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깊고 날카로운 상처 몇 개씩은 가지고 있다. 타인과 의견 상충으로 오는 개인적인 실망부터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 사건과 같은 사회적인 충격까지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처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스럽게도(혹은, 간사하게도), 인간은 이러한 다양한 상처를 망각하거나, 그 상처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종내에는 이를 극복하는 내성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회복과 치유를 거머쥘 수 있다. 삶은 그렇게 상처와 회복이 반복되는 긴 여정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이가 상처의 경험에서 완벽히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에 매몰되고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는 심리적 상처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오래 머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이겨낼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유년시절의 상처가 제일 아프고 쓰라리다. 어린 나이에 맞이하는 마음의 상처는 마치 응당 겪어야하는 과정으로 알고 지내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하거나 치유하는지도 모르고 무심히 지나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상처는 훗날 성인이 되어 습한 늪지대에서 슬그머니 떠오르는 검은 연기가 되어 일생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열 살쯤의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구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기형도처럼 ‘천천히 숙제’를 하거나, ‘빈 방’에 ‘찬밥처럼’ 홀로 남겨지기 싫어 밖에 나가 동무들과 뛰어놀았다. 이른 어둠이 내리면 우리 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굴뚝에서 하나둘씩 연기가 피워 오르고, 그 순서에 맞추어 아이들은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갔다. 동무들이 모두 돌아간 빈자리에서 어린 나는 우두커니 서성이고 있다가 ‘배추잎 같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항상 바쁜 부모님은 먹물같이 어두운 밤이 내려서야 집에 돌아왔다. 우등상장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도, 친구들과 싸우거나 종례시간에 회초리를 맞아 우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도 인기척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너무 서글퍼 안방 장롱에서 어머니의 옷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파묻고 울기도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시뻘건 대낮이 훗날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기형도의 시에서 지난 과거에 대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러한 동질감이 나로 하여금 어떤 의식처럼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91>을 읽게 만든다. 허무주의의 색깔을 잔득 입힌 기이하고도 담담한 그의 시를 읽으면 차분함을 넘어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기형도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담담히 드러내고 쓸쓸하게 노래하는 데서 시작된다.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진 아픈 아버지 대신 7남매의 가계를 짊어진 어머니의 힘겨웠던 삶과, ‘몸에선 석유냄새’가 나고 ‘자전거도 타지 않고 책가방을 든 채’ 신문 백 장을 돌리며 가계를 도우는 누이들, 그리고 ‘나의 영혼은 /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라고 기억하는 기형도 자신의 어두웠던 어린 시절이 도처에서 우울과 비관의 색으로 칠해진다. 성년이 되어서도 개인적인 상처와 비극적 체험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끊임없이 찢긴 자아의 내면세계를 지배하는 염세주의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고 추억하는 이 젊은 시인은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 /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 <빈집, 1989>라며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종로 3가의 한 극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기형도는 어떻게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렇게도 담담하고 초연하게 노래할 수 있었을까. 대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는 현실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아름다움, 추함과 대립되는 의미의 아름다움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목표한다’고 설명했다. 기형도는 자신의 상처를 아프고 먹먹하지만 본인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인식했다. 상처받은 문학 대중이 그의 유고 시집에 일방적으로 열광하는 이유 또한 그의 시에서 각자의 상처를 꺼내어 공감하고 위로 받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