 가치 무엇보다 중요하죠 농촌의 소중함과 가치 무엇보다 중요하죠 지난 2008년, 태어난 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난 갓난쟁이를 품에 안은 조미경(46) 씨는 홍성 땅을 처음 밟았다. 남편인 이재혁(38) 씨가 농업을 배워보고 싶다는 말에 그녀도 함께 홍성으로 귀농을 하게 된 것이다.“홍성에 오기 전엔 서울에 살았죠. 사실 처음엔 농촌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농업을 배우고 싶다며 2008년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하게 되면서 함께 홍성으로 오게 됐습니다.”조 씨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문득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도시에서 부부의 삶은 팍팍했다. 맞벌이를 해야만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고, 아이는 분명 각종 기관과 공간을 맴돌며 답답한 도시 생활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조 씨는 남편의 결정을 따르면서 자신과 아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05-19 10:37 "여성들이 농촌에 많이 들어와야 농촌이 살아요" "여성들이 농촌에 많이 들어와야 농촌이 살아요" 한눈에 보아도 농사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여성, 그러나 다부진 모습의 맹다혜(장곡면 행정리. 33) 씨는 행복해 보였다. "원래 고향은 경기도 인천이예요.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께서 작은 밭농사를 지으셨어요.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어깨 너머로 농사일을 배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 입시다, 취업이다, 아니면 그저 멋이나 내고 그럴 때 저는 그냥 땅이 좋았어요. 땅을 일궈 거기서 뭔가 수확을 한다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문을 연 다혜 씨는 마치 여고생같이 해맑고 순수한 모습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여 한 학기 정도 대학을 다녔지만 도무지 대학 생활에 흥미를 느낄 수 없어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고 스무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최선경 기자 | 2013-01-07 16:50 처음처음이전이전123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