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혁명은' 이집트의 시민봉기에 이르면서 이른바 M(모바일)혁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무바라크 대통령 축출 시위를 벌이자는 메시지가 뜨면서 젊은 층이 호응을 하고 지식층이 가세하면서 폭발력을 더해갔다. 봉기가 시작된 1월 25일은 '경찰의 날'이었다. 시위대는 이날을 '분노의 날'로 선포하고 무바라크 '가피야(호스미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집권은 충분하므로 더 이상은 안 된다)'를 외쳤다.
아랍권을 대표하는 이집트의 변화로 '아랍의 봄(민주화)'은 시작 되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은 이집트를 삼킨 뒤 페르시아만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거대한 쓰나미의 물결이 밀어 닥치고 있다. 걸프국 산우국인 바레인이 반정부시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고 이란 또한 심상치 않다. 이란 야권은 '2009년 그린혁명'의 부활을 선언했다. 예멘에서도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지속 되고 있다. 지금은 변화의 시작이므로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당분간 군부의 권력 장악에 의한 역혁명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반작용도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모바일이라는 현대문명이 만든 최첨단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더더욱 아랍권의 대부분의 국가는 신정(神政)내지는 왕정(王政)국가들로서 민주적 정치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은 가난하다. 이집트는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도 못 미친다. 이란의 경우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3000달러에 이르나 대부분의 국민은 가난하다. 이슬람문화라는 종교적 특성이 비 민주적 통치를 가능케 하였는지는 모르나 결코 민중의 원초적 본능인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비켜갈 수는 없다.
이집트 시민혁명은 예상을 깼다. 대부분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혁명의 성공가능성에 부정적 이었다. 22년 전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가 몰락할 때도 그랬다. 중앙일보 박보균 논설위원의 멘트는 시원하다. "역사적 사건은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신(神)의 영역이다. 역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된다. 동서독 통일도 그랬다. 북한의 변화는 전격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장엄하면서도 기습적으로 전개된다. 인간은 대비할 뿐이다."
이번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외면상으로는 1980년대 베르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되는 동유럽의 공산권 몰락의 도미노와 유사하다. 혹자는 프랑스대혁명과도 같은 사상혁명이라고 까지 진단한다. 분명한 것은 시민혁명의 파장이 지속되고 확산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집트와 유사한 여건에 놓여있는 국가가 아직도 많이 있다.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외견상으로는 난공불락이다. 북한체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통제국가이다. 반정부적 저항조직이 생성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리고 극빈상태다. 군부와 공산당의 장악력이 강력하다.
그러나 사고의 자유와 인권의 양심을 강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미 북한도 M(모바일)혁명의 쓰나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 휴대폰이 30만1199대가 보급되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집트 업체로부터 모바일이 도입되었다. 시민혁명의 모바일 전파 경로를 예견하고 있는듯하다. M혁명이 기반은 휴대폰이다. 이집트의 휴대폰 보급률은 500만대다. 북한의 컴퓨터 보급률 또한 만만치 않다. 그리고 장터가 열리고 있다. 시장경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었다. 사람의 소통은 전파속도가 크다.
인구 2400만명 중 2000만명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북한정권은 생존을 위한 장터를 강제로 폐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인민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방증이다. 더욱이 탈북 러시가 몰고 온 잠재적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 또한 여차하면 기름먹인 종이 형국이다.
무엇보다도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의 급격한 진행은 거대한 물결을 암시하고도 남는다. 무바라크의 몰락은 그의 아들 카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한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가 밑바닥에서 작용하였다. 나이 어리고 경험 부족한 3남인 김정은에게의 권력승계는 내부로 부터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는 우리의 대비다. 갑자기 닥칠 변화에 대한 준비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