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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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 강국주(녹색당·칼럼위원)
  • 승인 2015.08.1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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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극소수의 예외적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기 없이 산다는 건, 지금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일 것만 같다. 나만 해도 그렇다. 환경운동을 한답시고, 녹색당 활동을 한답시고, 지구를 살리네 어쩌네 오지랖을 떨지만, 사는 일 자체가 다른 생(生)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하루도 연명할 수 없는 게 지금 내 사는 꼬락서니의 정직한 모습이다. 왜 이런 신세 한탄을 할까. 그놈의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 때문이다. 핵발전소가 어쨌길래? 핵발전소를 없애자고 시위도 하고 서명도 하고 강연도 하고 온갖 짓을 하지만, 정작 “그럼 넌 전기 없이 사나?”라는 힐문 앞엔 맥도 못추고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위험한 건 다 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 핵발전소 없으면 전기를 어떻게 쓴단 말이냐?” 이런 말 앞에 한없이 주눅든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읽은 한 권의 책에서, 그런 물음 앞에 더 이상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핵발전소 없이도 전기를 쓰며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전기 쓰는 것으로 따지면 시골 동네에 사는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전기를 많이 쓰는 축에 속하니까 자격지심도 더 심했지 싶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가 쓴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한티재)>를 보면, 정부에서 외치는 ‘전력난’의 실상은 자명하다. 진짜 ‘전력난’은 없다는 것. 이미 정부는 2014년 12월 무려 원전(원자력발전소) 10기 분량의 발전설비가 남아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핵발전소를 더 짓는 진짜 이유는?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전력 마피아’ 혹은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기득권 세력에게 전기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대기업에 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니 정부 입장에서는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요컨대 전기가 부족해서 핵발전소를 더 짓거나 수명이 다해 위험천만한 핵발전소(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등)를 연장 운행하는 게 아니라,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설혹 ‘전력난’이란 게 있다 해도, 실제로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시민들이 아무리 전기를 아껴 써도 전력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 전기의 대부분은 산업용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주택용 전기는 13.5%에 불과한데 산업용 전기 비중은 56%에 달한다. 달리 말해 일반 시민들이 아무리 절전을 해도 지금처럼 대기업들이 전기를 펑펑 쓴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는 대기업에게는 원가보다 낮게 전기를 공급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비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만 전기를 아껴 쓸 것을 강요하고, 나아가 가능성도 없는 ‘전력난’을 핑계로 발전소를, 특히나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사실 우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정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밀양 송전탑 싸움을 통해, 밀양의 할매 할배들을 통해, ‘나쁜 전기’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제 착한 전기를 위해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핵발전소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외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착한 정치가 필요하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나쁜 정치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착한 정치가 필요하다. 오는 6월 23일에는 밀양 송전탑 문제를 다룬 영화 <밀양 아리랑>이 홍성문화원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그리고 6월 30일에는 전국의 송전탑 문제를 다룬 책 <탈탈 원정대>의 북콘서트가 홍성에서 열린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진실은 먼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눈감고 있으면, 우리 앞에 있는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때 이른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요즘, 나쁜 전기가 아니라 착한 전기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와 책들을 통해, 진실을 알아가자. 그리고 널리 알리자. 착한 정치는 이러한 앎과 활동에서부터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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