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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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5.07.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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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청양(靑羊)의 해도 절반이 뜯겨져 나갔다. 계절적으로는 겨울과 봄이 지나고, 성하(盛夏)의 중심에 다가와 있다. 1학기 2회고사(기말고사)를 마친 학생들은 며칠 남지 않은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여름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물론 봄이나 가을처럼 열심히 뛰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될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쓰러져서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여름을 슬기롭게 지내는 방법으로는 지나치게 일이나 운동에 몰두하지 않고, 적정한 휴식을 즐기며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목쯤에서 나무그늘과 평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무그늘 밑에 평상을 설치해 놓고, 무더운 한낮에 즐기는 낮잠은 천국(天國)의 맛 그대로일 것이다. 낮잠에서 깬 때에는 시원하게 계곡물에 담가 둔(요즘에는 곳곳에 냉장고가 있는 만큼 냉장고에서 꺼내어) 수박화채를 즐기는 맛은 천국에서도 부러워할지 모른다. 곁에 친구가 함께 있어 오순도순 담소를 즐길 수 있다면, 그 어느 고명 맛보다 더 달콤하리라. 그렇지만, 그 달콤한 시간들도 길어지면 무료해진다. 낮잠은 허리 아프고, 수박화채 맛은 밋밋해지며, 친구와의 대화도 공허해진다. 일반 사람들은 그 무료함을 깨기 위하여 단체로 모이고,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흥청망청하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복통과 두통을 앓는 경우가 태반이며, 그 이전보다 몸과 마음이 허약해지는 경우가 또한 태반이다. 즉, 잘못된 피서로 인해 생으로 병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여름에 나무그늘 밑에서 낮잠과 수박화채와 친구와의 대화 등은 꿈같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도 무언가 꼭 빠진 듯한, 그래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미완(未完)의 딜레마에 빠진다. 그때, 평상 한 쪽에 평소에 꼭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놓아보자. 낮잠도 자고, 수박화채도 먹고, 친구와의 대화도 나누자. 그러다가 무료한 시간에 무심코 책을 들어보자. 어느 순간 책 속에 빠져 무아경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독서야말로 인간의 무료함을 치유해주는 직통약이다. 여름에 읽는 책들은 조금 가벼운 책들이길 바란다. 지식 위주의 전공서적이 아닌, 인성함양 중심의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들이라면 책을 읽는 또 다른 지루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터이다. 그렇잖아도 요즘 전국적으로 인문학 서적 읽기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장르의 독서는 잔잔하게 자신의 반성과 통찰(洞察)을 하는 기회를 준다. 그럼으로써 내일을 향할 내 발걸음의 강도와 속도를 가늠하고, 조절해볼 수 있게 된다.

누가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고 했는가! 가을은 그야말로 수확의 계절이다. 가장 바쁜 계절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비지땀을 흘려야 할 때이다. 따라서 독서를 할 겨를이 없는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에도 독서를 즐길 수 있다면 독서광이나 독서 왕이 될지는 모른다. 즉, 아무리 바쁜 가운데에서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쓰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 여름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10여 권 정도 미리 준비하여 놓고, 무료할 때마다 책을 들어보는 습관을 붙여보자. 아마 더 싱싱한 가을과 훈훈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서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 즐기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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