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부 문화, 우리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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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부 문화, 우리 손으로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4.11.21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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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이 아주 기쁜 날입니다. 앞으로 장래가 창창한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종자돈을 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든 환경이라고 좌절하지 말고, 꿋꿋하게 이겨내어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성장하여 사회 각처에서 건실한 주역이 되는 날, 오늘 제가 빌려 준 돈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의 후대에게 더 큰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지난 10월 6일, ‘너른내 장학회’장학금 수여식장에서 편기범 이사장님의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말씀이었다. 장학금 수여 대상 학생을 인솔한 필자의 가슴이 갑자기 먹먹해졌다.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예전에는 이번처럼 감동을 받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창하게 이름을 드러내고 하는 기부사업들은 다른 꿍꿍이속이 있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인지 모른다. 위 사업보다 더 거창하게 했던 ‘00장학회’의 경우에도 당신이 정계에 발을 디딘 후부터는 사라져버렸다.

“저는 한 해에 5천만 원 정도의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연비와 저서인쇄료를 단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언제 어떤 곳에서 강연을 요청하면 발 벗고 뛰어갔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치사한 경우도 있었지만, 장학금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일념으로 참고 이겨냈습니다. 이제 올해가 지나면 70을 넘기에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35년 간 당신의 고향인 광천을 중심으로 홍성지역에서 남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기부 문화를 솔선하신 편기범 이사장님! 몇 년 전만 하여도 ‘정치에 뜻을 두고 하시는 것이나 아닐까?’ 라고 생각했기에 필자도 요식행위 식으로 넘어갔는지 모른다.

또한 어지간한 직장인의 1년 연봉을 넘어서는 액수를 마련하기 위해 1년 내내 피나는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신 점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분의 연세가 일흔에 이르고 있으니, 다른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그 의중이 드러났을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언제든지 경제적으로는 타인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상충적인 점이 많지만,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함께 동반하고 있다.

따라서 입으로는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외치지만, 실제 생활면에서는 언제든지 노예가 될 수 있는 부조리를 안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를 해결해 줄 가장 좋은 방법은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부 문화가 발달하면 할수록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경제논리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신의 능력과 기회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주인의식을 갖되,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게임이 운영될 수 있도록 가장 공평한 판을 벌여주는 것이다.

즉 아름다운 기부문화를 통해 자본주의사회의 자본 편중성을 와해하면서 소외계층도 언제든지 공평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그 능력과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게임을 건강하고 항상 긴장감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건강한 기부 문화를 통해 나름대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를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지 못한 나라들을 보면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까지 내배만 채우려는 검은 자본주의에 물들어있다. 우리나라도 남의 것을 탈취하면서 내 배를 채우려는 마음은 강해도 함께 잘 살기 위한 기부의 마음은 아주 미약하다. 미국의 카네기나 록펠러를 아직까지 한국에서 찾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찾아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내야 한다. 검게, 검게 물들어가는 한국사회를 내 눈으로 지켜보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방법은 빵부스러기 던져주듯 하는 것이 아닌, 단 하나뿐인 고귀한 왕관과 같은 값어치의 명예를 얹어주는 것이다. 그 어떤 권력이나 재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는 명예를 지켜주는 일이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을 때 나라를 지킨 장군도 훌륭하지만, 더 강하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반평생 이상을 장학사업에 몸 바친 편기범 이사장님 같은 분을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 받들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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