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펭귄의 '허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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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펭귄의 '허들링'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11.28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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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MBC에서 방영했던 '남극의 눈물'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황제펭귄의 부성애와 '허들링'이라는 생존 방식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영하 40~50도의 혹한 속에서 황제펭귄들은 생존하기 위해 무리의 가장 바깥에 있는 펭귄과 안쪽의 펭귄이 차례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었다. 이 지혜로운 허들링을 통해 일정온도를 유지한 수컷은 자신의 발등위에서 알을 품어 부화시키고 있었고 이것으로 황제펭귄들의 종족도 보존하고 있었다. 협동과 배려가 자신의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이 조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들에게 펭귄 중의 '황제'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황제펭귄들의 허들링과는 거리가 멀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무리의 바깥을 늘 서성인다. 지난해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국민소득 16.6%를 가져갔다. 이것은 OECD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2위이다. 올해도 부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부자들은 부를 더욱 늘려가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빚만 부풀리고 있다는 발표다. 그러다보니 자살률은 OECD 1위에 이르고 청소년들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소득 불균형으로 인해 국민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4.2점으로 OECD 34개국 중 32위를 차지한다. 돈 때문에 자살하고 돈 때문에 행복하지 않고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돈은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쳐 보았자 그들에겐 뻔한 공염불처럼 들릴 것이다.
소득 불균형으로 인하여 먹고살기 힘든 것은 단지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2011년 9월 17일 자본주의 심장인 뉴욕의 한복판에서 1000여 명이 모여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아래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을 지탄하고 빈부격차의 해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것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갚기 힘들다는 99%의 아우성이다. 그러나 그 이후도 '고장난 자본주의'는 굴러가고 있고 소득의 양극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의 이런 속성을 간파한 마르크스는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내놓았지만 그 실험은 이미 실패로 끝났고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무한경쟁으로 몰고 가 이제는 생존 게임에서 내가 언제 탈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데도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지고 세상은 우울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독일의 베를린 예술대 한병철 교수가 언급하는 소위 '피로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언제 '루저(loser)'로 탈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 '소진(burn-out)사회'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여 소득을 높여주는 방법일 것이다. 맬더스가 '가난한 자의 주머니를 채워라. 그러면 소비가 촉진된다'라고 했던 말도 소득불균형과 닿아 있다. 빚을 갚기에도 허덕이는데 소비가 촉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같은 장기침체가 발생하는 것도 쓸 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1%가 아니라 99%의 손에도 적당한 돈이 돌게 해야 한다. 동정심에 기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몇 푼의 돈을 나누어 주는 복지가 아니라 약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건강한 복지가 국가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 복지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백수로 지내는 고용불안정 구조는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
가난하면 당장 살아나가기도 어렵고 뜻을 이루는 일은 더욱 어렵다. 궁핍은 예술적 창조에도 학문적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생명체들의 기본적인 임무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자본주의 사회다. 이것이 국가의 역량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한, 가진 자들의 '허들링'이 필요하다. 사회가 얼마나 문명화됐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은 약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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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정 2013-12-09 20:42:09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가끔은 헉~~~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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