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21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밴드 한 장’의 친절한 ‘배려심’ “홍성농협의 정신·이미지이길” ‘밴드 한 장’의 친절한 ‘배려심’ “홍성농협의 정신·이미지이길” 설을 앞두고 설 명절 준비를 하느라고 아내와 함께 찾았던 홍성농협(조합장 박문수) 하나로마트에서 경험한 ‘친절함’과 배려, ‘다정함’이라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을 모처럼 갖게 됐다.직원 개인의 세심하고 친절한 행동이 ‘선한 영향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가 돼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사회적 규범을 형성했으면 하는 기대다.특히 어려운 시기, 각박한 시대에는 친절과 배려의 중요성은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는 삶의 공동체에서 서로에게 사랑과 지지를 보내고, 상호 의존성을 확립하는 삶, 등대불빛 | 한관우 발행인 | 2024-02-22 08:30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의미하는 ‘설’, 설날의 유래와 기원을 더듬어 보니…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의미하는 ‘설’, 설날의 유래와 기원을 더듬어 보니… 설 명절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통 명절 중 하나다. 한국인들에게는 가족·친지들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설 명절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설은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해가 밝아오는 것은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의미하며, 한국인들은 설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설은 가족·친지들과 함께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놀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명절이다. 이런 만큼 설 명절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설은 고려 시대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져 온 우리의 전통이며 홍주일보 | 한관우 발행인 | 2024-02-08 10:25 해방 78돌 특별기획④-김좌진의 딸 산조, 2003년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세상 떠나 해방 78돌 특별기획④-김좌진의 딸 산조, 2003년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세상 떠나 김기철 노인은 백야 김좌진 장군의 딸 산조를 데려오기 위해 3년 전에 키우라고 주고 온 칠가툰의 중국인 이 씨를 찾아갔다. 그냥 빈손으로 간다는 게 인사가 아니어서 어렵게 구한 싸라기 두 가마를 가지고 찾아가서는 통사정을 했다. “그동안 아이를 길러주신 은혜를 어찌 말로 다 갚을 수가 있겠소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하니 산조를 저에게 돌려주시기 바라오.” 그러나 중국인 이 씨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키운 아이를 어떻게 다시 돌려달라고 하십니까? 안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딱한 사회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23-09-10 08:34 해방 78돌 특별기획 ②-김좌진의 새 부인, 1926년에 홍성출신 19살 김영숙 만나 해방 78돌 특별기획 ②-김좌진의 새 부인, 1926년에 홍성출신 19살 김영숙 만나 ■ 김좌진 참모들 ‘팔로’동서고금에서 출중한 명장일수록 천하 유능한 모사들을 찾아내 모시기를 원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 세 번이나 친행했다는 이야기도 오늘까지 전해지는 미담이 아닌가.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큰 뜻을 품고 무장투쟁의 선두에 선 김좌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산시(북만주)에 있을 때는 모사 여덟 명을 받들었는데 그들을 ‘팔로(八老)’라고 불렀다.팔로들의 경력은 상세히 모르나 산조의 말에 따르면 영향력이 대단했다. 특히 어린 산조의 성장에 팔로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산조는 지금도 팔로들에 관해 이야기할 사회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23-08-26 08:31 조선 고종 때 지어진 한옥, 갈산 물안이 ‘안동김씨 가옥’ 조선 고종 때 지어진 한옥, 갈산 물안이 ‘안동김씨 가옥’ 갈산 김우열 가옥(金宇烈 家屋)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0호)홍성군 갈산면 갈산로 71(상촌리 234)에는 19세기에 지어진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가옥인 ‘김우열 가옥(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0호)’이 있다.‘김우열 가옥’은 노동마을 물안이라 불리는 나즈막한 야산인 병암산 자락 대나무숲 앞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별도의 대문 등은 없고 곧바로 사랑채에 접근할 수 있다. 사랑채 앞에는 문화재 안내 표지석과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김우열 가옥은 조선시대 고종 때 지어진 한옥으로 안동김씨 문정공파 김학근이 마을을 지나다가 집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8-19 08:30 해방 78돌 특별기획 ①-“나는 김좌진 장군의 친딸, 산조” 1995년 광복 50주년 이후의 기록 해방 78돌 특별기획 ①-“나는 김좌진 장군의 친딸, 산조” 1995년 광복 50주년 이후의 기록 1995년 광복 50주년 당시에 우리 고장이 낳은 위대한 해방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만주항일독립투쟁의 영웅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백야 김좌진(金佐鎭, 1989-1930) 장군과 관련된 ‘친딸’이라고 주장하는 ‘산조(山鳥, 본명 김강석, 김순옥)’가 나타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이 무렵 우리나라의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집중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학자와 언론계, 중국 연변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강용권 연구원과 안화춘 연구원 등을 비롯해 연변대학교 등 학계의 역사학자들도 각종 관련 저술과 논문, 자 사회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23-08-17 08:30 대부호 양반집, ‘99칸 반’ 영화는 사라졌어도 자취는 곳곳에 대부호 양반집, ‘99칸 반’ 영화는 사라졌어도 자취는 곳곳에 갈산 전용일 가옥 (田溶一 家屋) (충청남도민속자료 제11호)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326-2(상촌로 9번길 21-1) 갈산중·고등학교 인근에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전용일 가옥(田溶一 家屋)’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은 예전에는 안채를 들어갈 수 있는 중문이었다고 한다. 네모반듯한 대지 위에 높은 담장을 두른 전용일 가옥은 처음에는 ‘99칸 반’ 규모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99칸 반’의 집, 요즘 계산으로는 쉽게 그 규모가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아마 이 지역의 부농의 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8-12 08:30 백야공원의 ‘대한독립군총사령백야김좌진장군추념비’ 백야공원의 ‘대한독립군총사령백야김좌진장군추념비’ 김좌진장군비(金佐鎭將軍碑)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67호갈산면 행산리 신기마을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의 백야공원에 위치한 ‘대한독립군총사령백야김좌진장군추념비(大韓獨立軍總司令白冶金佐鎭將軍追念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는 일명 ‘김좌진장군비(金佐鎭將軍碑)’로도 불리는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49년 대한청년단 홍성군단이 성금을 모금해 홍성읍 오관리 412-6 남산공원에 비를 건립했다. 비문(40㎝×202㎝×40㎝) 뒷면에는 김좌진 장군 일생의 행적이 기록돼 (黃學秀 撰천, 車東日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8-05 08:36 임득의 장군 일가 17명(八子九孫), 홍주지역에서 공신으로 녹훈돼 임득의 장군 일가 17명(八子九孫), 홍주지역에서 공신으로 녹훈돼 임득의 장군 묘와 ‘정충사’홍성지역에는 많은 역사 인물이 있으며, 그 인물들과 관련된 역사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중에도 작은 시골 농촌 마을에 수십만 평의 소나무 숲속에 숨겨진 400여 년의 역사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신촌마을에는 1596년(선조 29) 7월 이몽학(李夢鶴, ?~1596)의 반란군에 의해 홍주성(洪州城)이 포위됐을 때 난을 평정한 임득의(林得義) 장군의 사우인 정충사(靖忠祠)와 묘역이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홍주를 중심으로 한 내포 지역은 많은 선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7-30 08:34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나눔정신’이 아름답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나눔정신’이 아름답다 ‘평범한 시민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나 나눔을 실행하는 사람들, 봉사의 현장 등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흔히 오가는 말이다.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철저한 사명감으로 주어진 일을 진솔하게 즐기며, 힘이 미치는 데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그 결심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일을 즐기고 정직하게 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면서도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나누는 삶이 참으로 아름다운 이유다. 대전지역에 사회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23-07-27 09:09 홍성 ‘장곡을 관향으로 하는 여양진씨’의 ‘경덕단·숭덕재’ 홍성 ‘장곡을 관향으로 하는 여양진씨’의 ‘경덕단·숭덕재’ ‘여양진씨’의 재실과 사당‘신증동국여지승람’의 홍주목 인물조에는 고려시대 홍주의 인물 네 명의 기록이 나온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홍규(洪規;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운주 성주 긍준(兢俊)에게 홍씨(洪氏) 성을 하사하며 준 이름)는 태조 왕건과 사돈 관계를 맺으면서 홍주 지역의 위상을 높였던 인물로 홍주홍씨(洪州洪氏)의 시조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진준(陳俊), 진식(陳湜), 진화(陳崋) 세 사람은 모두 ‘여양현(驪陽縣) 사람’이며, 장곡(長谷)을 관향(貫鄕)으로 하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의 시조인 진총후(陳寵厚)의 아들이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7-23 08:30 생태공원 ‘역재방죽’ 100년 만에 피는 ‘가시연꽃’ 자생지 생태공원 ‘역재방죽’ 100년 만에 피는 ‘가시연꽃’ 자생지 홍성 고암리 ‘역재방죽’주인을 살리고 대신 죽은 ‘의견(義犬)’의 전설과 함께 100년 만에 피는 꽃이라는 ‘가시연꽃’의 자생지, 멸종위기식물인 ‘가시연꽃’의 자생군락지로 알려진 홍성의 생태공원인 ‘역재방죽(홍성읍 충절로 925, 홍성읍 고암리)’이 있다. 특히 ‘역재방죽’은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한 오래된 소생물권 습지로서 자연생태적 가치에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멸종위기종 야생식물인 가시연의 한반도 최북단 자생지이자, 조성 규모도 국내 최대 수준으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100년 만에 피는 꽃으로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7-16 08:33 “금마(金馬), 202년간 ‘마한(馬韓)’의 ‘수도’였다” “금마(金馬), 202년간 ‘마한(馬韓)’의 ‘수도’였다” 지금의 충남 홍성군은 충청남도의 행정중심 도시다. 지난 2006년 2월 충청남도청 이전지로 확정된 이후 2009년 6월 기공식을 시작으로 ‘충남도청 이전 신도시가 조성됐다. 이후 2012년 12월 충청남도청과 충청남도의회 등 충남의 행정기관이 홍성군 홍북읍 일원의 충남도청 이전 신도시인 내포신도시로 차례로 이전했다. 명실공히 홍성 땅으로 충청남도 행정수도의 이전이 이뤄져 ’충청남도청소재지‘가 됐다. 하지만 홍성 땅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중요한 행정도시로 2000여 년에 걸쳐 오늘까지 그 역할과 기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곳으로 확인되고 사회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23-07-06 08:30 남당 한원진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서부면 ‘양곡사’ 남당 한원진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서부면 ‘양곡사’ 양곡사(暘谷祠)는 홍성군 서부면 홍남서로 131-31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 유학자로 숙종 8년(1682년)에 출생해 영조 27년(1751년)에 생을 마친 한원진(韓元震)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祠堂)으로 호는 남당(南塘)이며, 자는 덕소(德沼)로 관직은 장령에 이르렀고,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남당 한원진은 1682년 서울 어의동에서 태어나 8세 때 그의 할아버지 현감공을 따라 당시 홍주의 서부 남당리에 내려온 이래 줄곧 홍주(洪州)에서 한평생을 보낸 홍주의 위인이다. 남당 한원진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상경의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6-24 08:30 독배 뒷산 토굴 40여 곳, ‘광천토굴새우젓’ 숙성·저장비법 독배 뒷산 토굴 40여 곳, ‘광천토굴새우젓’ 숙성·저장비법 광천읍 옹암리 독배 뒷산 토굴홍성군 광천읍 옹암리는 마을의 공식지명이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그래왔듯이 지금까지도 마을 이름을 ‘독배’라고 부르고 있다.지금은 ‘광천천(廣川川)’이라는 그리 넓지 않은 냇가가 있을 뿐 온전히 바다 냄새를 맡을 수는 없는 곳이 돼 버렸다. 몇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광천역 뒤쪽까지 서해의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어선들이 드나드는 항구가 있었다. 그래서 이름과도 같이 지금보다 드넓은 광천천에 많은 배들이 오고 갔을 정도다. 서해 천수만의 보령 오천항에서 18km 떨어진 내륙 깊숙한 곳에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6-18 08:33 [발행인 창간기념사] 홍주신문 창간 16돌, 지역주민의 삶 자체가 역사·문화다 [발행인 창간기념사] 홍주신문 창간 16돌, 지역주민의 삶 자체가 역사·문화다 홍주일보사 홍주신문이 창간 열여섯 돌을 맞이했습니다. 올곧은 지역신문으로 지역사회와 주민들께 새로운 희망을 담는 행복한 거울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출발한 지 어느덧 1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홍주일보 홍주신문은 지난 16년간 지역주민들과 함께 좋은 신문, 정직한 신문, 올곧은 신문의 명제를 실천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자유와 민주적 소통을 지향하며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충남도청 홍성·예산 시대 희망언론 독립신문을 표방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반듯하게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애독자 여러분과 지역주민들 홍주일보 | 한관우 발행인 | 2023-06-15 13:49 ‘호서명성 우리홍고 빛내리’ 외치던 ‘홍성고등학교 강당’ ‘호서명성 우리홍고 빛내리’ 외치던 ‘홍성고등학교 강당’ 대교리 ‘홍성고등학교 강당(講堂)’ 홍성고등학교는 1941년 3월 26일 홍성공립중학교 설립인가(6년제 5학급)를 받아 같은 해 4월 11일 홍성공립중학교로 개교했다. 1951년 8월 31일에는 홍성고등학교 설립인가(3년제 15학급)를 받아 1951년 9월 28일 홍성고등학교로 개교식을 거행했다. 이후 2015년까지 75년간 총 2만 2801명의 인재를 배출하고, 개교 75년만인 2016년 2월 23일 충남도청 내포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 홍성군 홍북읍 홍학로 49(신경리 1174)로 이전, 개교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5-27 08:32 금마 철마산 ‘3·1공원’ 26개 마을·11개 읍면 상징 태극기 금마 철마산 ‘3·1공원’ 26개 마을·11개 읍면 상징 태극기 금마면에는 금마를 상징하는 산이 있다. 금마 봉서리 뒤편에 솟은 산은 예산에서는 대흥산, 홍성에서는 봉수산 또는 봉서산이라 부르고 있다. 또 하나는 금마 화양리, 죽림리, 부평리의 세 마을에 걸쳐 나지막한 산이 가로 놓여있다. 바로 이 산이 철마산(鐵馬山, 131m, 금마면 죽림리 산23-1)인데, 철마산은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영 장군이 철마산에서 말을 타고 훈련을 했다는 이야기와 예전부터 힘센 장수에 얽힌 사연이다.철마산은 지금처럼 낮은 봉우리가 아니었고, 험준한 모습의 우람한 산으로 장수들이 말을 타고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5-20 08:38 홍성 오관리에서 첫 발굴, 우리나라 유일의 ‘목빙고(木氷庫)’ 홍성 오관리에서 첫 발굴, 우리나라 유일의 ‘목빙고(木氷庫)’ 지난 2005년 4월 19일, 17세기에 얼음을 저장했던 ‘목빙고(木氷庫; 나무로 만든 얼음 저장고)’로 추정되는 유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홍성 오관리 814-4번지 일원의 아파트공사 현장에서 발굴됐다. 현재의 세광엔리치타워아파트 102동 신축부지에서 발굴된 목빙고는 가로 5.5m, 세로 23.86m, 깊이 1.5m 규모로 현존하는 18세기 경 개축된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석빙고(石氷庫;보물 제66호)’ 보다도 100년(1세기) 정도 앞서는 곳으로 추정되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발굴돼 문화재계에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성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5-13 08:30 학문과 독립정신 고취 장소로 활용했던 ‘창주사(滄洲祠)’ 학문과 독립정신 고취 장소로 활용했던 ‘창주사(滄洲祠)’ 홍동 운월리 ‘창주사(滄洲祠)’홍동면 운월리 창정마을(홍장남로 672번길 16)에 위치한 ‘창주사(滄洲祠)’는 지난 2014년 3월 17일 홍성군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된 유적이다.홍동 운월리는 신안주씨(新安朱氏) 집성촌이다. 신안주씨의 시조(始祖)는 중국 송나라 때 대학자인 ‘주희(朱熹, 주자)’다. 이를 모신 ‘창주사(滄洲祠)’는 1804년(순조 4) 신안주씨의 문중사우로 건립됐고, 1804년 주성근(朱聖根)이 주자의 영정을 모시고 삭망일에 분향을 올리면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1857년에 ‘주자화본(朱子畵本)’을 봉안했으며,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 한관우 발행인 | 2023-05-06 08:30 처음처음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