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속에 숨은 좋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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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 속에 숨은 좋은 기억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8.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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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람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기억을 왜곡한다. 우울하고 힘들 때는 내 인생이 실패로 끝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K는 36세 무직자이다. 20대부터 자영업을 성실하게 운영했지만 3년 전 아내와 이혼 후 게임으로 많은 돈을 잃었고, 현재 파산 신청을 한 상황이다. 더구나 6년 전 의지했던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였기에 그 충격은 매우 컸다. 이후 아버지는 재혼하셨고, 하나뿐인 형과는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주변에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다. 일상은 무기력하고 희망이 없지만 초등학생 아들을 생각하면 삶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아들은 아이의 외할머니 댁에서 생활하면서 K와 한 달에 두 번씩 만난다. 아들을 볼 때마다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는다. 자꾸만 부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혀서 나쁜 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수소문 끝에 센터를 찾아내서 상담을 하게 됐다. 

대상관계이론가 멜라니 클라인은 신생아는 자신 안에 있는 나쁜 것들을 외부로 옮겨 놓는 방식으로 처리한다고 말한다. 유아는 한 사람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극단적으로 나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것이다.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고, 완전히 좋은 사람도 없다. 치료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별하고, 나쁜 것들 속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K가 상담을 받는 이유는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 용기를 갖고 싶고,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면서 K의 나쁜 기억들 속에 숨어 있는 좋은 기억들을 찾아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교 1등한 것,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식 때 개근상을 받은 것, 고등학교 때 마라톤 대회에서 3등을 한 일, 청년이 되어 자영업을 15년 동안 유지해온 것 등을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같이 찾아냈다. 그리고 손재주가 뛰어나서 무엇이든 잘 고치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자신 안에 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동안 K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섯 살 무렵 수두에 걸렸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혀서 포도맛 폴라포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장면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했다,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K는 밖에서 놀기 싫어하는 아들을 자주 업어줬다. 아들과 몸과 몸을 대는 접촉을 통해 자신이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K의 마음에는 사랑이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은 마음이 외롭고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을 느낄 때 심리적 고아라고 생각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게임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클라인의 말처럼 성인이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편집-분열적 사고방식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편집-분열적 사고방식은 내부 환상과 외부 실제를 충분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파괴적 공격성은 온통 투사돼 나에게 적대적인 것은 모두 나쁜 악이 되고, 더 나아가 나를 파괴하려는 사악한 공격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나쁜 경험을 하면서, K는 자신이 나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나쁘다는 생각에 자해를 하기도 했다. 상담을 하면서 K는 나쁜 기억들 속에서 좋은 기억을 찾아냈다. 자신이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에 대한 생각은 바꿀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밀려오는 나쁜 기억들에게 사로잡혀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 기억들 속에 숨어 있는 행복한 장면을 찾아내야 한다. K가 자신을 업어준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림으로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처럼, 당신 인생의 드라마 속에서 좋은 기억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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