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가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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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가 남긴 숙제
  •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위원>
  • 승인 2021.01.2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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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에서 만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내용을 담아낼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홍성역사연구모임’의 학술세미나에서 향토학자 한건택은 구체적 자료를 통해 만해의 가계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밝혔다. 이것은 외부 권위자가 ‘홍성’을 연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홍성사람들이 이해해 온 과거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매우 설득력이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한건택을 취재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그의 행적들이 바로 잡아지거나 아니면 여전히 학술적 권위에 밀려 향토학자의 견해가 묻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건택에 따르면 만해가 몰락한 가난한 양반가에서 성장했다는 그동안의 주장과 달리 6대조 묘소가 결성 잠방골에 있고, 대를 이은 교지(敎旨)가 남아 있으며, 아버지 한응준은 고종 22년 종4품 선략장군(宣略將軍) 행충무위부사용(行忠武衛副司勇)으로서 충훈부(궁궐)에서 복무하다가 낙향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동학이 일어나자 홍주목사 이승우는 병학(兵學)에 정통한 한응준을 전 도사(前 都事)로 자벽(自辟, 관아의 수장이 임금의 허락 없이 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관리를 임명함)했다. 이에 대해 <홍양기사>는 “참모관 한응준은 병학에 정통하고…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반년 동안 풍찬노숙의 괴로움을 겪었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만해는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가문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가 궁궐에서 복무할 때 서울을 경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출가 전 서당훈장을 했다는 것에서 당시 양반가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밟았으며 적어도 홍성에서는 기득권에 속해 있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홍주 유학의 수준과 성격에 비춰보면 만해의 학문적 깊이와 성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만해는 유학에 정통했고, 사회적 기득권에 속했으며, <조선불교유신론> 등에 나타나듯 나름 서양학문에도 상당한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식인이 왜 승려가 되었을까. 그는 가문의 영향력과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밀려오는 서양세력에 영합해 출세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당시 ‘앵글로 색슨족’을 배우는 것이 민족의 살길이라며 사회진화론에 열광하던 신지식들과 달리 완전히 몰락하여 천민으로까지 여겨지던 승려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일대의 사건이다. 기득권을 스스로 버렸다는 것은 그의 일생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안이며, 2021년 현재 인류 미래를 모색하는 단초가 된다고 본다. 

다음으로 가기 전에 만해가 선택한 불교에 대해서 알아보자. 흔히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공자의 인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비는 숨을 쉬지 못하면 살수 없듯 “모든 존재는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나와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르지도 않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은 만해의 일생이 유아론(有我論)인 유교의 관념적도덕성, 유신(唯神論)의 기독교신앙과는 전혀 다른 무아(無我) 무신(無神論)의 자비행에 있었다는 것이다.

만해는 분명히 ‘나와 너는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르지도 않다’는 불이(不二)사상을 근거로 <조선독립의 서>에서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류의 행복이라”고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不二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반상식에서 일본에 맞선 독립운동가 또는 시인으로 평가하는 우를 범해왔다. 이것은 그동안 만해의 일생을 엉뚱하게 이해해 왔다는 것이다. 

만해는 인간뿐만 아니라 일체만물(미물)은 존엄하며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는 不二를 몸소 깨달은 선사(禪師)이다. 따라서 그가 설령 분별의 회초리를 들었고 독선의 행동으로 세상을 질타했다 할지라도 미움 없는 자비와 무분별의 사랑이 필요에 따라 발현됐을 뿐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듯….

이 같은 맥락에서 일본은 물론 그 어떤 적도 처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중생 즉, 제도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해는 대승보살로서 “불교(不二)를 종(宗)으로 하고 조국의 독립을 방편으로 해 전 인류의 평화를 구현하려 했다”고 정의돼야 한다.

오늘날 세계 모든 문제는 서구의 일방주의에 기인해 ‘나와 남’,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고 ‘지배와 피지배’를 정당화해온 제국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대처하고 지구를 폭파하고도 남을 만한 핵무기 등을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4차 산업 사회에서 어느 한 국가나 집단의 일방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만해의 표현대로라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구의 일방주의는 현재의 물질문명을 이뤘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그동안 인류가 선택했던 유일(唯一)의 일방주의는 더 이상 미래를 이끌 수 없다. 

만해의 경전 번역은 不二사상의 극치를 설한 《유마경》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완역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이것은 不二의 평등사상의 완성을 우리들에게 숙제로 남겨놓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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