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평민 기른 풀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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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평민 기른 풀무 정신”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7.21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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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이병학 원장이 추모하는 故 주옥로 선생
풀무학교 설립자인 고 주옥로 선생.

풀무농업기술학교의 설립자인 고 샛별 주옥로 선생<사진>의 추모 열기가 15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주옥로 선생의 15주기를 맞아 풀무학교 졸업생인 이병학 충남충효인성교육원장을 통해 ‘풀무정신’을 되돌아봤다.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 안 형편으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자 홀어머니 밑에서 집안 농사를 돕고 있었습니다. 입학 시기가 끝나고 학생들이 한참 학교를 다니던 4월 말, 싸리문 앞에서 안경 쓴 신사가 찾아와 저의 손을 붙들고 배움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주옥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저는 있을 수 없겠지요.”

예산교육장을 지낸 이병학 원장은 주옥로 선생을 회상하며 벅찬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 선생은 이 원장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을 찾아 학교로 이끌어주었다. 풀무학교는 샛별 주옥로 선생과 밝맑 이창갑 선생이 ‘교육, 기독교, 농촌’에 뜻을 두고 1958년 4월 23일 풀무고등공민학교를 개교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태어난 주옥로 선생은 해방이 된 1945년도 까지 27년을 식민지하에 살았다. 무지하고 고생하는 설움을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주옥로 선생은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종전까지 암흑기가 지나간 후 일반사람들이 중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주옥로 선생은 지방 유지들을 모아놓고 학교를 세우자고 설득하고 지역민들의 호응을 얻었으나 경제적 뒷받침이 안 돼 어려움을 겪었다. 어려웠던 시절, 정작 학교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를 설립하고자 한 주옥로 선생은 새로운 학교를 지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기에 고심이 많았다. 그는 학교자리를 찾다가 당시 폐업한 방앗간을 쌀 4가마를 빌려 샀다. 방앗간을 뜯어다가 선생이 기르던 보리가 한창 올라왔던 4월, 보리를 베고 방앗간 자재로 학교를 지어 초가를 올렸다. “타학교 학생들은 뱃지를 달고 멋지게 등교할 때 풀무학교 학생들은 지게에 삽과 호미를 얹고 책보에 책 몇 권 싸서 등교를 했었답니다. 4시간 정도 공부하고 점심 먹고 나서는 해가 뉘엿뉘엿 할 때까지 학교 일을 했지요.”

▲ 고 주옥로 선생의 제자인 충남충효인성교육원 이병학 원장이 주옥로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주옥로 선생은 학창시절부터 평생을 60여 년간 매일 일기를 써왔다. 그 일기장이 지금도 60권이 남아있다. 1958년 4월 26일의 일기에 ‘학교를 시작하면서 최소 비품과 교구, 교편물이 아쉬웠다. 부득이 돼지 한 마리를 처분해 1만8400환을 받아 급한 대로 홍성에서 구입했다. 한 몸에 두 지게인가 세 지게 인가!’로 쓴 문구를 보면 학교 비품으로 쓸 비용이 부족해 기르던 돼지를 팔아 마련한 당시 상황을 기록해놨다. 1959년 9월 1일자 일기에는 식량이 떨어져서 식량문제를 부탁했다고 적혀있다.

“주옥로 선생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셨어요.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들에겐 한없이 사랑을 주셨던 분이지요. 풀무학교를 개교하면서 건학이념이 ‘위대한 평민’이었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위대한 평민 이야기를 자주 하셨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내일에 희망을 거는 사람, 매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위대한 평민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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