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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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꿈입니다
  • 정규준 <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02.04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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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바른생활 책에서 읽었던 ‘큰 바위 얼굴’은, 세상을 구원하는 성자의 꿈을 꾸게 했다. 인생은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오월의 바람이 일렁이는 보리밭에서 변성기 친구들과 함께 했던 말박기 놀이는, 우정의 푸른 꿈과 인생의 끝없는 가능성을 심어 줬다. 나팔바지에 트위스트 추며 불량끼를 뽐내던 시절, 궁남지 호숫길에서 마주친 젊은 연인은 지와 사랑을 꿈꾸게 하였다. 푸른 눈의 백인 청년과 소탈한 청바지를 입은 우수 깃든 한국의 처자였다.
어느 소극단의 벽화였던가. 바람에 떨고 있는 마지막 잎새 한 컷은 상실 앞에서의 떨림과 소망의 기도를 영혼에 새겨 넣었다. 나비의 날개와도 같은 감성의 섬세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오만한 듯 고개가 살짝 젖혀진 킹스필드 교수는 학문에 대한 동경과 진리탐구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엄격함 뒤에 숨어있는 인정과 배려는 스승으로서의 인격을 흠모하게 했다. 로맨틱한 바보들이 꿈을 찾아 떠나는 서부활극‘무숙자’, 전설의 총잡이를 향한 테렌스 힐의 풋풋하면서도 거침없는 도전. 그때 젊음은 황야를 달려 온 사내들이 하얀 거품을 콧수염에 묻히며 단숨에 들이키던 생맥주 맛이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 길 사이로 손잡고 걸어가는 어느 가족이 있었다.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꿈. 독신을 고집했던 나는 한 집의 살가운 가장이 됐다. 홍성의 거리천사로 불리던 곱사등이 걸인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행복이 무언지 가르쳐 줬다. 무장해제된 그의 미소에 식당에서도, 행인들도, 한 끼 식사와 한 푼 용돈을 아끼지 않았다.
갈대의 서걱임이 속으로 우는 울음임을 알아가던 중년의 가을날 플랫폼.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던 여인의 허공을 짚은 눈은 나를 고독과 방랑의 끝없는 여정에 오르게 했다.
구제역으로 매몰되어 죽어가던 소의 눈빛에서 생멸하는 모든 존재의 고통과 슬픔을 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망울은 말 못하는 미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생명은 다 고귀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끔은 술 취해서 버르적거려보기도 하고 소유욕에 시달려보기도 했다. 생의 굴레에 허덕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 미워하고 경원시할 삶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서였다.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에게서 인종을 초월하고 문화를 극복하는 용기를 보았다. 그들의 눈에 머문 불안은, 우리의 사랑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들은‘세계는 하나다’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천사들이 아닐까.
바랑 하나 짊어지고 도보 여행을 떠난다. 언덕을 넘고 들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바람을 만나고 구름을 만난다. 자연과의 사귐 속에서 나는 원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의 동기가 되고 성장의 동력이 된다. 우리는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길을 가는 도반이 된다. 우리는 하나로 연결된 지구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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