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쯤에서 나무그늘과 평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무그늘 밑에 평상을 설치해 놓고, 무더운 한낮에 즐기는 낮잠은 천국(天國)의 맛 그대로일 것이다. 낮잠에서 깬 때에는 시원하게 계곡물에 담가 둔(요즘에는 곳곳에 냉장고가 있는 만큼 냉장고에서 꺼내어) 수박화채를 즐기는 맛은 천국에서도 부러워할지 모른다. 곁에 친구가 함께 있어 오순도순 담소를 즐길 수 있다면, 그 어느 고명 맛보다 더 달콤하리라. 그렇지만, 그 달콤한 시간들도 길어지면 무료해진다. 낮잠은 허리 아프고, 수박화채 맛은 밋밋해지며, 친구와의 대화도 공허해진다. 일반 사람들은 그 무료함을 깨기 위하여 단체로 모이고,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흥청망청하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복통과 두통을 앓는 경우가 태반이며, 그 이전보다 몸과 마음이 허약해지는 경우가 또한 태반이다. 즉, 잘못된 피서로 인해 생으로 병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여름에 나무그늘 밑에서 낮잠과 수박화채와 친구와의 대화 등은 꿈같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도 무언가 꼭 빠진 듯한, 그래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미완(未完)의 딜레마에 빠진다. 그때, 평상 한 쪽에 평소에 꼭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놓아보자. 낮잠도 자고, 수박화채도 먹고, 친구와의 대화도 나누자. 그러다가 무료한 시간에 무심코 책을 들어보자. 어느 순간 책 속에 빠져 무아경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독서야말로 인간의 무료함을 치유해주는 직통약이다. 여름에 읽는 책들은 조금 가벼운 책들이길 바란다. 지식 위주의 전공서적이 아닌, 인성함양 중심의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들이라면 책을 읽는 또 다른 지루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터이다. 그렇잖아도 요즘 전국적으로 인문학 서적 읽기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장르의 독서는 잔잔하게 자신의 반성과 통찰(洞察)을 하는 기회를 준다. 그럼으로써 내일을 향할 내 발걸음의 강도와 속도를 가늠하고, 조절해볼 수 있게 된다.
누가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고 했는가! 가을은 그야말로 수확의 계절이다. 가장 바쁜 계절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비지땀을 흘려야 할 때이다. 따라서 독서를 할 겨를이 없는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에도 독서를 즐길 수 있다면 독서광이나 독서 왕이 될지는 모른다. 즉, 아무리 바쁜 가운데에서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쓰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 여름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10여 권 정도 미리 준비하여 놓고, 무료할 때마다 책을 들어보는 습관을 붙여보자. 아마 더 싱싱한 가을과 훈훈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서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 즐기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