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흉년 없는 이발 기술 배우라’는 부친 뜻 따라
80년대 붐비던 홍성역과 함께 이발소 호황 누려
장발단속과 함께 쇠퇴해진 이발소, 자부심으로 지켜내
“이용업에 종사한지도 올해로 55년째네요. 하루 하루 열심히 살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월, 그간 참 재밌는 일도 많았고 어려울 때도 많았지. 그래도 이용업을 시작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홍성역전에서 나고 자라며 홍성초를 졸업한 해방둥이 황교성(72) 대표가 가위를 손에 쥔 것이 올해로 55년째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서당에 3년 정도 다니던 황 대표에게 아버지는 ‘풍년도 없고 흉년도 없는 이발 기술을 배우라’는 말을 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역전이용원 자리에서 이발 기술을 배운 황 대표는 1965년 대전에서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당시엔 대전에 있던 옛 충남도청 뒤 운동장에서 이용 면허증 시험을 치렀는데, 응시자들이 서로서로 머리를 대주면 깎고, 채점자들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지금은 시험 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불가능한 얘기죠.” 자격증을 취득한 황 대표는 홍성읍내와 군청 앞, 법원 앞 이발소 등을 순회하며 근무했다. 그리고 1970년 9월, 지금의 역전이용원 문을 열게 됐다. 유달리 이발 기술이 뛰어난 황 대표에게 어느 덧 단골이 늘기 시작했다. 1970년대와 80년대는 특히 이용업이 호황을 이루던 시기였다. 홍성에만 130여 개의 이발소가 운영될 정도였다.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장발 단속’이 사라지면서 이용업은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황 대표에 따르면 당시 장사가 되지 않아 운수업, 건축업 등으로 전환한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면허증이 있으면 보조원을 세 사람까지 둘 수 있도록 규정이 돼 있었어요. 저도 많을 땐 저까지 다섯 명이 일을 하기도 했었죠. 몸은 고되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황 대표는 역전이용원이 한참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의 풍경을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서산이나 태안을 가려면 홍성을 거쳐야했기 때문에 홍성 역은 항상 붐볐다. 저녁 8~9시가 지나고 막차가 끊기면 여인숙을 비롯해 개인집에서도 민박을 할 정도였고, 그에 따라 식당이나 다방, 이발소까지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여름이 되면 천리포나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기차에서 내리면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질주를 시작하는데, 일을 보러 읍내에 나온 주민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이 뛰어가는 우스운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역전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다보니 영업이 참 잘 됐어요. 전화가 없던 시절에 홍성 역에 내린 사람들은 이발소에 들러 ‘읍내 누구누구 아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아니 이정표 노릇도 많이 했죠. 또 차표 살 돈이 없다며 빌려달라는 사람들에겐 못 받을 것 알면서도 내주기도 여러 차례 했죠.”

또 황 대표의 이발소는 역전에 위치한 이발소답게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발만 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는 황 대표의 말은 이발사들조차도 믿기 어려워한다고. 역전이용원을 찾는 손님들은 다른 곳에 가면 답답해서 못 기다리겠다고 혀를 내두른단다. “또 한 가지 자랑할 만한 것은, 저는 제 머리를 스스로 깎는다는 겁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제 앞에선 무색하죠. 앞머리는 물론이고 뒷머리도 손거울로 보면서 혼자 깎은지가 벌써 30여 년이 됐네요.”
식당이 음식 맛이 좋아야 하듯 이발소도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황 대표의 이발 솜씨에 55년째 단골손님도 존재한다. 황 대표는 55년 단골이자 친구이기도 한 손님에게 70세 부터는 무료로 이발을 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호적이 늦은 관계로 무료 이발은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라고. 황 대표는 지금까지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보람된 일들을 말했다. 첫째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고 이용업만으로 사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것, 둘째는 손님들이 이발을 하러 꾸준히 찾아와주는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곳도 생기지만, 그래도 중노동은 아니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가끔 선배나 후배, 친구들이 찾아와 ‘자네가 이발소 그만두면 나는 어디 가서 머리를 깎냐’는 말을 건네죠. 이렇게 저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