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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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0>
  • 한지윤
  • 승인 2016.10.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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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별장은 30평 정도의 꽤나 돈을 들인 흔적이 보이는 호화스런 건물이었다. 건물에 비해 내부는 두 청년이 며칠 동안 머무는 동안 제멋대로 지냈는지, 어지럽혀져 있었다. 마치 정신 분열증 환자의 병실처럼 눈이 어지러울 만큼 여기 저기 되는 대로 가재 도구들과 일용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호의적으로 보아 준다면, 실내는 젊음이 지닌 왕성한 생명감이 가득 넘쳐 나 있었고, 악의적으로 말한다면 게으르고 쓰레기더미 같이 엉망진창의 더럽기가 이를데 없는 소굴같았다. 바나나 껍질· 파이프담배· 깡통· 부숴진 시계· 톱· 구겨진 영화잡지· 레코드 판· 촛대· 먹다 남겨 말라빠진 라이스카레의 접시· 파자마· 회중전등· 바둑판과 흑백의 돌· 자전거의 튜브, 펌프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방바닥도 소파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너저분했다. 할머니가 있다손 치더래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를 정도니 도망쳐 가고 싶어진 것도 당연했겠다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소영이는 어느쪽인가 하면, 그녀로서도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보다 젊음이 나뒹구는 어지러운 장소가 마음 편한 것이었다.
“할멈이 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한 끼니 요리를 해 드리도록 하죠.”
“이 분 요리솜씨가 훌륭해요?"
귀공자가 소영이에게 말했다. 소영이는 그가 바로 문패의 <최고인>이라고 생각했다. 귤껍질의 사나이는 초고인의 친구이긴 하지만 그의 심부름꾼 정도로 여겨졌으며 이름은 왕이라고 했다.
“누가?”
이 분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누군가 또 다른 사람이 있는가 보다 생각되어 소영이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 분 말입니다.”
“저를 말하는 거예요?”
이내 곧 ‘이 분’ 이라고 한 것은 ‘당신’ 이라는 상대를 지칭하는 말과 똑 같은 것을 알고 소영이는 곧 경탄했다.
“아주 이상한 말투군요.”
“고시원에선 그렇게 말하죠.”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인 청년은 세상에서 그것이 자기로서는 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요? 그렇지만 이 곳은 지금 고시원이 아니니까 일반 서민들이 부르는 ‘당신’ 이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죠.”
“요리를 만들어 드리긴 하겠지만 나는 여왕벌이고 두 남자께선 하인 이예요.”
음식을 만든다고 해도 부엌의 식량재료는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샌드위치와 사과 샐러드를 만드는 것과 통조림에 소시지를 버무려서 굽는 것 뿐 이었다.
“우리들……사과를 벗기는 건 아주 서툰데요.”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사과도 못 깎는다는 건 남자의 수치예요. 하인노릇 제대로 못하는군요. 그렇다면, 키스라도 해 주지 않는다면 저녁식사는 좀 곤란할 거예요.”
귀공자 타입의 최고인은 금년 봄에 고시원을 졸업하고 어느 재벌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고관들의 고시원 생활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하지.”
왕이가 좋아라며 일어섰다.
“너 따위에겐 그럴 권리가 없어!”
최고인도 일어섰다. 왕이는, 그가 나무라는 투로 말하자 못이긴 체하며 주저 앉았다. 그쪽 세계에서는 윗사람의 말에는 순종을 해야만 했다.
소영이가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최고인은 그녀에게 쫓아가 소영이의 머리에서 어깨까지 감싸안 듯 풍만하게 그녀를 끌어 안으면서 소영이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마치 오랜 연인 사이라도 되듯 상쾌한 로션 냄새가 사내의 젊고 건강한 체취에 섞여 소영이의 코를 자극했다.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는 향기였다. 이 사내가 가령 못돼 먹었다고 하더라도, 또는 비열하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과 즐거움을 소영이는 한 순간 느꼈다.
“쳇!”
왕이는 좋은 먹이를 보고도 다른 개에게 빼앗긴 초라한 개처럼 옆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최고인의 키스는 끝났다.
“어때?” 그가 물었다.
소영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 키스…… 잘 하지?”
“몰라!”
“좋았어? 나빴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이 분 거짓말 장이군……”
“왜? 어째서……”
“키스라고 하는 건, 좋든가 아니면 나쁘든가 결정이 나야지, 그 어느 쪽도 아니란 말은 있을 수 없지.”
“생각해 보겠어. 지금은 쬐끔 좋은 것도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은 걸.”
귀공자 최고인은 어떻든 승전 장군이라도 된 듯, 싱글벙글 웃었다.
그 날 오후 세 사람은 음식을 먹고 레코드를 틀며 춤추고 웃어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귤껍질은 아무래도 똑똑치 못해 보였지만 밉지 않은 귀여운 성격이라는 사실도 점차 알게 되었다.
귀공자와 귤껍질은 그날 저녁 짐을 챙겨 서둘러 서울로 돌아갔다. 더 있고 싶어도 그들의 휴가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집 관리하는 할멈은 잔뜩 어지러진 방을 보고 이빨빠진 헛바람 소리를 내며 투덜댔다.
“안녕!”
“서울에 돌아가면 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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