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시와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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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시와 30분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5.08.0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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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점으로 하여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12개의 세로선을 그어 구분지은 것을 경도(經度)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시간이 정해진다. 표준시는 태양의 평균적인 운행을 기준으로 한 시간으로, 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평균시다. 중국은 북경부근을 지나는 동경(東經,동쪽경도) 120°선을 표준시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고, 일본은 본토를 지나는 135°선을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동경 135°를 표준시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시간이 같다. 그런데, 동경 135°는 우리나라의 영토가 전혀 속해있지 않은 곳이다. 우리 영토를 지나는 선은 동경 127.5° 이다. 이 수치는 정확히 중국과 일본 표준시의 중간이며 시간상으로 30분 거리에 해당된다. 즉, 일본보다는 30분 늦고, 중국으로부터는 30분 빠른 곳에 우리나라가 위치해 있는 것이다.

 

표준시가 정해지기 전에는, 각 나라의 왕이 사는 궁궐 앞에 태양이 남중 했을 때(그림자가 가장 짧아질 때)를 정오로 삼는 방식을 택했다. 표준시가 생기고 나서는 각 나라를 지나는 선을 스스로 결정하여 사용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동경 135°는 일본인들의 생체리듬에는 정확하게 맞다. 낮 12시에 점심을 먹는다고 하면 일본인들은 정확한 제시간인 반면, 한국인은 사실상 11시30분에 먹게 되는 것이다. 즉, 일본사람은 일본 영토 가운데에 해가 위치했을 때 점심을 먹지만 우리나라는 해가 중천에 오기 30분 전을 점심이라고 정하고 먹게 되는 것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5시 30분에 일어난 셈이다. 따라서 한국인은 무엇이든 태양시보다 30분을 일찍 시작하게 되어 우리의 생체리듬은 ‘빨리빨리’로 서서히 변해가게 되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씩 늦게 가는 것을 한때 ‘코리안 타임’이라고도 하였는데 사실은 그것이 정확한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일본의 시간을 가져다 쓰게 되었을까. 1897년, 대한제국의 설립 후 우리는 동경 127.5도를 표준시로 제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국권피탈 후인 1911년, 일제는 우리의 표준시를 일본과 동일한 135°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인 1954년 3월, 이승만 정권 때에 다시 동경 127.5°를 우리의 표준시로 재적용 하였다. 당시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 극동사령부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으나(한국, 일본의 작전지시 관계상 동일시간대 적용 요청) 뜻대로 관철시켰다. 우리 국민들은 국토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광복을 맞았다며 매우 환호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는 우리의 표준시를 일본의 표준시로 환원시키는 조치를 내렸고 이후로 지금까지 굳어지게 되었다.

우리의 표준시를 되찾자는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의식 있는 국회의원 몇몇이 꾸준하게 표준시 개정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였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혼란스럽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동양철학계에서는 우리의 실정에 맞추어 자시(子時)를 11~01시에서 11:30~01:30분으로 이미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30분은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약 2%에 해당된다. 우리 몸은 언제나 2%가 부족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사라진 30분을 기억한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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