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당 김정희 선생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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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 김정희 선생의 빛과 그늘
  • 이재인 칼럼위원
  • 승인 2018.07.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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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예산의 추사 김정희 선생 기념관을 찾는 발길이 지금도 줄을 잇는다. 고맙고 느껴운 일이다. 그런데 필자에게 ‘현재 이 고택 전부가 추사 선생의 고택이 맞느냐?’는 질문을 한다. 내가 예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산군 향토사 사료 조사요원으로 ‘예산 향토 사료집’을 편찬했고, 거기에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했기에 질문은 당연시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불편한 진실에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대고 엄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는 그릇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추사의 생가라고 일컫는 말에 나는 그냥 웃고 만다. 그게 편한 나의 처신이다. 폐허가 된 추사 생가의 일부가 1970년대 복원되면서 서울의 반가 고택의 일부를 옮겨다 세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실이 숨어 있기에 나로서는 구구한 확인 질문에 얼버무리고 만다. 이런 연유를 알고 있는 질문자한테 예산 사람으로서 명쾌하게 진위를 대답해 줄 수 없어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는 대체로 이름난 명찰이나 고택을 방문하는 경우 그 건물이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돼 있어 관람객이 실망하는 사례를 눈여겨 본 일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이나마 명맥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로 위로하고 만다.

훌륭한 건물들이 이 땅에서 사라진 연유도 엄연한 펙트다. 이는 국력이 튼튼하지 못해 몽고의 침입을 비롯해 과거의 크고 작은 사건이 유서 깊은 누정을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나머지들이 거의 소실되어 이 지경이 된 것이 오늘의 일그러진 상혼이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기록인 고문서들도 쓰레기더미로 태워져 버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에서의 일기와 간찰을 읽으면서 선생의 전전긍긍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거기에는 선생의 적나라한 음식에 대한 간절한 욕구가 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에 대해서 빛과 그늘을 묻고, 가슴에 담아 두는 것이 오늘을 사는 도리다. 그래도 나는 어쩐지 뒷맛이 씁쓸하다.

이재인<충남문학관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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