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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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세요”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1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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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소위 ‘잘 나가는’ 친구 하나는 인사성도 밝다. 명문대를 나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력 정치인과 함께 일하며 국내·외 여러 현안을 꿰는 혜안과 출중한 국제적 정치감각도 갖추고 있는 친구다. 영문 번역서도 내고 역사서적도 집필하며 온라인에서 숱한 추종자를 갖고 있는 그와 가끔씩 전화통화를 하는데, 그 친구는 통화 말미에 꼭 이렇게 인사를 하곤 한다. “그려, 들어가~.”

나는 전화기를 끊고 나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스마트폰의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라는 거여. 난 이미 집에 들어와 있는데.’ 심지어 이불속에서 전화 받다가 끊어도 그 친구는 ‘들어가~’라고 말한다. 그 친구가 말하는 것은 아마도 ‘조심히 살펴 들어가~’라는 따뜻한 배려의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흔히 ‘얼굴을 보면서’ 헤어질 때 하는 말이다. 경상도 지방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들어)가입시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화로 헤어질 때는 일반적으로 ‘다음에 보자’, ‘잘 지내라’, ‘또 통화하자’라고 표현한다.

그 친구는 왜 전화통화에서도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예전에는 전화가 정말 귀해서 한 마을에 거의 한 두 집에만 유선전화기가 있었고, 그마저도 교환원을 통해야 통화가 가능했다. 때문에 서울로 돈 벌러간 자식들이 부모님 목소리를 한번 들으려면 마을에 전화기가 있는 집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보통 마을 이장님 댁에는 전화가 있었는데, 저녁 무렵 이장님에게 먼저 전화를 하면 이장님은 ‘삐삐선’줄로 연결된 마을 방송시설을 이용해 “아아… 에… 아무개집 둘째 아들이 전화가 왔습니다”라고 연락을 해줬다.

그러면 방송을 들은 부모님께서는 열 일 제쳐두고 고개 넘고 어둑해진 논두렁 밭두렁을 건너 이장님 댁으로 달려가곤 했다. 비싼 전화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전화를 일단 끊었던 아들은, 부모님이 도착하실 시간 쯤 해서 다시 한번 전화를 해서 부모님과 통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후 아들은 부모님이 집으로 가시는 길을 걱정하며 이렇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살펴 들어가세요.”

즉, 전화를 끊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두운 밤길, 여기저기에 있는 논둑, 밭둑 길에서 넘어지지 말고 조심히 잘 살펴 들어가세요’라는 애정과 걱정 어린 마음이 담겨있는 말이 줄어서 ‘들어가세요’가 된 것이다.

지금은 휴대전화를 2년 마다 갈아치우는 전화기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기에 통화를 위해 더이상 마을 방송을 이용하지 않는다. 마을 방송도 많이 진화돼서 동네 이장님이 휴대폰에 어플을 깔고 전화기에다 말을 하면 곧바로 방송이 나간다. 서울이 있든지 부산에 있든지 간에 각종 공지사항이나 재해 재난 사항을 마을 주민들에게 손쉽게 알릴 수 있게 됐지만 동네 가정사는 더 이상 파악할 수 없게 됐다.

시골에서도 논둑, 밭둑 길을 걸어갈 일도 어지간해서는 없고, 밤새 켜지는 가로등과 잘 닦인 도로 때문에 여기저기 살피면서 집으로 들어갈 험난한 길도 없다. 사람 때문에 위험하지 길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부모 자식 간의 통화에도 ‘들어가세요’라는 말은 좀처럼 들어볼 수가 없다.

세월이 더 흘러가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남을 배려하고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마음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서 세상을 훈훈하게 해주길 기대하며 오늘은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해보려 한다. ‘그려, 너도 잘 들어가~.’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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