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세월 이기며 살아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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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세월 이기며 살아온 삶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6.16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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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2리 마을 김명순 어르신
김명순 어르신이 손에 삽을 쥔 채 자택 앞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있다.

“살면서 힘든 날들이 많았지. 즐거운 시간도 물론 있었지만 말야. 그래도 자식들이 다 건강하게 장성해 준 것이 가장 고마워.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히 살아가야지.”

월산2리 마을에 거주하는 김명순(87) 어르신의 말이다. 결성면 용호리가 고향인 김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도 꿋꿋하게 삶을 살았다. 당시 대부분의 또래처럼 김 씨도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열다섯이라는 나이가 돼서야 김 씨는 동네 야학을 통해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열두서너 살 즈음엔 작은 아버지 밑에서 가마니를 만들곤 했지. 짚을 꽈서 가마니도 만들고, 신도 만들고. 하여간 참 많이도 만들었어. 지금도 지푸라기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용호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김 씨는 참전유공자이기도 하다. 6·25 전쟁이 터질 무렵 김 씨는 전방에서 근무했고, 당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군대는 군기가 얼마나 셌는지, 몽둥이를 맞지 않는 날이 없었어. ‘집합 10분 전! 늦으면 몽둥이다’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래도 그 때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 특히 휴전 협정이 맺어지던 오전 10시하고도 정확히 20분 뒤, 투닥거리던 전쟁터가 잠잠하고 고요해지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김 씨는 서른이 되던 해, 고모부가 살고 있던 현재의 월산2리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됐다. 월산리로 온 이후에는 건축현장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웠고 마을 곳곳의 가정집과 축사를 짓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월산2리 마을에는 양계 농가가 성업을 이뤘는데, 김 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축사가 없다 할 정도로 마을에서는 ‘1인자’로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의 삶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 나쁜 맘을 먹은 적도 있었어. 아들들이 다섯,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인데 사는게 힘들어 목숨을 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하지만 어린 시절, 나처럼 고생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차마 그러지 못하겠더라고.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김 씨는 슬하에 2남 3녀를 두고 있다. 김 씨의 자녀들은 모두 건강하게 자라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 아들은 과천종합청사에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홍성교육지원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다. 김 씨는 장성한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남에게 잘 하진 못할망정, 절대 피해는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 잘못된 일을 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니까. 항상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제일이지.”

소일거리로 집 앞 밭과 작은 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 씨. 꿀 같은 휴식처럼 짧은 인터뷰를 마친 김 씨는 삽을 들고 집 건너편 논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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