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귀어하며 새 희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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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귀어하며 새 희망을 찾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09.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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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사람들의 아름다운 도전 홍성의 농부로 희망을 일구다 ⑧
남당항 벌써소문난집 장혜선 씨
▲ 장혜선 씨가 싱싱한 대하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부면 남당리 입구에 위치한 ‘벌써소문난집(대표 김원예)’에는 특별한 자매가 있다. 장혜선, 장미선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향이 서부면 남당항인 자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식당일을 도우고 있는 ‘귀어인’이다. 자매 중 언니인 장혜선 씨를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생인 미선이가 저보다 먼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미선이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죠. 그러던 중 매스컴을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됐고, 저희 식당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식당 간판에도 미선이 얼굴이 새겨져 있으니까요. 저는 천안에서 생활을 하다가 2014년 고향으로 귀어를 하게 됐습니다.”

혜선 씨는 아이를 낳게 된 것이 결정적인 귀어의 계기였다고 말했다. 부모님, 가족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좋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성수기와 비수기에 관계없이 식당일을 전천후로 돌보며 활약 중이다.

자매의 어머니 김원예 씨는 20여년 간 식당을 지켜왔다. 원래 외삼촌 소유였던 낡은 건물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 김 씨는 억척스럽게 자리를 지켜왔고, 지금은 2층 건물을 신축해 번듯한 식당으로 일궈냈다. 혜선 씨의 동생인 미선 씨의 역할도 한 몫을 했다. 매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미선 씨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미선이가 TV에 출연했던 때가 2010년이었습니다. 당시 고속도로 IC에서 남당리까지 차가 줄을 섰는데 거의 전부 다 저희 식당을 찾아올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희 식당 이름이 ‘미선이네’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몇몇 분들은 다른 식당에 가서 ‘미선이네가 어디냐’ 묻기도 했고, 그 식당에선 ‘여기도 미선이 있다’며 농담을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지금도 미선 씨를 보기 위해 식당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니인 혜선 씨도 식당에서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식당일이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동생들은 어릴 때도 식당일을 돕곤 했는데, 저는 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 내려온 해에는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갈등을 겪기도 했죠. 그래도 지금은 주변에서도 잘 한다고 칭찬해주실 만큼 많이 발전했습니다.”

혜선 씨는 식당일을 돕고 있지만, 엄연히 어촌에서 나고 자라 다시 돌아온 귀어인이기도 하다. 혜선 씨는 농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이 많지 않은 어업의 경우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농업은 귀농인들에 대한 혜택도 많고 지원도 많은데 수산 쪽은 상대적으로 적어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이곳에서 생활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혜선 씨와 미선 씨 외에도 한 명의 여동생과 남동생이 더 있는데, 대학을 다니는 남동생 역시 주말이면 식당을 찾아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 있다. 특히 대하와 새조개가 유명한 남당항은 전국의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정신없이 바빠 온 가족이 식당 일에 나선다.

“오는 9일이면 대하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맛있는 대하를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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