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의 대중성 확대 새 지평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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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의 대중성 확대 새 지평 열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0.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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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공장노동자 대변한, 정세훈의 〈맑은 하늘을 보면〉

연재 형식의 이글은 노동문학관이 소장한 1천여 점의 관련 자료 중 우선 당국으로부터 공식 자료로 승인받아 진열한 105권의 도서를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 그 순서에 따라 이번에 부득이 필자의 졸저를 다룬다. 독자 제현의 깊은 이해를 구한다.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시기이다. 전반기에 다소 위축되었으나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노동운동에 노동문학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문학은 투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하는 노동운동의 선전 선동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따라서 투쟁성과 계급의식을 담아 선전 선동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자 하는 노동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싸움, 피, 투쟁, 농성 같은 말 대신 흐느낌 같은 감동의 목소리로 또 다른 빼어난 선전효과를 준 정세훈의 시집 <맑은 하늘을 보면>이 출간되어 주목을 받았다. 1990년 11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며, ‘창비시선’ 90번째로 출간된 시집에는 공단마을을 비롯한 소시민 민중의 삶과 고통, 애환 등을 세밀하고 리얼하게 담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거동마저 불편해진 그는/끝내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셋방 쪽문 밑으로/해그림자 깔릴 무렵이면/어김없이 돌아오던 아내가/달포째 늦어지는 이유를/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화장을 별로 즐겨 하지 않던 그녀가/요즈음 들어서 부쩍/얼굴에 분칠을 해대는 이유를/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밤마다 늦은 밤 부엌에 나가/조용히 긴긴 울음을 놓는 이유를/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앞으로 잔업이 있으면/있는 대로 다 해야겠다는/아내의 슬픈 말을/끝까지 믿기로 마음먹었다.//아내가/퇴폐 이발소에 나가는 것 같다는/문병 왔던 친구의 말을 /잊기로 마음먹었다.” -<산재産災 1-분칠> 전문- 

한만수 문학평론가는 시집 발문에서 “이 시집에 실린 70여편의 작품에는 탈(퍼소나)의 사용도 없고, 기발한 발상의 은유나 말비틀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시인이란 기교주의자다. 노동자의 시는 기교가 아니라 얘기이다.”며 “하지만 기교가 없다. 기교를 거부한다는 말은 형식적 요소가 베풀어주는 감동증폭·보온능력을 송두리째 버린다는 말이 아니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성이나 바이브레이션을 섞어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노동자로서 정세훈은 되레 능란한 얘기꾼이다”라고 평했다. 

시인은, 시집 후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봄에 어쩔 수 없이 객지로 나왔다. 큰 공장에 들어가서 몇십 년 푹 썩다 보면 배고픔쯤이야 면해지겠지 싶어 그리해 볼 양이었는데 학벌이 적어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 와중에서도 쓸만한 글 하나 남기는 사람이 되어보리라 작심했던 어린 시절 그 꿈을 잊질 못해서 항상 긴장하며 살아왔다.”고 진술했듯, 소년공으로 노동법 조항 하나 적용받지 못하는 소규모 공장 사업장을 전전하며 노동해 왔다. 자신이 뼈저리게 겪은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노래함으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직화 되지 못하였으며 투쟁의 구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소규모 공장노동자들의 대변 역할을 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시인은 지난 2020년 8월 15일 노동과 노동문학의 참된 가치와 얼을 현대는 물론 후대에게 전하고 심어주기 위한 노동문학관을 고향 홍성에 건립, 이후 관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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