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주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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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주의’를 경계한다
  • 강국주(녹색당·칼럼위원)
  • 승인 2015.08.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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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우리를 대신해 뛰어난 식견과 양심으로 올바르고 훌륭한 결정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때문에 갖가지 위원회를 보면 대개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따지고 보면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우리의 정치인들도 거개 전문가임을 자처한다.

지난해 나는, 새로 임기가 시작된 홍성군의회 제6대 의원들의 의정비 인상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심의위원회는 각계(군의회, 교육계, 시민사회단체, 언론계, 법조계 등등)의 추천을 받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고 나도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아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사실 의정비를 얼마나 인상할 것인지는 군민들의 의견을 묻고 또 물어 신중히 결정해야 함에도, 그 자리에 모인 10여 명이 몇 번의 회의를 거쳐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애초에는, 각계에서 추천한 양심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이고, 또한 심의할 사안 역시 심히 중요한 일이므로, 충분한 토의와 논의를 통해 군민들 다수의 이해를 반영해 결정되겠거니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첫 회의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적 역량을 가졌지만 일반 상식에 있어서는 문외한일 수도 있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나부터 그랬다. 나는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으로 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내 소신을 걸고 위원회에서 활동하기보다는 나를 추천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회의는 각계의 의견 차를 확인하는 데 그칠 뿐 도무지 합의를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의정비 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 개개인을 놓고 보면 양심 있는 분들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하지만 이들이 각 분야에서 추천받은 이상, 독립적인 개인의 양심과 식견에 따라 의견을 개진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러다 보니 각계의 의견을 피력하는 정도밖에 안됐던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이 이런 일이다. 전문가는 어디까지나 전문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전문가’는 ‘전문적인 분야의 일 하나에 국한해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전문가에게 결정권까지 주는 것은 퍽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나를 비롯해 그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의 의견만을 주로 대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한 보통 시민에게 결정권을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나온 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 어떻게?

가장 간단하고 분명한 방식은 선발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 가운데 무작위 추첨(제비뽑기)으로 ‘시민합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만약 의정비 심의위원회의 위원 구성을 홍성군민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결성했다고 치자. 이들은 자기가 속한 단체의 의견을 대신 전달하는 ‘전문가 전달자’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기 개인의 양식과 판단에 따라 보통 군민의 생각을 피력했을 것이다. 달리 말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홍성군민 평균의 상식이 관철됐을 확률이 컸을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전문가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군민들이 결정을 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정보와 자료 등을 통해 자문 역할을 하면 된다. 요컨대 자문은 전문가가 하고 결정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시민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두 가지 역할(자문과 결정)을 다 행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전문가는 공익보다는 자기가 속한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로 전락할 위험성이 더 크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가는 자신의 기득권을 더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사회는 참된 의미에서의 민주적 사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시민의 양식을 믿고 그들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면 된다. 전문가는 전문가답게 자문의 역할을 맡고 시민이 최종 결정을 하는 것, 오늘의 민주주의를 깊고 넓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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