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와 건배사
상태바
송년회와 건배사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12.12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 본격적인 음주의 계절이 돌아왔다. 더우면 더워서 한잔, 추우면 추워서 한잔, 봄이면 개나리가 피어서 한잔, 가을이면 낙엽져서 또 한잔. 그동안 핑계거리가 부족해서 아쉬웠는데 송년회가 있는 12월은 그야말로 한 달 내내 공식적인 술자리가 펼쳐지기에 달력에 빼곡한 음주 일정이 즐겁기만 하다.

송년회(送年會)라는 이름이 쓰이기 전에는 일본어로 ‘보넨카이’ 즉, 망년회(忘年會)라고 불렀다. 해방이후의 5~60년대에는 한 해의 나쁜 일을 모두 잊기 위해 망년회를 벌였고, 그러려면 완전히 취할 때까지 마셔야 궂은 일이 사라진다고 서로 믿었다. 70년대에는 발바닥이 땀나게 열심히 일했으니 구두(하이힐)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한해를 정리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80년대에부터 잊을 망(忘)자 대신 보낼 송(送) 자를 써서 송년회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망년회가 일본식 표현이라는 언론의 보도 이후부터다. 90년대에는 소위 ‘노털카’(놓지 말고 털지 말고 마신 후에 카~하는 소리를 내지 않기)가 유행했는데 이를 어기면 한잔 더 마셔야 하는 벌주가 주어졌다. 한 턱 낸다는 뜻의 ‘쏜다’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지금까지도 흔히 쓰는 재밌는 표현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음주문화에 대한 변화의 바람이 등장해서 문화행사나 사회봉사를 곁들이는 바람직한 송년모임이 증가하였다.

송년회나 단체 술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건배사(乾杯辭)다. 그냥 술잔만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술 한 잔에 어떤 의미나 기원을 부여하여 구호를 함께 외치면서 술을 나누는 풍습인데, 술자리의 흥을 돋궈주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건배제의가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서 마음속으로 하나씩 준비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면 결국 ‘위하여’라고 밖에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건배사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단결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했을 때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하나’, ‘우리가 남이가’ 등이 원조격이다. 그 이후에는 사회풍자적인 요소들을 삼행시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IMF 시대에는 마취제(마시고 취하는게 제일이다), 재건축(재물 많고 건강하고 축복받자)이 있었고, 미국 대통령 이름을 본 딴 오바마(오직 바라보는 건 마누라)도 있었다. 오랜 고전으로 사랑받는 건배사로는 사이다(사랑합니다 이한몸 다바쳐), 진달래(진실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통통통(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게), 마당발(마주앉은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 등이 유행했고, 선창 후창으로 주고 받는 건배사로는 지화자(~좋다), 나이야(~가라), 반갑다(~친구야)등이 있었다. 요즘엔 119도 있다. 한가지 술로 일차까지만 하고 아홉시전 집에 가자는 뜻이다. 음주문화발전과 가정화목에 기여하는 아주 좋은 건배사임에 틀림없다. 최근시국과 맞물려 가장 사랑받는 건배사는 단연 <위‘하야’>다.

20초의 미학인 건배사. 잘 활용해서 즐겁고 신나는 송년을 만드는 센스 있는 술꾼이 되어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