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願)과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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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願)과 욕심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0.09.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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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욕심으로 살고, 보살은 원으로 산다. 그래서 중생은 탐ㆍ진ㆍ치 삼독심(三毒心)을 근본으로 삼고 보살은 자비심(慈悲心)을 근본으로 삼는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욕심이 앞서면 중생이요, 자비를 실천하면 보살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보살과 중생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중국 위나라 황제와 달마대사의 고사(故事)는 욕심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달마가 중국으로 올 때는 이미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고 불심이 깊었던 황제는 1년에 한 두 차례씩 절에 들어가 스스로 부목(負木)이 되어 스님들을 공양했다. 이렇게 불심이 깊었던 황제였기에 인도에서 선(禪)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몸소 마중을 나갔다.

황제 앞에 나타난 달마는 황제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깨달음을 얻은 성자의 모습이 아니라 기괴스러울 정도로 우스꽝스러웠으며, 거기에 신발까지 머리에 이고 나타났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황제는 당황함을 넘어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여 불쾌한 생각마저 들었다.

달마는 불합리하게 보이는 행동으로 황제에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짐은 온 나라에 3만개의 절을 지었고 수많은 스님들을 공양했소, 그 공덕이 얼마나 큽니까?"라고 물었다. 이 같은 황제의 물음을 미리알고 있었다는 듯이 달마는 아주 짧고 단호한 목소리로 '무(無)'고 일갈했다.

황제는 '공덕이 전혀 없다'는 것에서 놀랐고, '신발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에 참으로 황망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마는 무엇 때문에 공덕이 없다고 했는가? 달마는 황제의 마음속에 있는 행위[공덕]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기대심리를 욕심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눈물이 새어나오는 유루복(有漏福)으로서 비록 선(善)한 행위라 할지라도 거기에 대한 기대심리를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와 원망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의 마음을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잡초를 돌로 눌러 놓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으나 때가 되면 옆으로 삐져나와 무성히 자라듯이 마음의 공성(空性)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인격과 생각으로서 참거나 선을 행하면 이와 같이 된다.

이것은 '사랑한 만큼 미움도 크다'는 말처럼 반드시 공덕에 대한기대치에 부합하는 어떤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기대가 무너지면 곧바로 공덕의 크기만큼 미움과 원망이라는 악(惡)이 나타나게 된다.

보살의 자비나 중생의 욕심은 모두 마음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마음을 거울에 비유한다. 거울은 상대를 비추어 줄 뿐 자신이 비치는 그것에 결코 물드는 법이 없다. 이것이 마음의 공성이며 보살의 자비심이다. 그런데 만약 거울이 집착이 생겨서 자신이 비추고 있는 것에 물이 들거나 좋고 싫음을 분별하여 마음에 드는 것만 비춘다면 더 이상 거울이 아니다. 이것을 중생심 즉, 탐․진․치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누구든지 거울[마음]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것은 거울에 묻어 있는 때를 닦아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비추어지는 그것에 현혹되어 분별하고 소유하려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貪]을 버리면,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성냄[瞋]에서 멀어지고, 비로소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어 어리석음[癡]에서 벗어나 거울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적어도 공직자가 되려면 탐․진․치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들을 분별없이 비추는 마음[거울]을 가져야하고 비록 선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악의 종자(種子)가 된다는 사실쯤은 알아야 한다고 본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유명환 외교장관 딸 특혜사건'과 '청문회'등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은 권력과 출세에 물들어 국민을 바로 비추어 볼 수 없으며, 자신의 잘못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덮어보려는 파렴치한 모습은 참담하기 까지 한다. 이것은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 관료들의 인간 됨됨이와 통치절학이라는 점에서 더욱 걱정스럽다.

끝으로 모든 공직자들이 보살의 마음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기 바라며, 보살이라는 말의 뜻을 살펴본다. 보살은 '깨달은 중생' 즉, 각유정(覺有情)으로 의역되며 '이미 성불을 했으나 중생들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중생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정도로 해설된다. 이처럼 공직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배움과 명예 경제 등등의 모든 것에 만족하나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기대 없는 봉사를 하겠다는 원(願)을 세워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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