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채광호 선생님”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이도 불러본 사람들의 이름가운데 한 분의 이름이 ‘채광호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30대 청년교사시절 홍성고등학교 입학식장에서 처음으로 스승과 제자로 ‘만남’이란 글자를 만들면서 인연을 맺은 이래 40여년의 세월이 그렇게 변함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2015년 10월 18일 오후 4시 “채광호 선생님, 별세 하셨네”란 비보를 4시 30분경 전해 듣는 순간 ‘청천병력이 이런 것인가’를 제 조부모님과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혜전대·청운대에 몸담으셨던 선배이자 언론인이셨던 김양수 교수님이 가신 이후 또 한 번 체험하면서 순간적으로 ‘허망’이란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10월 21일 오후 1시경 홍동면 팔괘리의 따뜻한 남향의 산자락에서 선생님과의 ‘이별’이란 단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74세를 일기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신 선생님의 유골함 봉분에 한 줌의 흙을 올려드리면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또한 인생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홍성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인연을 맺은 저에게 사모님과의 연애담을 들려주시던 모습도 생생합니다. 홍성고 교정에서의 선생님과의 만남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계속되다가 잠시 떨어져야 하는 운명으로 다가왔는데, 홍성고에서 유리창사건이 벌어지면서 20여분의 선생님들이 동시에 다른 학교로 떠나야 했던 그날 이었습니다. 공주 정안중학교로 가시는 선생님을 교문 밖까지 따라가면서 인사를 드렸을 때 해주시던 말씀이 지금까지도 제 삶의 지표와 자존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씩 편지로 안부를 전해 드리면 선생님께서도 바쁜 시간을 쪼개 답장을 주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답장에 담겨있던 당부와 격려가 시골 촌놈인 저에게는 두 번의 대학입학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결단의 힘이 됐고, 앞만 보고 살아가도록 하는 삶의 이정표였습니다. 겁 없는 용기였고 자존심이었습니다.
또한 멀리 타향 땅 다른 대학에 다니며 대학신문사에서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연루돼 피신하던 저에게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서슬 퍼런 군부독재시절, 예산농업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던 선생님은 공립학교 교원으로서 인보를 서주시며 바른길로 이끌어 주셨고, 미행하던 정보형사까지도 놀라게 했던 결단과 사랑은 지금까지도 존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2006년, 어머님의 건강관계로 제가 귀향문제를 상의 드리자 선뜻 반기시던 격려가 힘이 되어 25년여의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는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언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도 용기와 격려의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올곧은 양심과 행동으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나에겐 교직이 천직”이라는 철학으로 장항중학교, 정안중학교, 홍성중학교, 홍성고등학교 교사를 지내셨으며, 예산농업전문대학 교수, 혜전대학 교수로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선생님은 홍성과 충남지역의 교육현장에서 38년간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또한 1994년 초대 충청남도교육회 위원으로 당선된 이래 2대, 3대에 이어 2006년 7월 31일 제5대 교육위원에 당선돼 4선 교육위원으로 교육행정의 현장에서 봉사도 많이 하셨습니다. 또한 제3대 충청남도교육위원회 후반기 부의장과 제5대 충청남도교육위원회 전반기 의장을 지내시면서 묵묵히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청로회(회장 이철이)’등에 성금과 사랑을 전달하고 가족처럼 격려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청로회(회장 이철이)와 홍주일보·홍주신문(대표 한관우)에 남달리 보내주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올곧은 격려를 유지로 받들어 항상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교육현장에서의 경험과 경륜, 교육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하며, 교육자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홍성과 충남교육의 희망과 행복의 현안보따리를 시원하게 풀어주셨던 기억은 홍성과 충남교육의 현장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변화의 시기에 뚝심 있는 추진력과 경험과 경륜, 비전을 바탕으로 희망과 행복 가득한 홍성교육과 충남교육의 단추를 하나하나 끼는데 소임을 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선생님과 함께 몇 십년동안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면서, 그 많던 계획과 꿈, 희망을 실현했으면 했는데, 정말로 많은 아쉬움을 남기시고 가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런데 2015년 10월 사랑하는 수많은 제자들과 친구, 선후배 동문, 존경하는 많은 교육자, 선생님, 스승님들과도 인간의 죽음 앞에서는 순서가 없다지만 홀연히 ‘이별’이란 단어를 남긴 채 먼저 훌쩍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 존경하고 보고 싶은 채광호 선생님. 하늘나라의 낙토에서 영면하소서.
2015년 10월 29일
홍주일보·홍주신문 대표
제자 한관우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