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고향 환류를 위한 싱크탱크 건립
상태바
인재의 고향 환류를 위한 싱크탱크 건립
  • 손규성(한겨레신문 편집부국장)
  • 승인 2009.11.03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규성의 홍주골 톺아보기]
▲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무민공 최영 장군, 매죽헌 성삼문 선생, 대학자인 남당 한원진 선생, 지산 김복한 선생, 전통춤의 대가 한성준 선생, 고암 이응노 화백, 백야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선사.

홍성, 홍주에 나오는 '넓은 홍(洪)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역적으로 넓은 면적과 크기를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행정구역상 현재의 면적을 보면 그렇지 않지만, 서해안의 행정중심지로 기능 했던 조선시대를 보면 넓은 홍자가 갖는 의미는 넓고 크게 아우른다는 뜻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평택에서 서천까지 22개 군․현을 관장하는 목사 또는 관찰사의 치소였던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 최근에 들어서서는 충남도청이 이전하기로 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을 보면 역시 홍성, 홍주의 넓은 홍자가 의미하는 뜻이 제대로 펼쳐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조선시대보다도 더 넓은 면적을 관할하는 중심지 역할이 기다리고 있다. 홍성 홍주의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이런 점을 보면 넓은 홍자를 넣어 지명을 만든 지역 선대들의 혜안에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인재를 가득 담고 있을 곳이 홍성이고 홍주일 것이다

하지만, 넓은 홍자의 의미는 관할과 관장의 기능적 측면에만 머물지는 않는 것 같다.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할 때 역사적으로나 시대적으로 긴요하게 쓰일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넓은 홍자가 들어갔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그런 인물들,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대학자인 남당 한원진, 김복한 선생,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등은 너무나 유명하다. 한 지역에서 시대와 역사를 뒤바꾸게 했던 인물들이 이렇게 줄줄이 나온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일 것이다. 이응노 화백, 학춤의 대가 한성준 선생 등의 문화예술계도 빠지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 이럴진대, 그렇지 않은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역사가 카(E. H. Carr)는 "역사적 전환을 이룬 대사건은 이에 이를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뒷받침돼 일어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원용하면 큰 인물이 배출되려면 그런 인물의 학문적 업적과 가치관 정립을 뒷받침해주는 덜 알려진 스승들이 있을 것이고, 후학들이 수없이 나오게 돼있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 이렇게 많다면 그런 대인물 주변에는 그에 버금 하는 인물과 후학들도 많을 것이다. 넓은 홍자를 쓴 이유는 많은 인재를 가득 담고 있을 곳이 홍성이고 홍주일 것이라는 얘기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도 홍성에서 배출한 많은 인재가 더 넓은 세상에서 활개하고 있다. 이를 지역으로 피드백(환류)시켜야 한다. 현대의 사회적․산업적 구조상 외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식한다면 그들이 사회적으로 공헌을 끝낼 때쯤, 고향으로, 지역으로 다시 불러오자는 것이다. 때마침 '홍성, 잘사는 마을보다 행복한 동네를 만들자'라는 제하의 <홍주신문> 한관우 편집국장의 글은 이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일본 '유후인 마을'의 내생적 발전전략을 예를 든 이 글은 지역배출 인재의 고향 환류 방법으로 마을 만들기가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인재의 머리만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삶까지 빌려와야 한다"고 설파한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구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의 삶까지 빌려와야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가치를 공유하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치의 공유는 무리를 이루게 된다. 좋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자 라는 것은, '싱크탱크'의 형성이다. 싱크탱크라면 공공이든 사설이든 거대한 정책연구소를 떠올리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싱크탱크의 형성으로 그곳에서 나오는 가치는 '미래를 구상하는 발판'이다. 홍성의 미래를, 홍주의 향후 1000년을 구상하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그 가치를 목표로 실행에 옮기면 홍성의 미래는 밝다. 

지식과 인재의 지역 환류를 위한 싱크탱크를 만들자

다음 예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1980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보수주의 정치와 시장만능주의 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전 세계로 번져, 한국이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를 맞고 현재의 경제체제까지 오게 된 출발점이 됐다. 

그러나 보수주의와 시장만능주의는 그가 만든 게 아니다. 1960년대부터 이미 미국 사회를 보수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은 1973년에 출범한 보수적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뒤 헤리티지재단은 보수적 지식의 거대한 진지 구실을 하며 미국 사회에 그 가치를 확산시켰다. 결국, 레이건 집권과 정책 방향 설정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버락 오바마도 달랐다.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는 레이건 시절부터 짜인 보수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기대를 얻고 있다. 특히 의료보험 등 공공부문을 강화하고, '사회혁신'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방법의 사회문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얻고 있다. 이런 새로운 방향 가운데 상당 부분은 2003년 '진보진영의 헤리티지재단'을 표방하며 설립된 진보적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5년 동안 일관되게 대안을 만들고 확산시킨 결과가 오바마 집권과 정책 방향 설정이다."(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를 좁게 보면 홍성에서도 싱크탱크를 만들 수 있다. 충분히 대중적이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구체적 정책대안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의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인재의 하방(지방 귀환), 지식인의 고향 환류 정책을 위한 우리끼리의 제도적 또는 지역 합의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소장의 글에 따르면 미국의 양쪽 싱크탱크 모두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헤리티지재단은 맥주재벌 조지프 쿠어스 등 거액기부자도 참여했지만, 재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한 달에 25~50달러를 내는 소액기부자들로부터 나왔다. 미국진보센터의 경우 금융 거부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연구소(Open Society Institute)와 샌들러 부부 등 그 가치에 동의하는 민간 기부자가 자금을 댔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기틀을 닦았다. 지식과 인재의 지역 환류를 위한 우리의 싱크탱크를 만들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