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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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4>
  • 한지윤
  • 승인 2016.08.2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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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젊은 경찰관 역시 울적한 기분인 터에 젊은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울화통이 터졌는지 모른다.
카페골목에서 그녀들에게 우혹의 손을 뻗쳐 왔던 불량한 사내들도 이 음산한 주말을 처치하기 곤란해 협박적인 태도로 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불량배도 경찰관도 모두 저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사라져 간 외국인 마도로스처럼, 인생에 대해 그 어떤 변화가 올 것이 아닌가.
소영이는 그것이 슬펐다.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딱 질색 이었다. 그렇게 인생이 처량해진다면 스스로 폭발해 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불량배를 때려 준 것도 경찰과 키스를 한 것도 이 삭막한 겨울 날씨에, 게다가 숨막힐 듯한 청춘이, 마음구석 어딘가에 뜨겁게 살아 있는 청춘의 의미를 인생의 한  매듭으로 남기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손을 흔들어 젊은 경찰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걸어 나오면서 소영이는 이윽고 누나다운 자세를 되찾았다.
“규형아. 이 소녀를 정식으로 내게 소개해라! 그리고 이렇게 추운 날에는 집으로 함께 들어가 따끈한 차라도 마시고 놀다 가도록 해 줘야지. 알겠어?”
소영이는 신뢰감 있게 동생 규형이한테 명령했다.
욕망껏 사고 싶은 물건들을 산 뒤 막상 돈을 지불하려고 했을 때 고액권 액수의 지폐가 하늘이든 땅이든 어디에서든 불쑥 솟아 나와 준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는 공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 본 일일 것이다. 그런데 소영이에게 실상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날 그녀는 백화점의 귀금속 쇼윈도우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머뭇거리며 쇼윈도우의 유리에 이마와 콧등까지 부딪쳐가며 속을 태우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 목적의 브로치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이 달에는 용돈이 예산을 초과하고 있었고, 그 브로치는 5만원의 정가표가 붙어 있었다.
소영이는 거울 앞에 서서 그 브로치를 가슴에 가져다 대 보았다. 그것은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모조 다이어가 박힌 브로치였는데, 우아하게 큼직한 핑크와 보라와 블루우의 빛깔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디자인이라 어느 옷에든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 브로치 한 개로 스웨터나 원피스의 세련미를 더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소영이는 용돈이 초과된 상태였지만 아직 납입하지 않은 등록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 나서 아랫배에 힘을 주며
“이걸로 주세요!”
하고 여유 있게 말했다.
등록금이 담긴 봉투 속에서 돈을 빼냈을 때 소영이의 양심은 한 번 꿈틀거렸다. 돈은 마치 아버지의 얼굴처럼 생각되었다. 소영이는 비교적 엄격한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때였다. 하늘인지 땅인지 바로 옆에서 5만원을 쥔 손이 불쑥 나왔다. 결코 공상도 꿈속도 아니었다.
“이걸로 지불해 주시죠.”
놀라서 숨을 죽이며 두 눈이 동그래진 소영이에게 사십대 중반 가량의 다소 야윈 얼굴에 키가 훤칠한 신사가 상냥스러운 투로 말했다.
소영이는 놀라서 그 신사에게  말했다.
“이렇게 해야 할 만한 이유가 없잖아요?”
“순간적인 기분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아요? 인간에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때도 간혹 있지요……”  
점포 안에는 여자 손님들이 여러 명 있었고 점원 아가씨는 꽤 분주해 하고 있었는데, 아리따운 점원 아가씨가 5만원을 눈치 빠르게 알아보고 다가섰다.
그녀는 소영이와 그 사나이를 일행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아, 선물하실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소. 아가씨”
소영이가 어떻게 해 볼 여유도 없이 그 사나이의 돈은 지불되어졌고 이것으로 소영은 그 사나이의 호의를 승낙해 버린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했고, 한 편으로는 슬며시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포장된 브로치를 받아 들고서 기운 저녁 햇빛으로 눈이 부신 명동의 거리로 나왔을 때, 소영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역시 이 브로치 값의 돈을 돌려 드려야겠어요.”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대신 지금부터 맛있는 비프스텍을 먹으러 가지 않겠소?”
“어디로요?”
“박달동 온천으로……”
소영이는 풋풋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우스워?”
“아니, 박달동 온천에서 비프스텍의 쇠고기가 잡히나요?”
박달동 온천은 서울의 교외에 위치해 있고 광천이 솟는 곳으로서 대중 온천탕과 여관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그 곳으로 비프스텍을 먹으러 가자고 유혹을 하니 아찔했다.
“아,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명동에도 비프스텍 전문의 레스토랑이 있지만 어디 명동에서 쇠고기가 잡히나?”
소영이는 역습을 당한 듯 했다.
“물론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면……”
“요리점 여관으로 된 집도 있고. 그 곳의 요리사들이 비프스텍엔 도사급들 인걸.”
“그럼, 어떻든 좋아요. 그런데 가기 전에 주소와 성명, 연령과 직업을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제게 고급 브로치를 사 주신 이유도……”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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