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홍성 서부면에서 가장 큰 어항과 상권 자랑 홍성 서부면에서 가장 큰 어항과 상권 자랑 서부면 남당리는 하나의 법정리로서 전체 가구 340호, 주민 650명이다. 올해 5월 서부면 전체 인구가 3426명으로 집계된 점을 감안할 때 남당리가 약 20%의 비중을 차지한다. 행정리로는 소도, 내동, 남당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이 남당이다. 남당은 240호, 5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홍성군 서해안지역 자연부락 중 가장 큰 어항과 상권을 가진 어촌으로서 경제적으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특히 천혜의 서식지를 가진 천수만에서 잡히는 대하와 새조개가 널리 알려져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서해안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젊은이 많고 경제활동 활발남당마을은 전체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40%, 나머지 60%가 상업에 종사한다. 농업인 중에 어업을 같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31 09:04 관정 물로 짓는 농사 오랜 가뭄에 지하수도 바닥나 관정 물로 짓는 농사 오랜 가뭄에 지하수도 바닥나 홍동면에서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원천리 세천마을은 구항면과 광천읍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뒤 야트막한 산이 감싸 안고 있는 형세로 왕복 2차로 지방도인 광금남로 63번길에서 보면 아늑한 모습을 연출한다. 지금은 53가구에 약 1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거의 농업에 종사한다. 축산이나 특수작물은 거의 하는 사람이 없고 주민들 대부분 논농사와 자급자족을 위한 밭농사를 한다. 소득을 위한 특작물로는 취나물을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역말이었던 세천역세천은 조선시대 금장도에 딸린 세천역이 있던 마을이었기 때문에 ‘역말’이라고도 부른다. 원천리 세천과 함께 같은 법정리에 속하는 중원은 조선시대에 중요한 역로(驛路)였다. 보령에서 홍주로 가는 길목으로 세천역이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홍주군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24 09:15 70년대 배추 시설재배 도전 근면으로 가난 극복 70년대 배추 시설재배 도전 근면으로 가난 극복 은하면 화봉리는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위치한 마을을 ‘중가’라고 부른다. 물론 중가 위에는 ‘상가’, 아래는 ‘하가’가 있으며, 상가와 중가를 경계로 동쪽에 ‘야동’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중가마을은 은하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광천읍과 매우 가깝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산면 상가리, 중가리, 하가리와 야동을 병합해 꽃처럼 생겼다고 화봉(花峯)리라 했다고 전해진다.■ 벼농사대신 시설 채소 재배 눈 돌려중가는 결성면과 구항면에서 광천읍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교통이 매우 좋은 편이다. 왕복 2차로인 홍남로 96번 지방도가 마을 앞을 지나가며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가 불과 1km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외지로 나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17 09:18 친환경농업과 축산으로 부농을 이룬 마을 친환경농업과 축산으로 부농을 이룬 마을 광천읍 운용리는 동쪽으로 장곡면 가송2리, 남쪽으로 장곡면 죽전리, 북쪽으로 홍동면 홍원리와 경계를 이룬 오지 마을이다. 원래는 홍동면에 속했으나 1983년 2월 15일 비교적 가까워 접근하기 쉬운 광천읍으로 편입됐다. 광천읍과 홍성읍을 오가는 군내버스가 하루 3회 왕복을 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읍내 외출하기가 쉽지 않다.■ 유기농, 풀무생협과 계약재배산골 오지에 고립된 지리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일찍 친환경농업에 눈을 떴고, 양돈과 함께 고소득을 올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현재 85가구 200명이 살 정도로 산골마을 같지 않게 공동체의 규모가 크다. 4개 반으로 나눠진 운용리는 대형 돈사나 축사를 따라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축사는 15가구가 하고 있으며, 친환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10 09:21 원동시장 살리면 광천 원도심 활성화 가능하죠 원동시장 살리면 광천 원도심 활성화 가능하죠 4일과 9일은 광천장이 서는 날이다. 광천읍의 현저한 인구감소와 함께 상권 쇠락으로 5일장 분위기가 옛날 같지 않지만 그나마 장꾼들로 다소 붐비는 곳이 광천버스터미널 부근 신동시장이다. 그러나 신동시장보다 앞서 형성된 원동시장은 장날에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광천장이 시작된 동네원동은 광천읍의 중심에 위치한 광천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마을로 지금 광천오거리에서 광천역과 연결된 도로를 따라 신동시장 윗부분까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굳이 원동과 신동으로 나눌 필요 없이 원래 하나의 마을로서 ‘시내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예부터 광천시장이 원동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됐으나 해방 후 인구가 점점 늘면서 1961년 2개의 마을로 나뉘어졌고, 아래쪽 신동에도 시장이 생겼다.원동마을에 광천시장이 탄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06 09:13 담배농사 퇴조하고 축산과 절임배추로 농가소득 올려 담배농사 퇴조하고 축산과 절임배추로 농가소득 올려 광천읍 월림리 공수마을은 매머리 모양을 한 매봉재를 중심으로 날개를 펼친 매 형상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홍주목사가 다스리던 시절 공수마을과 바로 이웃한 홍동면 원천리 세천마을에 역말이 있었다. 세천마을에는 아전이나 관노들이 주로 살았는데 그들이 농사를 짓던 공수전(公須田)이 바로 인접한 마을에 있었다. 그곳은 바로 지금의 공수마을이다. 공수전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공수동, 혹은 공수골로 불리게 된 유래다.■ 한양의 관리들 낙향했던 마을공수마을에는 한양에서 벼슬을 그만둔 관리들이 낙향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한양의 고위관리들이 지방으로 가는 길에 역말에서 묵게 되면 낙향한 관리를 찾아서 인사를 드리거나 초대를 받아 한양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공수마을은 예부터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27 09:10 남당항에서 여객선으로 10분 이젠 외롭지 않은 섬마을 남당항에서 여객선으로 10분 이젠 외롭지 않은 섬마을 홍성군은 아름다운 서해 바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섬도 있다. 서부면 남당항에서 3.7km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있는 죽도다. 바다를 가진 홍성군에서 유일한 섬이다. 예부터 대나무가 많아 죽도로 불리어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선착장 부근 동바지조망대에 올라가는 탐방로에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주변에 크고 작은 섬이 모두 12개이며 본섬에만 사람이 살 뿐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다. 죽도는 원래 서산군 안면면이었으나 1989년 1월 1일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홍성군 서부면으로 편입됐다.■ 섬 둘레길 1시간 30분 코스죽도는 그렇게 큰 섬이 아니다. 현재 23가구 7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외지 관광객을 위해 섬 둘레길이 1시간 30분 정도 걸을 수 있는 코스로 개발돼 있다. 가운데가 잘록한 섬으로 마을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20 09:08 예부터 산수 좋아 산수동 지금도 귀촌 1번지 예부터 산수 좋아 산수동 지금도 귀촌 1번지 서부면 이호리 산수동은 이호리 중촌에 형성된 면 소재지 배후마을로 면의 중심지 기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교통도 좋아 홍성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많고,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를 연결하는 40번 국도변에 입지해 외부로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최근 도시에서 8가구 들어와우심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산수동은 서쪽 상황리 바닷가 쪽 도로를 따라 1반, 남쪽 남당리 바닷가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2반, 중촌마을 입구에서 갈라지는 길을 따라 ㄱ자형으로 나눠져 있다. 전체 가구수는 44호, 주민은 100명 정도 된다. 2012년 나온 면지에는 산수동에 36세대로 나타나 있으나 불과 6년 사이 8세대 정도가 늘어났다. 도시에서 귀촌인들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마을 원주민들은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13 09:16 고속철과 산업도로 건설에 대한 기대와 불안 교차 고속철과 산업도로 건설에 대한 기대와 불안 교차 홍북읍 내덕리 서력마을은 남쪽으로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얕은 구릉지대에 형성된 자연부락으로 왕복 2차선 내용길을 따라 길게 흩어져 있다. 현재 48가구 127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조용한 농촌이지만 홍성읍-내포신도시간 산업도로와 서울-홍성간 고속철 서해안선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머지않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산업도로가 건설되면 마을이 좌우로 나눠져 단절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고속철과 산업도로 건설“산업도로가 지나가면 주민들이 마을회관 다니기가 불편해집니다. 멀리 돌아서 지정된 지하도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죠.” 서력마을 전경근 이장의 말이다. 그나마 고속철은 교각을 높이 세우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도로부지로 편입된 일부 주민들이 보상을 받고 떠나 아쉽기만 하다.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07 09:18 옛날 선비가 반했고 지금은 귀촌인이 선호하는 마을 옛날 선비가 반했고 지금은 귀촌인이 선호하는 마을 금마면 가산리는 옛날부터 산수가 수려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북쪽으로는 홍북읍, 동쪽으로는 예산군과 경계를 이룬다. 가야마을은 ‘가야실’, ‘가실’, ‘개실’ 등의 지명이 함께 사용되며, 산수가 수려하고 가인이 머무는 마을이라는 뜻의 지명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선비들을 매혹시켰던 마을“가야마을에는 큰 고목이 있었습니다. 4000년의 수령을 가진 나무로 알려져 사천나무라고 했으나 수명이 다 돼 고사하고 대신 새끼나무가 자라 고목이 됐습니다.” 가야마을 김영팔(60) 이장은 “그 나무가 두 그루로 서로 떨어져 자랐는데, 지금도 군의 보호수로 지정돼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석골과 마을 중앙에 각기 떨어져 마주보고 자라는 이 고목은 느티나무로서 마을사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30 09:14 은하면에서 딸기 생산량이 가장 많은 부촌으로 성장 은하면에서 딸기 생산량이 가장 많은 부촌으로 성장 은하면 대율리는 옛날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실’이라고 불려졌다.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결성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 말엽에 결성군 은하면에 편입됐고,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대가곡리와 율리의 일부를 병합해 ‘대율리’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 비옥한 경작지 많아 살기 좋은 마을과거 마을의 지명이 될 정도로 많았던 밤나무는 1960년대에 경작지 확장사업의 일환으로 밭을 일구면서 사라졌다. 마을 앞으로 16번 군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으며, 남쪽은 은하면 소재지를 경유해 홍성으로 통한다. 마을 서쪽 앞으로는 부창산 너머 은하면 금국리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다릿고개를 경계로 해 구항면 비봉리와 경계를 이룬다. 마을 남쪽으로는 은하면 유송리와 경계를 이룬다.남당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22 09:09 소멸위기 극복 대안 ‘창조적마을 만들기’에서 찾아 소멸위기 극복 대안 ‘창조적마을 만들기’에서 찾아 장곡면 천태1리는 홍성군에서도 가장 오지 마을 가운데 하나다. 홍성읍에서 승용차로 출발하면 청양군으로 가는 국도를 달려 예산군 광시면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장곡면 월계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갈 수 있는데 굽이굽이 산길이다. 그러나 푸른 숲과 계곡, 작은 호수가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구절양장 같은 길을 달리면서 창밖의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면 자칫 사고가 날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훌륭한 자연환경 속에 있는 마을이라 뜻밖에 대도시에서 가장 매력적인 귀농·귀촌 마을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축산농가가 없어 악취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 점도 이 마을이 귀촌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축산악취 없어 귀촌 최적지로 인기“서울 마장동에서 오신 분은 전국을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7 09:08 5일장 섰던 반계장터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마을 5일장 섰던 반계장터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마을 홍성군 장곡면 동남쪽 끝 청양군과 경계를 이룬 지점에 옥계1리가 있다. 홍성군에서 가장 오지로 손꼽을 만한 농촌이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옥계1리는 매우 번성한 장터였다고 한다.■ 장곡면 대표했던 5일장 서던 마을“옛날에는 장곡면 소재지보다 여기가 더 컸어유. 1985년 폐장됐지만 옥계 5일장은 엄청나게 컸슈.” 옥계1리 이석규 노인회장의 말이다. 지금 마을의 모습을 보면 그의 말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50호 80여 명의 주민들이 농사를 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산골에 무슨 장이 섰단 말인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마을의 고샅을 천천히 걸으면서 살펴보면 옛날 장이 섰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마을 안길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 가운데 옛날 가게문이 그대로 남아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2 09:14 붉은해 머무는 ‘꽃섬’ 소도 희망마을 만들기 시동 붉은해 머무는 ‘꽃섬’ 소도 희망마을 만들기 시동 서부면 남당리 소도마을은 해발 142.5m의 투구봉에 의해 U자 형태로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줄기가 마을 좌우와 뒤를 감싸고 있는 데다 탁 트인 앞 쪽으로는 서해안 바다가 펼쳐져 있어 농촌과 어촌의 성격이 복합된 촌락이다.■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변신 꾀해 남당리 뒷산인 투구봉 산자락에서 시작된 여러 골짜기 가운데 가장 깊숙한 곳에 생긴 한자골(한사동, 한잿굴) 마을과 중촌, 해안가에 위치한 소도 본 마을로 3개 반이 소도마을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신리 안흥동, 서쪽으로는 남당리 내동, 남쪽에 바다, 북쪽에 투구봉이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현재 소도마을은 48가구 82명의 주민이 산다. 소하천과 참샘약수터가 있어 농업용수가 풍부하며 버들강아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1 09:02 하천변 개복숭아 희망의 열매로 대박 터뜨릴 날은… 하천변 개복숭아 희망의 열매로 대박 터뜨릴 날은… 은하면 금국리 상하국은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로 비옥한 농토와 함께 교통도 좋다. 왕복 2차선 8번 지방도가 통과함으로써 외부 세계로 드나들기 쉬워 특히 자가용이 없거나 운전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은 대중교통으로 읍내에 나가기가 편리하다. 군내버스가 바로 마을 앞으로 1시간에 1대꼴로 다니기 때문이다.■ 결성과 구항 이어주는 길목상하국은 76가구에 120~130명의 주민이 산다. 이 정도면 은하면에서 큰 마을에 속한다. “우리 마을이 은하면에서는 두 번째 규모로 큰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합도 잘 되고 모범적인 청정마을이죠.”상하국마을 윤재석 이장의 말이다. 은하면에서는 제일 북쪽 끝에 결성면과 구항면을 이어주는 길목이어서 양 지역은 물론 홍성읍내로 나가는 것도 쉬운 편이다.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5 09:07 “꽃무릇 필 무렵 남산 아래 아늑한 소새울로 오세요” “꽃무릇 필 무렵 남산 아래 아늑한 소새울로 오세요” 홍성읍 서남부 구항면과 경계 서해안으로 향하는 길목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될 무렵 닦은 도로 좁아소하천 도로 완공되면 올레길 활용 찾아오는 마을로 변화옥암리에서 남산 팔각정 연결 소로 개설 정자·쉼터 계획옥암1리는 홍성읍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구항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으로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와 연결되는 29번 국도가 지나가는데 이 도로를 통해 가까운 구항면을 비롯해 서부면, 결성면, 갈산면으로 갈 수 있다. 멀리는 서해안의 서산시와 태안군으로도 갈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이다. 해발 200m의 야트막한 산이 마을을 품어주고 있으며, 다랑이 논이 계단식으로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1~2반 부락은 옛날부터 ‘소새울’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다.■ 70년대 닦은 마을안길 확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18 09:08 맑았던 중리천 가축분뇨 정화한 방류수 흘러가 맑았던 중리천 가축분뇨 정화한 방류수 흘러가 홍성군 서부면 중리는 3개의 자연부락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원중리(元中里)가 있다. 원중리는 백제와 고려 때는 결성군, 조선 초엽에는 결성현, 조선 말엽에는 결성군 용천면에 속했다가 1914년 홍성군 결성면,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부면에 편입됐다. 지금도 청룡산 능선이 결성면과 경계를 이룬 채 중리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논밭은 비옥한 편이다.■ 중리천 오염원 농가원 단골민원그러나 지난달 30일 원중리 마을회관에 만난 주민들은 ‘똥물’ 이야기만 했다. 인근 결성면 교항리에 들어선 농가원을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제대로 정화시키지 않은 가축분뇨를 비가 오는 날 마구 흘려보내 중리천 하류지역인 이 마을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11 09:07 7년 가물어도 풍년농사 가능한 비옥한 땅 ‘만경마을’ 7년 가물어도 풍년농사 가능한 비옥한 땅 ‘만경마을’ ■ 홍양저수지 정비해서 관광지로 홍동면 신기리 만경마을은 예부터 물이 마르지 않고 땅이 비옥해 만석지기 마을로 불려졌다. 만경마을 노인회 정규선 총무의 말이다. “만경이는 흉년 없는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만석지기 부자가 많이 살았던 동네였죠.” 정 총무는 만경이라는 지명도 그런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보습으로 밭을 갈면 고랑과 두둑이 생깁니다. 이것을 1경(景)이라고 합니다. ‘경’자는 볕 경(景)입니다. 보습에서 이랑을 만드는 부분이 볕으로, 1만 개의 이랑을 만들 수 있는 들이라는 뜻의 만경입니다. 여기는 들이 넓지 않아도 물이 풍부합니다. 땅이 기름져서 홍동면에서도 홍동 일만경이라고 불려졌습니다. 벼농사는 물론 밭농사도 풍작을 이루는 1번 으뜸마을로서 만경이입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5 09:47 문화유적 살려 관광명소 부활에 희망 걸어 문화유적 살려 관광명소 부활에 희망 걸어 결성면이 지금은 홍성군의 하부 행정단위에 속한 쇠락한 농촌지역에 불과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1개 고을을 다스리는 군·현으로서 위세를 떨쳤다. 조선말엽에는 결성면이 결성군 현내면으로 불리워졌는데, 그 중 결성군청이 있었던 마을이 현내리, 혹은 읍내, 성안 또는 성내리라고도 했다. 읍내리는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원 읍내의 좌촌과 우촌(골말과 잿말)으로 나뉘어졌으나 지금은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의 좌측을 좌촌, 우측을 우촌, 이 두 마을을 합쳐 좌우촌이라 한다.좌우촌마을은 석당산이 아늑하게 둘러싼 가운데 뒤로는 관아지와 읍성이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는 성남, 동쪽에는 해동에 접하며, 북쪽에는 신금성이 위치한 원금곡과 무량리가 있고, 서북쪽에는 성호리와 가곡과 교촌이 인접한다.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기 기자 | 2018-04-27 09:08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지막 생애 보낸 아름다운 계곡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지막 생애 보낸 아름다운 계곡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이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홍성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바로 장곡면 월계2리인데 지금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치가 수려하다. 월계2리 월계천 맑은 계곡에는 실제로 그가 스쳐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초등학생이 발견한 최치원 유적지월계2리 용목마을의 북동쪽에 흐르는 월계천 바위에는 최치원이 각서한 금석문으로 전해지는 쌍계 12경 2장의 마애 금석문이 있다. 최치원이 남긴 마애 금석문은 전국에 약 30개가 되는데 그 중 16개가 이곳 쌍계에 집중돼 있다.장곡면지에 따르면, 각서된 바위는 계곡 주변과 논 가운데에서 확인되는데 그 중 ‘용은별서’(龍隱別墅)가 각서된 바위 주변은 당시 최치원의 은거지와 강당지로 추정되고 있다. 쌍계 십이경 사장은 용소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0 09:55 처음처음이전이전1234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