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인생의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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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인생의 내면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9.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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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모녀(母女)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딸과 엄마는 서로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 엄마와 딸은 서로의 진짜 모습보다 서로에게 덧씌워진 환상을 좇으며 가는 것은 아닐까. 

O양은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다. 코로나19로 취업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엄마에게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O양의 부모님은 얼마 전 24년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합의 이혼을 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집을 구해 나가시고, O양과 엄마, 남동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혼 전부터 엄마는 많이 힘들었지만, 이혼 후 정서적·신체적·물질적으로 더욱 힘겨워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에게 버팀목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연애와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붙박이처럼 엄마 곁에서 살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더 나아가 엄마의 상실감을 조금이라도 보상해주기 위해 자기 삶이 아닌 엄마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엄마의 아바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트레스는 높아졌고, 가상현실인 인터넷 속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고, 지시하면서 현실 상황을 잊으려는 사용 시간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맥락적 가족치료이론가인 보스조르메니 내지(Boszormenyi-Nagy, 1973)는 자녀들이 발달단계상 부모의 역할을 할 준비가 되기 전에 부모의 책임감을 과도하게 떠맡고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부모화(Parentification)로 정의했다. 부모화는 역할에 따라 물리적 부모화, 정서적 부모화, 불공평으로 구분한다. 물리적 부모화는 기능적이고 구체적인 과업을 자녀들에게 맡기는 것이고, 정서적 부모화는 사회적 관계에서 충족되어야 할 정서적 안정을 자녀를 통해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불공평은 가족들이 각자의 능력과 자원 부담, 의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족 내에서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공평한 가이다.  

O양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잦은 갈등을 경험하면서 정서적으로 엄마와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O양은 아빠와 다툰 후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딸이었다. 엄마와 O양의 관계는 끈끈함과 유대관계를 뛰어 넘어 일종의 운명 공동체를 형성했지만 이 운명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가 아닌 갈등과 불안을 내포한 공동체였다. O양은 엄마를 돌보는 사이 자신은 방치되고 심신은 긴장감으로 지쳐갔다. 엄마의 눈물을 닦아드리기 위해 엄마가 원하는 것을 수행하지만 엄마에 대한 연민과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양가감정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아바타(avatar)는 인터넷 채팅이나 머드 게임 등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존재로 내세우는 가상육체이다. O양은 엄마를 대신하는 아바타로서의 인생을 선택했다. 20대 여성들에게 붙여진 신조어 4B(비,非) 세대, 곧 비연애, 비성관계, 비혼, 비출산의 삶을 말이다. O양은 엄마로부터의 떠남과 잔류라는 이중적 감정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인생의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 재건축의 방법은 건강한 분리이다. 건강한 분리는 모녀간의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담에서는 O양이 부모화 역할로 인한 억압된 정서를 표현할 수 있도록 정서표현 훈련과 자기주장 훈련을 지속적으로 부여했다. 그리고 부모화의 원인이 되는 경제적인 측면, 가족체계 등을 고려한 사회적 지원을 함께 모색하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가족 안에서 탄생하고, 가족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다 가족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그 삶을 펼쳐가며 가족과 함께 울고, 웃고, 많은 경험을 공유한다. 특히 동거 부모와의 관계가 안 좋으면 정상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른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갖게 된다. 이는 자존감을 낮추고 결혼과 인생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하는 주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이 동거 부모와 원만한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가족상담과 심리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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