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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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7>
  • 한지윤
  • 승인 2017.02.1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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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게다가 건강이 나빠 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실업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식생활은 되겠지만 그래도 생활은 궁색해지기 마련인 것이었다.
“용서를 빌어야겠지……작은 아버지한테 찾아가서 용서를 받는 게 어때요? 이제 이렇게 아이들까지 있고 한데 차마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우……”
연숙이는 우울했다.
“넌 서울에서 뭘 하고 있지?”
하고 은주가 질문을 하자 연숙이는 새삼스레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녀 자신도 역시 아버지와 싸우고 영영 헤어지듯 하고 서울로 나왔다는 사실을 회상하자, 그리고 은주와는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우연의 일치에 연숙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가문에는 반항 기질의 나쁜 혈통이 흐르고 있는 모양이야. 넌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으니 그래도 사정이 낫겠지……”
은주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은주는 오늘 간호사에게서 남편의 치료비 지불 독촉을 받고 더욱 암담해 있었던 것이다. 다음 주에 실업보험금이 나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당장 돈이 없어,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러 갔었지만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연숙아 얼마 있을지……만나자 마자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지만……한 3만원만 빌려 줄 수 없을까? 무리하지는 말고……”
연숙은 빌려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본 기억으로는 아주 자존심이 강했던 은주언니가 저렇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연숙은 눈물이 날 듯 했다. 그러나 연숙 자신도 자기 문제조차 해결 못하고 있는 터가 아닌가. 도와 줄만한 여유가 아직 없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어깨를 기우뚱 거리며 사람들 사이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연숙은 난생 처음으로 돈의 절실함에 가슴이 저렸다.
“돈……돈……돈……”
하고 연숙이가 중얼거리자 소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부모님은 돈이란 것은 절대로 빌려서는 안 되는 것 이라고 말씀하지지……”
“왜?”
“인간관계의 방해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 사람이 돈이 꼭 필요한 것 같으면 차라리 그냥 줘 버리라는 거지.”
연숙은 초조했다.
“나도 돈 같은 건 없지만……”
하고 소영이가 중얼거리고 나서, 불현 듯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정도의 돈은 일을 한다면 벌 수 있지 않아? 한 번 그렇게 해볼까, 내일 밤에……”
“내일 밤에?”
연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일 밤에 돈이 생기는 아르바이트 구멍이라도 있니?”
연숙이는 한 두 차례 소영이를 따라 명동에 있는 ‘돈’이라는 살롱에 가 본 적이 있었다. 그 살롱에서 최근 맥주회사의 주최로 ‘누더기 콘테스트’가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 콘테스트에 참가해 만약 1등을 하게 되면 50만원의 상금과 한 박스의 맥주를 상품으로 받는다고 소영이는 설명했다.
“너, 콘테스트에 참가할 생각이야?”
“그래. 너도 좀 도와주고 네 사촌언니도 좀 도와주고……남은 돈으론……어쨌든 신나는 일 아니니, 얘?”
소영이는 성악을 하고 있는 작은 어머니에게 물어 보니 옛날에 입던 이브닝드레스의 낡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최고급 인조견으로 만든 이브닝드레스였는데 오래 되어 낡아 세게 잡아당기면 물 묻은 창호지처럼 간단히 질질 뜯어질 것만 같았다.
“뭣에 쓰려고?”
미주알고주알 물어보고 싶어 하는 작은 어머니를 속이고, 하여튼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하는 고마운 한 마디 승낙이 떨어지자 소영이는 드레스를 집으로 가지고 와 콘테스트에 참가할 옷을 만들기에 착수했다. 헌 헝겊 쪼가리를 이어 붙인 것을 이용하고, 머리장식은 총채의 끝을 꿰매서 얹었다. 가슴과 어깨는 터놓았다. 낡은 유도복을 잘라 만든 스투울. 그리고 아가리를 쩍 벌린 구두를 신고 말라 비틀어져 꺼칠꺼칠하게 흉칙한 꽃다발을 들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는 볼 만한 넝마주이 같지 않으므로 이브닝드레스의 무릎 위의 부분을 찢어 속살이 그럴 듯하게 보이게 했다. 소영이는 어렸을 적부터 예의 바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지를 않았었으므로 무릎과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 쪽의 각선미와 피부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경연대회 날이 가까웠다. 소영이와 연숙은 대회장인 ‘돈’살롱으로 나섰다. 경연규칙에는 절대로 대회장에 도착해서 참가할 옷을 갈아입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고 되어 있다.
‘누더기 콘테스트’의 목적의 하나는 노동자들이 입고 다니는 누더기 옷은 사회의 건전한 모습이며 자랑으로 생각해야 할 옷차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가게 되면 행인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아무리 돈이 생기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소영과 연숙의 심장이 결코 강철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영은 레인코트를 걸쳤다. 일단 그것으로 누더기 옷차림은 감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발은 감출 수가 없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입을 딱 벌리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군화가 행인들의 눈을 끌었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소영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소영은 머리에 총채의 넝마 쪼가리를 이용한 장식을 붙이고 비쩍 말라 뼈다귀 같은 꽃다발을 꺼내 들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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