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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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 대하여
  • 구재기(시인)
  • 승인 2010.12.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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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

웃음에는 조심이라는 게 없다
가슴 저민 골짜기를 지나
풋보리 자라나는 길을 건너
꺼져가는 불씨로부터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이란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지순의 보루

층층이 올라서는 계단의 틈서리
어쩌다가 꽃씨가 이곳에 날아들었을까
힘주어 대딛는 당찬 발걸음들을 피하여
건강하게 피어난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강렬한 햇살 속에서도 백치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잠자리에 접어들면
어린 아기는 으레 작은 웃음을 물고 있다
두 눈을 감는다 놓아버린 팔 다리 몸통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이목구비의 조화로움으로 이룰 수 있는 것
그렇게 신의 얼굴 하나로
하늘 아래 날아갈 수 있는 깃 없는 웃음

고사상 한가운데 넉넉한 자리를 차지한 채
팔 다리 몸통을 떼어 놓고도
마음껏 웃음을 낳고 있는 돼지머리 앞에서
목적을 위하여 줄지어 선 사람들이
차례차례 넋 나간 웃음을 흘려대고 있다
코가 땅에 닿도록 힘껏 큰절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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