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타이밍과 싸워야 하는 일들이 제법 많다. 야구에서는 투수와 타자들 간의 타이밍 싸움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고, 펀드 매니저는 주식을 사고파는 타이밍에 따라 고객에게 막대한 이익과 손해를 끼치기도 하며, 각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들은 타이밍을 이용한 협상으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한다. 이렇듯 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최종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심오한 결정은 비단 스포츠나 경제, 그리고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라면 조리에도 매우 중요하게 적용된다. 소싯적에 라면 좀 끓여 봤다는 라면 고수들은 하나같이 타이밍에 목숨을 건다. 라면과 스프를 넣는 타이밍에서부터 계란을 넣는 타이밍, 그리고 불을 끄고 잠시 뜸을 들이는 몇 초간의 타이밍에 따라 라면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계란과 파, 고춧가루는 기본이고 홍합, 쌈장, 심지어 설탕이나 식초를 넣는 등 라면이 개발된 이후 지난 50년 동안 맛있게 조리하는 비법 또한 수천가지가 넘을 정도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자신들만의 라면 레시피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할 정도로 라면의 인기는 시들 줄 모른다.
학창 시절, 이틀이 멀다하고 들락거렸던 단골 만화 가게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대흥동사무소 바로 옆,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1층 건물이다. 기껏해야 대여섯 평쯤 되는 공간은 온 사방이 만화책으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어 더욱 좁게 느껴졌다. 환갑이 충분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주인인데,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삐걱 거리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차분한 목소리로 환영해 주었다.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 낮은 담장을 이소룡처럼 단숨에 뛰어 넘어 실내화 차림으로 만화를 보러 가도 이러쿵저러쿵 수업에 대해 캐묻지 않아 좋았다. 그 작은 만화 가게 한쪽 구석에 잠자리를 갖춰 늦은 밤까지 문을 닫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의지할만한 가족이 없는 것 같았다. 이 외로운 주인 할머니에게 나는 좋은 친구였고, 나에게는 이 만화 가게가 편안한 안식처였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여분으로 하나 더 준비해 그 할머니 가슴에 달아주는 깜짝 이벤트를 할 정도로 당시의 그 만화 가게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장소였던 것이다.
내가 그 만화 가게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느 특급 요리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황홀한 라면 맛에 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서너 시쯤은 십대 중반의 혈기 왕성한 나에게 간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간이었다. 만화 가게에서 먹는 주인 할머니의 라면은 무언가 특별한 맛이 있었다. 그 라면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나는 할머니에게 레시피를 물어보기도 하고, 어깨너머로 할머니가 끓이는 라면의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서 여러 차례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내가 만든 라면의 맛은 만화 가게 할머니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똑같은 안성탕면을, 똑같은 양의 물을 넣고, 똑같은 시간을 끓여서, 똑같이 계란 반 개를 집어넣었음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똑같은 맛이 나지 않았다.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어쨌든 내가 그 만화 가게를 가는 이유의 반은 만화책을 보러 가는 것이었고, 나머지 반은 할머니의 황홀한 라면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가요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 신해철도 그 만화 가게에서 만큼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그저 할머니의 라면에 중독된 한 명의 배고픈 손님일 뿐이었다.
모름지기 라면은 구공탄과 옅은 노란색의 양은 냄비에 끓여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후루룩 짭짭’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 제 맛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사랑하는 맛으로 발전한 이 라면을 이제는 좀 살만해졌다고 ‘현대인이 피해야 할 대표적인 인스턴트 음식’이라고 매도하거나 ‘밤에 먹으면 얼굴이 붓는다’고 투덜대는 것은 수십 년간 우리 곁을 꿋꿋이 지킨 라면에 대한 올바른 예의라고 할 수 없겠다.
야심한 밤 혼자서 여유롭게 인터넷 바둑을 즐기며 먹는 라면이나 스키장에서 언 몸을 녹이며 따뜻한 정종과 함께 먹는 라면을 ‘싸고 영양가 없는 식품’이라고 비하할 수는 없다. 식탁에서는 한 끼의 일용한 식사가 되고, 밥 옆에서는 근사한 국이 되고, 술상 위에서는 탁월한 소주 안주가 되고, 다음날 아침에는 아주 좋은 해장국이 되는 라면의 다재다능함을 따를 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영국인이 위대한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았듯이, 나는 우리의 위대한 라면을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나 중국의 궁중요리와 바꿀 뜻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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