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竹島)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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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竹島)를 바라보며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3.11.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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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21>

 


모든 물이 흘러내려도
결국에는 바다에 모여 드는구나
안면도에서 편안한 잠을 이룬 물줄기와
덕숭산 수덕사 비구니의 숨소리로 내린 물줄기가
천수만에서 만나 격한 심장으로 떠 있구나

안면도로부터도 아니다, 육지인
남당으로부터도 아닌
이리도 저리도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하고
천수만에 떠 있는 열두 댓섬
외로움이란 일 년 열두 달 매양
무리지어 출렁이는
우화(寓話) 같은 것이 아닐까

늘 푸르기만 하면
외로움도 고절(孤節)이 된다,
시누대밭을 지나 바다로
기다림처럼 앞으로 가야할 길
까마귀를 길조라 외치고 나면
섬만의 외로움도
상서로운 조짐이 된다

나의 몸을 베어 나를 지켜다오
외로움을 찌르는 화살이 되어
삼별초의 피얼룩이 푸르게
푸르게 이루어낸 죽도의 시누대밭
오, 핏기 잃은 낮달은
바다에 빠져 있어도
어제 오늘 여전히 하늘에 떠 있구나

죽도는 본래 충남 서산군 안면도 지역으로 1914년 안면면이었다가 1989년 1월 1일 충남 홍성군 서부면으로 편입된 안면도와 홍성군 남당리 사이의 천수만에 있는 조그마한 섬이다. 홍성군 서부면 서쪽에 있는 홍성군 유일의 유인도로 섬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竹島)'라 불리운다. 유인도로 물이 빠지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이 죽도는 삼별초의 항몽지(抗蒙地)로 알려져 있다. 삼별초(三別抄)란 고려 무신정권 때 최우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유래하는데 삼별초는 이 야별초를 둘로 나눈 좌별초(左別抄)와 우별초(右別抄)가 몽고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병사들인 신의군(神義軍)으로 구성됐다. 이 삼별초의 항쟁은 1270년부터 1273년 사이에 강화도에 있던 삼별초가 진도,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몽고와 고려의 친몽세력에 반대하여 일으킨 항몽투쟁을 말하는데 고려와 몽골(원나라)와의 전쟁이 끝난 뒤 몽골 및 고려 왕조에 대항한 항쟁에서 선봉에 섰던 삼별초가 반몽정권(反蒙政權)을 수립한 이후 이탈자가 속출하여 경계가 어렵게 되자 1000여 함선을 징발하여 고려 정부의 재화와 백성을 모두 싣고 강화도를 떠나 서해안 요지를 공략하기도 하였다. 육지와는 달리 이 죽도에서는 까치가 오히려 흉조 까마귀를 오히려 길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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