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 지금 몇 시예요?”
“응, 네 시. 근데 왜?”
“여기서 다섯 시에 친구 만나기로 했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었을까. 공원에서 여자 아이가 앙증맞게 말을 걸어왔다. 친구가 아직 오지 않아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온 아이가 몇 시냐고 다시 묻는다.
“네 시 이십 분.” “녜.”
이번에는 내가 앉아있는 정자 앞 공터를 한 바퀴 돌더니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혼자 말한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네.”
난 모르는 척 하늘을 보고 있다. 그런 내 곁으로 엉덩이를 밀면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빤히 쳐다보면서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아이스크림 사 줄 수 있어요?”
갑자기 내 머릿속은 평지에 바람이 일듯 온갖 상상으로 복잡해졌다. 저렇게 믿고 다가오는 아이에게 먹을 걸 사 주겠다고 유혹하며 어디론가 데려가는 어른. 아니,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하이드의 검은 그림자…. 범죄라는 괴물은 침낭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음습한 땅에 이르면 불온한 활기를 타고 올라온다. 인적 없는 평일의 공원, 백수가 되어 어슬렁거리는 나, 의심 없이 다가오는 아이.
영화 ‘소원’이 생각났다. 삶의 궤도를 이탈하여 배회하는 성 전과자에게 잔인하게 성폭행 당하여 사경을 헤매는 소녀. 오열하는 가족과 따뜻한 주변 사람들이 함께 엮어가는 눈물겨운 치유의 드라마. 아이가 상처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마치 내 영혼의 투사 같이 느껴져 보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났다. 영화는 소원이의 안녕을 기원이라도 하듯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 소녀는 훨씬 더 아팠을 것이다. 응징이 미약하다며 꽤나 말들도 많았었다.
범죄와 분노와 좌절과 수용. 빠르게 머릿속을 오가는 본능적 속성들, 아니 내 안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그리고 지킬 박사가 되어 물었다.
“집이 어딘데?”
“부영아파트요.”
아이는 2단지를 가리켰다. 집까지의 거리는 2백 미터정도.
“그럼,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집에 가서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해.”
아무 대답 없이 자전거로 공터를 한 바퀴 더 돌더니 다시 와서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집에 없어요.”
하! 이 요정 같은 것을 어찌하나.
아이스크림을 사 주자니 아이의 영악함이 얄밉기도 하고, 안 사 주자니 저 귀여운 것이 나한테서 관심을 끊고 떠나갈 것이 아쉽고. 뭐, 이것저것을 떠나서 험난한 세태에 의심 한 점 없이 다가오는 순수한 생명이 좋은 건지…. 어느새 뜨거운 액체가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 원을 받아들고 엉덩이를 달막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게로 달려가는 아이. 그 무구한 모습에는 성폭행의 아픔을 딛고 다시 소녀로 돌아간 소원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소녀의 등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잘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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