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육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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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의 자화상
  • 범상 <석불사 주지․칼럼위원>
  • 승인 2015.03.0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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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세상을 만든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지구에서 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교육방법을 발전시켜왔고, 필요에 따라 의도된 교육으로 사회가 원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의도된 교육은 이념 또는 ‘믿음으로 세뇌되는 종교’에서처럼 갈등과 대립 등 역기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고 문화, 예술 등을 발전시킴으로서 인간다움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우주에 모든 것은 확정지어진 것도 없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도 없다. 다만 인연(상황)에 따라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함’을 근간으로 설해지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고, 교육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과학은 물질의 새로운 조합을 유도하여 신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은 변하는 것이므로 삶의 가치가 있다. 컴퓨터를 교육에 비유해보면,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는 컴퓨터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용자는 용도에 맞게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그에 따라 컴퓨터의 기능과 역할은 달라진다. 자녀교육 역시 이와 같다. 아이에게 부모는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최초의 선생(프로그램 입력자)이 된다. 특히 인간은 교육 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의 기초로 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에 적응해가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간다.

부부폭력을 보고자란 아이가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최초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폭력성이 이성이 마비되는 극한 상황에 처하면 자신도 모르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심신수련을 위해서 배웠던 각종 스포츠가 폭력의 도구로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듯이” 가정교육 즉, 부모에 따라 아이가 습득한 교육내용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학대가 사회적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체벌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간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가정교육을 소홀히 하면서도 모든 책임을 사회교육기관과 학교에 돌리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낼 때, 부모는 공동체에 적응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교육을 시켜야 한다. 비록 분별력이 없는 영아라 할지라도 부모의 책임이 먼저이다. 왜냐하면 자녀를 직접 양육할 것인가, 아니면 기관에 위탁할 것인가는 온전히 부모의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례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몇 해 전 미국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한국인교수가 방문했다. 그는 강연 후 교육에 대한 토론시간에 미국에서는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지적받으면, 부모에게 더욱 혼쭐이 날 만큼 교육의 권위가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교실분위기는 경악 할 만큼 선생님의 권위가 없었다며 한국에서의 경험을 덧붙였다. 그리고 교수사회에서는 학맥과 학제 간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등 교육이 살아있음을 강조했다.

교사의 체벌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체벌 근절의 첫 단추는 부모들의 가정교육이다. 어떤 어머니에게 훌륭한 어머니 상을 수여 한다고 하자 “나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녀에게는 훌륭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집 자녀에게는 무자비한 어른이었기 때문입니다.”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이처럼 교사들의 체벌 뒤에는 분명 “내 새끼 제일주의”라는 한국사회의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비록 현재는 교사이지만 그 역시 우리사회에서 성장한 한 인격체로서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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