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행정리에 들어와 하우스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겨우 6년차. 20대 때부터 시작한 귀농이니 이제 어디 가서 귀농인이라 말하기도 남사스러워 귀농인 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차라리 동네 분들과 같이 있는 게 편하게 느껴진다. 꼴에 선배랍시고 요즘 새로 귀농하시는 분들 보면 농사를 쉽게 안다며 발끈하기도 하고 마을에 들어왔으면 일단 마을 분들의 말씀과 규칙에 순응해야한다고 쉽게 말한다. 본인도 처음에 어려웠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난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군적 없다고 하면 동네 분들은 너도 처음에 싸가지 없었단 얼굴이시다.
결국은 귀농인도 아니고 동네원주민도 아니고 중간에 껴서 어디에 속했는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어중간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뇌구조가 귀농인에서 원주민으로 옮겨가느라 그렇다며 위안하지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완전한 내편은 없다는 것에 가끔 심각하게 외롭다. 결정적인 일이 닥치면 다 자기편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겠지만 나는 혼자 남게 될거란 막연한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뭘 작은 농촌에서 원주민, 귀농인을 나누느냐고 하겠지만 엄연히 있는 구분이다.
그런 내가 마을의 리더란 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거 자리를 잘 잡아야지 뭣도 모르는 게 괜히 조용한 마을을 흙탕물 만드는 미꾸라지는 되면 안되는데 그 점이 제일 조심스럽다. 그러다 마주한 것이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다. 어떤 사안에 있어서 한발 물러서서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촉진하고 서로의 의견을 화합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촉진자가 퍼실리테이터다.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교육한다며 온 퍼실리테이터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현명해보이던지 나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겠구나 싶다. 물론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란 점에서 약간은 다르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는 점, 개인적 욕심을 부렸다가 잘못되면 날 위해줄 결정적 편이 없다는 불안감이 이권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가 욕심이 없고 착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욕 안 먹고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골치 아픈 일은 무엇하러 하는 걸까. 나는 그냥 이런 일에 묘하게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마을일은 잘해야 본전이란 경고를 하시면서도 나름 뜻 깊은 일이라는 지인 분들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또한 동네 분들은 평생 사셨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으신 것들이 내 눈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그냥 넘기기엔 아까운 것들을 잘 지켜서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면 좋겠다. 나는 단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런 아름다운 마을에 내 농장이 있다는 것만 나에게 남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사업을 하며 만나게 되는 좋은 분들과 교육을 받으며 여러 가지 배우게 되는 것도 만족스럽다.
우리 마을 이장님도 좋고 마을 분들도 교육에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잘 참여해주어 다행이지만. 어찌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몸을 낮춰 이 마을을 들고 휘젓고 다니는 리더가 아니라 조심스런 조력자로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