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의 반도 못 팔지만 제수용품ㆍ좌판 등 시골장 정취 물씬"
"물가 올랐지만 설 명절에 올 자식들 생각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
"물가 올랐지만 설 명절에 올 자식들 생각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

명절을 일주일 여 앞둔 지난 26일 대목장이 열린 홍성전통시장.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상인들이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좌판을 벌여 놓고 손님 맞을 채비를 끝냈지만 전통시장은 설을 맞아 찾아온 손님보다도 오히려 상인들이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대목을 앞둔 장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평소 장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시장에는 영하 10도를 넘는 추위와 폭설, 구제역, 그리고 상인들의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30년째 텃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내다 팔고 있는 고 모(70) 할머니와 이웃사촌인 황 모(86) 할머니는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데 구제역 때문에 면지역 사람들이 나오지 못해 올 설 대목장도 망쳤다"며 "날이 너무 추워 채소가 얼어 좌판을 접어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황 할머니와 대화 중 손님 한분이 시금치 한 단을 들었다 놨다 망설인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채소 값으로 상인들과 손님 사이에 흥정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온다.
"지난 해 태풍피해와 올 겨울 눈도 많이 오고 추워서 채소 값이 워낙 많이 올랐구먼요"
"설 명절에 찾아올 자식과 손자들 밥은 해먹여야겠는데 물가가 올라 뭐 하나 살 엄두도 못내겠네! 에휴!"
노환으로 등이 휘어 지팡이에 의지해 수레를 끌고 장 보러 나온 고령의 할머니는 "그래도 명절인데 아들 손주들 줄려고 옷도 사고 생선도 사려고 나왔지"라며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장 입구부터 뻥 소리와 함께 뻥튀기 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옥수수ㆍ콩ㆍ쌀 등 뿌우연 김과 함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시장 가득 퍼지며 시골장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아침 일찍 콩과 쌀을 들고 장을 찾았다는 한 할머니는 "설 명절에 찾아올 손자ㆍ손녀들의 간식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나왔다"며 "뻥튀기가 겨울철 간식으로는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40년째 호떡을 만들어 팔고 있는 김응석(79) 할아버지의 호떡 집에는 불이 났다.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호떡을 찾아 추위를 달래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의 호떡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후덕한 인심과 40년간 한길을 걸어온 명인(?)의 손 맛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전통시장을 지켜 온 어물전 주모(65) 씨의 동태포 뜨는 손놀림이 기계보다도 더 견고하고 빠르다. 대목장이 되면 동태 세짝 이상을 포 뜬다는 주 씨는 "이제는 눈 감고도 뜨겄어. 손님만 많이 오면 열 짝도 거뜬히 뜰 수 있는디…"라며 아쉬운 웃음을 짓는다.
주 씨의 단골이라는 한 모(53) 씨는 "날이 추워 밖에 나오기가 겁나지만 물건 값이 마트보다 싸고 사람 사는 맛이 느껴져 명절대목은 물론 장이 설 때마다 시장을 찾고 있다"고 시장 애호가임을 밝혔다.

다음 날인 27일, 상설시장 내 원앙떡집(대표 최성근ㆍ58, 김태란ㆍ54)을 찾았다. 모락 모락 김과 함께 하얀 속내를 드러내며 뽑아져 나오는 가래떡이 먹음직 스럽다. 1985년 떡집을 시작해 두 남매를 키우며 부지런히 살아온 최성근ㆍ김태란 씨 부부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나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설 명절이 되면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 쌀 300kg이 사용된다는 최 대표는 올 한해 하얗고 매끄러운 가래떡 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란다고 말한다.

기자가 돌아본 설 대목장 풍경은 상인들과 장 보러 나온 시골 할머니와 아낙네들의 흥정소리와 한숨소리가 가득했지만 설을 앞둔 장날이라 그런지 다른 날보다 활기는 있어 보였다.

시장 한복판에서는 수산물 가격을 알리는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고 가는 아저씨의 비켜달라는 핀잔 소리, 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시장 곳곳의 물건들을 찾아다니는 시골 할머니와 아낙네들의 모습, 혹한으로 인해 연탄 불을 피운채 털 목도리를 얼굴까지 끌어올려 돌돌 말고 앉아 이제나 저제나 물건이 팔리기만 기다리는 좌판 할머니의 "싸게 줄 테니 사라"고 손짓하는 모습 등이 한데 어우러지며 올 설명절 또한 어김없이 사람 사는 냄새와 함께 우리들의 삶속에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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