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학파의 실학과 양명학과 천주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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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학파의 실학과 양명학과 천주교〈4〉
  • 서종태 <前전주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6.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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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서양과학기술을 매개로 천주교를 수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병휴가 이·기의 개념을 가치 세계에 속하는 것과 사실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인식 방법도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으로 구분해 사공에 관한 학문의 탐구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점과 이단의 판별 기준을 사욕의 추구 여부로 삼아 양·묵·노·불을 이단으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한 점 등이 주목된다.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성호학파의 양명학자들이 효·제·자의 실천을 통한 인(仁)의 구현에 남달랐던 점도 주목된다. 즉, 이기양은 의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부의 재산을 80만 전이나 적자를 내면서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또한 그는 전에 앓아누웠을 때 자신을 돌봐준 이웃집 노파가 앓아눕자, 비가 새어 물이 가득 고인 노파의 부엌에 솥을 걸고서 땔감을 모아다 불을 때 미음을 쑤어, 변도 가리지 못해 악취를 풍기며 발가벗고 누워 있는 노파를 안아 일으켜 미음을 다 마시게 했다. 

권철신도 가정에서 오로지 부모에게 순종해 어버이의 뜻에 맞도록 행동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기를 자기 몸처럼 돌보아, 아들이나 조카들이 쭉 늘어앉아 있어도 한 품에서 자란 형제들처럼 융화를 이뤄, 그의 집에 머물며 열흘이 넘고 한 달이 지나야 겨우 누가 누구의 아들임을 판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비복이나 논밭, 저장해둔 곡식을 형제 사이에 아무라도 사용하고 조금도 구별 짓지 않았고, 우연히 맛있는 음식이라도 생기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고르게 나누어, 아래 천한 사람들과도 함께 나눠 먹었다. 

홍유한도 길에서 굶주려 먹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자기의 끼니를 잊은 채 덜어서 줬고, 도중에 늙은이가 걸어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자기 말을 타도록 빌려줬으며, 남들이 절하는 것을 보면 상대방이 비록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공경히 답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철환도 남을 구제하기에 급해 의서를 궁구하고 살펴 처방을 내리고 약을 조제해 주면서 상스럽고 천하다고 꺼리지 않았으며,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기에 용감해 손수 천금을 흩어 도로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면서 재산이 바닥나는 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천주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그 본질로 삼고 있고, 〈십계명〉이나 《칠극》에는 도덕 실천 사항이 간단하고도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으며, 천주교의 주재적이고 인격적인 천주는 도덕적 실천을 한층 더 강력히 뒷받침할 수 있다. 게다가 8만여 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항해해 와 오직 그 도를 떨쳐 천하를 교화하는 데만 헌신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러한 천주교의 본질인 사랑과 간단하고도 구체적인 도덕 실천 사항, 도덕 실천을 한층 더 강력히 뒷받침할 수 있는 주재적이고 인격적인 천주, 그리고 선교사들의 뛰어난 덕행 등은 효·제·자의 실천을 통한 인의 구현에 남달랐던 성호학파의 양명학자들에게 틀림없이 큰 감명을 줬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러한 점들에 이끌려 마침내 천주교를 수용하게 됐다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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