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보편적 정서 바탕으로 사상 체계 세운 공자(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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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보편적 정서 바탕으로 사상 체계 세운 공자(孔子)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18.10.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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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아카데미<2>
사진 출처= https://image.baidu.com

‘학이편’ 제2장은 다음 장인 제3장(巧言令色, 鮮矣仁,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외모를 예쁘게 꾸미는 자 중에는 사람다운 이가 드물다)과 함께 제1장에서 말한 군자(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처신에 대해 말한 장이다.

유자(有子)는 공자의 제자인 유약(有若)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에 대해 기록한 ‘사기’의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유약은 공자보다 43세 적었다고 한다. ‘공자가어’에서는 33세 적었다고 했는데 공자가 몰(沒)한 뒤 공문(孔門)의 학단을 이끈 전력이 있는 데에서 보면 ‘공자가어의 말이 타당하지 않을까 억측하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가 없다. 맹자에 유약에 대한 기사가 전한다. 외양(外樣)이 공자와 비슷해서 공자가 몰한 뒤 공문 제자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원을 유지해 나가려 했다. 그런데 학식과 덕망이 공자에 비견될 만큼 뛰어나지 않아 제자들의 비판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이 장에서는 ‘유약’의 이름을 유자(有子)라고 표기했는데, ‘논어’라는 책이 공자 몰후 3전 4전 5전 제자 시대에 직제자(直弟子) 혹은 공문 밖에서 전해지던 말들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라는 데 주의해서 보면 이 장은 유약의 제자들의 손에 의해 제작돼 전해지다 논어를 편집하던 무렵에 논에 속에 삽입되었을 것이다. 유자(有子)란 ‘Mr.유’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말로 옮기면 ‘유 선생’ 쯤이 된다.

그 유(有)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그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장(兄長)에게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범(犯)하는 것을 즐기는 자는 드므니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아직까지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서면 도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장에게 공손한 것이야말로 사람됨의 근본 도리라고 했다.

여기서 윗사람은 관직에 나아갔을 때 만나게 될 상급자를 말하지만 비단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나 역할 면에서 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 전체를 의미한다고 봐도 좋다. 한편 범(犯)은 ‘윗사람이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데도 그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등을 말한다. 윗사람의 뜻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능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 등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자신과 뜻이 다르다고 해 상대를 비난하는 태도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작난(作亂)은 말 그대로 난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거나 자신과 다른 뜻을 지니고 있을 때, 곧잘 상대를 비난하는 자들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자주 중상(中傷)하고 모략(謀略)한다. 그래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 파당을 지어 떼로 공격하고, 그렇게 하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난을 일으킨다. 나라를 대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제1장에서 공자는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도리(인간다움)를 다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그와 반대로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그에 앙심을 품고 상대에게 위해를 가해서라도 뜻을 관철하려 한다.

아마 유약은 이런 점을 경계했을 것이다. 공문에서 수학한 제자들은 뒤에 거의 대부분 정계의 요직으로 출사했다. 혹은 제후의 승상으로 혹은 대부로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는 요직에 취직했다. 그런 자리에 있다 보면 정치적 군사적으로 뜻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때 자신과 뜻이 다르다 해 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파당을 지어 난을 일으킨다면 나라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유약은 제자들이 출사해 이런 행동을 할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서면 자연스럽게 도리가 뒤따라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이 ‘사람다움’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리(事理)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정에 임해서는 임금에게 충성한다. 형제에게는 우애를 다하고 향당(鄕黨)에서 친구들과 교제할 때에는 성실(誠實)을 다한다. 아내에게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남편이 되고 자녀에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슈퍼맨이 된다. 이 모든 덕목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인(仁) 곧 사람다움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사람다움을 이루면 다른 덕목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것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유약은 말한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장에게 공손한 것이 사람다움을 이루는 근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장에게 공경을 다하는 것이 모든 도덕의 뿌리가 된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로서 응당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않고 형장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아래 사람의 도리만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힐난할 것이다. 이런 도덕을 강요했기 때문에 그 동안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이 행해지고 독재 정치가 행해지고 그것이 습성화돼 오늘날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 가로막히는 것이 아니나며 비판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구시대적인 망발(妄發)을 늘어놓느냐며 동원할 수 있는 표현을 죄다 사용해 가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말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여기서는 부모에 대한 것만 살피고 형장에 대한 것은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겠다.) 먼저 부모에 대한 도리부터 알아보자.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뭘까? (여기서 말하는 부모는 정상적인 부모를 말한다. 어떤 것이 어떤 것이 되려면 어떤 것으로서의 구조와 기능을 갖춰야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라면 부모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도리를 갖추고 그것을 행해야 한다. 부모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자들을 우리는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 권세를 누리라는 것일까? 아니면 재물을 많이 모아 떵떵거리며 살라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불후의 업적을 이뤄 청사(靑史)에 그 이름을 남기라는 것일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부모라면 그보다 먼저 자식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 덧붙이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출세하지 못해도 재물을 많이 모으지 못해도 이름을 남기지 못해도 건강하게 살아 천수(天壽)를 누리기만 한다면, 사람답게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벼슬이 높고 재물이 많아도 몸이 아프거나 혹은 사람 구실을 못해 주위로부터 ‘사람답지 못한 자’라는 말을 들으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없을 것이다.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와 형제, 아내와 자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밖에 나가서는 이웃과 직장에 해를 끼쳐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 혹은 어떤 존재감도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식의 부귀와 공명은 부모에게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충분조건일 뿐이다.

효(孝)란 바로 이러한 부모의 뜻을 받들어 부모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不違) 사는 데 필요한 덕목이다. 다시 말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요한 덕목인 것이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도 지키지 않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려는 마음도 없으면서 부모에게 억만금을 가져다준다 한들, 그것을 즐겨 받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또 남편(부모)으로서 해야 할 기본 도리도 지키지 않으면서 아내(자녀)에게 온갖 선물공세를 편다 한들, 그것을 즐겨 받을 아내(자식)가 어디 있겠는가? 친구나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답지 않은 친구(이웃)가 베푸는 향연과 특혜는 받으려 하지도 않을뿐더러 가사 받는다 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에게 올리는 제(祭)도 마찬가지다. 돌아가신 날에 맞춰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때에 맞춰 제사를 올리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를 받드는 것일까? 그것은 살아계실 때 부모의 뜻(사람답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들지도 않으면서 때에 맞춰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맹자의 말을 빌면 그것은 부모를 가축으로 대하듯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존경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때에 맞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것을 부모에 대한 봉양이라 한다면 개·돼지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 부모의 유지를 받들어 모시는 제사라면 살아계실 때 바라시던 것(사람다움)을 행하면서 지내는 제사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돌아가신 분을 삼가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길이 따른다는 신종추원(愼終追遠)의 본의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온갖 제물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한들 어느 부모가 와서 그 제물을 즐겨 흠향(歆饗)하겠는가? 정신을 놓지 않은 귀신이라면 단 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것은 예물(禮物)이 아니라 뇌물(賂物)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줘도 문제가 되거늘 귀신에게 뇌물을 줘서 그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그러는가? 사람답지 않은 자손이 올리는 제물은 신(조상)이 흠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앙을 내릴 것이다. 차라리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에는 바로 이런 뜻이 담겨 있다. 효라는 것은 부모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식이 사람답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孝悌), 이것이 유약의 말로 표현된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살다보면 언젠가 사람다움(仁)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공자가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자는 사람의 기본적 보편적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 체계를 세웠다. 공자는 15세 무렵에 사람이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사는 것임을 알았다. 공자의 일생은 그것을 이뤄 가는 노정이었다. 논어는 그런 인간 공자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유약은 공자의 가르침을 이은 제자다. 그래서 이와 같은 말로 스승의 생각을 전한 것이다.

<이 강좌는 홍성문화원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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