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농촌에 많이 들어와야 농촌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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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농촌에 많이 들어와야 농촌이 살아요"
  • 최선경 기자
  • 승인 2013.01.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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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아도 농사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여성, 그러나 다부진 모습의 맹다혜(장곡면 행정리. 33) 씨는 행복해 보였다. "원래 고향은 경기도 인천이예요.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께서 작은 밭농사를 지으셨어요.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어깨 너머로 농사일을 배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 입시다, 취업이다, 아니면 그저 멋이나 내고 그럴 때 저는 그냥 땅이 좋았어요. 땅을 일궈 거기서 뭔가 수확을 한다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문을 연 다혜 씨는 마치 여고생같이 해맑고 순수한 모습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여 한 학기 정도 대학을 다녔지만 도무지 대학 생활에 흥미를 느낄 수 없어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고 스무 살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부모님께선 반대를 심하게 하셨다. 그래도 다혜 씨는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예산에 소재한 귀농학교 간사로 취직해 2년 정도 근무하다가 자신의 힘으로 직접 농사를 짓고 싶어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에 입학하여 3년의 정규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영농후계자 자금과 창업농자금을 지원받아 27살에 처음으로 복숭아 과수원을 임차하여 손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맨 처음 홍성에 와서 복숭아 과수원을 시작했는데 맘처럼 쉽지 않았어요. 제가 처음부터 키운 나무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중간에 임차를 한 것이라 병충해도 많았고 결국 재미를 못 봤죠. 몇 상자 따지도 못한걸요. 농사일을 너무 만만히 본 셈이에요. 손해는 봤지만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다혜 씨는 예산 귀농학교에서 일하던 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교육생이었던 남편은 귀농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나이차가 무려 14살이나 난다. 서로 꿈꾸는 세상이 같아 함께 그 길을 가기로 했다.

정착할 곳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장곡면의 땅값이 비교적 싸고 토양도 좋아 논을 사서 그 곳에 하우스 2동을 지었다. 그리고 오이맛풋고추 재배를 시작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 내려와 젊은 여자가 하우스에서 고추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동네 어르신들이 다들 미친 짓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첫해엔 정말 재미있었어요. 땅이 없다가 내 이름으로 된 땅이 생긴 것도 좋았고, 내 이름이 박힌 상자에 직접 가꾼 고추를 넣어 가락시장에 상품으로 출하했을 때의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5년 사이 2동이던 하우스가 18동으로 늘어났고 작목도 방울토마토로 바꿨다. 올해는 태풍 피해로 생각보다 수확이 좋지 않다. 게다가 태풍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 면사무소, 농협, 군청을 오가며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상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는다.

"어느 날 농사일을 하다 속상하고 힘든 점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공감하고 격려해주는 댓글들이 막 달리는 거예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안을 받은 셈이죠. 이제는 SNS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의 하나가 됐어요" 다혜 씨는 앞으로 귀농하는 젊은 영농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다고 한다. 올해에는 하우스 2~3동을 인근 귀농한 가족에게 임대해주고 함께 농사일을 할 계획이다.

"혹시라도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땅은 대출로 구입해도 되지만 시설 같은 경우 지나친 대출은 위험해요. 왜냐하면 시간이 갈수록 땅값은 오르지만 시설비는 계속 떨어지거든요. 실패하게 되면 결국 시설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됩니다. 지자체의 보조금제도나 저리영농자금 활용 등을 이용하고 처음엔 시설비가 덜 들어가는 작목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다혜 씨는 여성농업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무수히 많다고 늘어놓는다. 순치고 수확하고 판매하는 작은 일들과, 제품으로 만들어 블로그 등을 통해 직거래해서 성공하는 대부분이 여성들이라며, 귀농지원이나 후계농업인 신청도 여성농업인들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여성들이 농촌에 많이 들어와야 농촌이 살아난다는 게 다혜 씨의 지론이다.

농사를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농사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싶지는 않다고 고백하는 다혜 씨. 지나치게 일만 하다가 몸을 망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여유를 갖고 도시에서 발견할 수 없는 나름의 행복을 찾아 즐기려고 노력한다. 남편과 함께 낚시를 하거나 저녁이면 집에서 키우는 개 말라뮤트 종 '곰'과 '왕건' 두 마리랑 산책을 한다. 케니크로스대회(일종의 개썰매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할 정도로 곰이와 왕건이는 베테랑 선수견이다. 다혜 씨의 농장 이름이 그래서 '곰이네 농장'이다. 농사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현저히 적은 요즘, FTA다 뭐다 해서 여전히 농촌은 어수선하지만 꿋꿋하게 미래를 향해 작은 희망을 키우며 살고 있는 여성농업인 다혜 씨가 몹시 자랑스럽다. 제대로 된 농업정책이 세워져 지금처럼 환하게 웃는 다혜 씨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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