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부정적 감정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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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부정적 감정 유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4.0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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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30대 후반의 전업주부이다. K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딸이다. 하지만 서로 갈등이 잦고, 양육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소진을 넘어 탈진이 될 것 같다. 딸은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한다. 배우고 싶은 열정도 있지만 더 원하는 것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이 현재 친하게 지내는 아이는 한 명이다. K씨는 딸이 원하는 것은 항상 우선적으로 지원했다. 학원과 학교 등을 선택할 때에도 딸이 기준이었고, 이 지역으로 전학을 결정할 때에도 딸이 우선순위였다. 

딸은 로블록스 게임과 웹툰을 즐겨 한다. 평일에는 학원을 다녀온 후 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주말에는 17시간 이상을 평균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때마다 제재를 하지만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쿵쾅대며, 부모에게 욕을 한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K씨의 남편이 딸에게 체벌을 가하자 딸이 경찰서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다. 

K씨는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후 어머니는 6명의 딸을 혼자 키우기 위해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K씨는 막내로 큰언니의 돌봄을 받았고, 큰언니가 엄마를 대신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육상대회에서 1등을 거머쥘 정도로 운동능력이 뛰어나서 체육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큰언니의 권유로 인문계에 입학했고, 대학도 현실적인 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재테크도 하고, 노래, 악기, 운동 등 하고 싶은 것들을 즐기면서 살았다. 그러다 남편을 소개받았고,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임신 6개월 때 결혼식을 올렸다. 

딸을 출산하기 이틀 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다가 출산 후 60여 일 만에 출근을 했다. 친정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딸이 16개월 될 때까지 돌봐주셨지만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친정어머니는 본가로 돌아가셨다. 어쩔 수 없이 딸을 어린이집에 등하원을 시키면서 무관심한 남편과 간섭이 잦은 시부모님으로 결혼생활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어린이집에서도 딸은 아이들과 원만하지 못했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이러면 앞으로 왕따 될 것 같아 걱정이에요”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보웬가족상담이론에서는 사람의 기능 수준을 자아분화와 만성불안으로 접근한다. 여기에서 분화(differentiation)는 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지적체계를 통해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는가의 정도를 나타내고, 개인의 감정적 성숙도(emotional matunity)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한편 만성불안은 실제나 가상의 위협에 대한 유기체의 반응으로 환경적 위협에 대한 감정적 반응도와 동일하다. 이 불안은 가족들 간의 정서적 융합이 강할수록 더 커지고, 이전 세대의 부모가 불안이 높을수록 자녀도 불안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다. 

청소년기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만성불안감을 고취시켰다. 그 이후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것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억압시켰다. 그 억압과 만성불안은 딸과 불안정 애착으로 형성됐고, 딸을 향한 과잉 간섭과 통제는 또다시 딸에게 부정적 애착 표상을 갖게 했다. 그러므로 딸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욕구가 수용되지 않을 때는 짜증과 신경질, 부정적인 정서와 산만함, 과잉행동 등 다양한 문제 행동이 보였고, 이는 또다시 K씨와 갈등의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부모는 자신의 억압된 정서와 욕구를 자녀에게 투사한다. 그러므로 딸을 향한 과도한 우선권과 통제, 그리고 허용이 일관되지 못한 양육태도를 갖게 했고, 또래관계에서 원만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K씨와 딸에게 상담자로서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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