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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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0.12.17 14: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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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학교가 있는 동네에 살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형들을 따라 아침저녁으로 학교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요즘은 내용이 다소 바뀌긴 했지만 거의 같은 맥락이라고 봄)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에 맞추어 엄숙한 국민의례를 거행했으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웠다.

이 같은 교육은 힘의 우위를 점령하는 것이 사회정의이므로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애국주의적 교육관'의 산물이다. 개화기(?)를 대표하는『서유견문록』의 저자인 유길준은『경쟁론』에서 "국가 간의 경쟁에 휘말린 세계에서 인민의 단결심만이 최적의 무기라고 말하고,「소학교육에 대한 의견」에서는 "소학교를 세우는 목적은 국민들로 하여금 죽고 사는 것이 오직 국가를 위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일"이라고 구체적으로 정의 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관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반복 교육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면 할수록 맹목(盲目)에 가깝게 이 한 몸 다 바쳐서 나라에 충성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고, 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고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 할 때 까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유길준의 견해나 '국기에 대한 맹세'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적인 당연한 도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연설에 대비해 보면 분명 국민의 도리만 강요 할 뿐 국가(정치)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 주겠다는 정치의 본래 목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링컨이 연설문에서처럼 정치를 실천했는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 하지만 남북전쟁의 자금조달과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그가 행하고자 금융정책은 분명히 서민과 농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링컨에 앞서 서부의 미천한 환경에서 태어나 미국의 7대 대통령이 된 앤드류 잭슨은 '중앙은행(금융을 장악하고 경제와 정치를 움직였던 특권층이 운영했던 은행)'을 폐쇄하고 친 서민정책으로 민중들의 이익을 보장했다. 중앙은행을 빼앗기고 철지부심하던 유럽(중앙은행)의 금융가들은 링컨이 남북전쟁을 치르게 되면 반드시 전쟁비용을 빌리러 올 것으로 생각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링컨은 다소의 인플레션을 감수하면서(뒷면이 초록색인)그린백(greenback)달러를 찍어 전쟁비용을 충당했고, 전쟁이 끝나고 보수주의자들과 은행가들이 강력히 회수를 요구했으나, 서민과 농민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그린백 달러' 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갔다. 이러한 링컨의 금융개혁과 친 서민정책은 재선 41일 만에 암살이라는 비극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이후 윌슨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라는 국제금융사조직이 만든 법안에 서명함으로서 전 세계 금융은 '경제권력'을 정의로 신봉하는 몇몇의 금융재벌가들의 손아귀에 완전히 장악 당했다.

미국의 금융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미국과, 미국을 모델로 하는 한국경제와 정치는 곧바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이순신 장군이 사욕(私慾)을 채우기 위한 권력투쟁과 가렴주구를 일삼는 특권의 권력층을 위해서 백의종군, 목숨을 바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권력층 즉, '권력을 정의'로 생각하는 무리들을 위한 일이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전쟁와중에서도 매일같이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들러 15세 소년에게『명심보감』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전쟁터로 출발 할 때 10살이었던 소년이 바른 삶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잃었고, 전쟁을 겪고 있는 우리백성과 일본군사 모두 지배자들의 탐욕에 희생당하고 있는 불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이순신의 순수한 인간애의 발로이며, 진정한 힘과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이라고 본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교육과 정치인들은 이순신처럼 국가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백의종군하라(부자감세 90조)는 강요에 가까운 교육을 시킬 뿐 정치(국가)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무상급식 예산 0원)를 가르치지 않음으로서 국민들을 기만 했다. 그래서 애국주의적 교육을 강요받은 국민들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권력과 출세 자본이 정의라는 왜곡된 생각에 동의하여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려함으로서 스스로 빈곤의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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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돋보기 2010-12-24 05:25:32
김정일 김정은을 비판 하시기가 겁나면 ...
그러시면...
김부자를 칭송하고 찬양 하시는 글이라도 올려주세요
네?...........................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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