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의 미래방향 (다문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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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의 미래방향 (다문화5)
  • 범상 스님
  • 승인 2011.03.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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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다문화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은 이미 문제가 발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적 대처와 장기적 계획을 함께 수립하고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이중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다문화를 경험한 유럽은 그동안 진행해 오던 다문화정책의 실패를 선언하고, 정책수립의 기반이 되었던 󰡒한 사회 속의 각기 다른 그룹들이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따를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수용적 입장의 다문화개념을 철회하고 적절한 통제와 동화를 유도한다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이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앞서 다문화 개념에서 보듯이 마치 "우리 땅에 들어온 황소개구리를 잘 살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현실성이 없는 이상주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같은 이상주의는 시혜적(施惠的)관용 즉, 온정주의에 입각하여 일자리를 찾아서 온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우월감이 만들어낸 착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착각은 현재 우리나라의 다문화운동에도 만연되어 있고, 이주민들의 범죄는 이미 우려할 수준을 넘어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지만, 최근의 TV프로에서 보듯이 균형 잡힌 전체적 시각이 아니라 한쪽만 부각시키고 미화되며 덮어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사회적으로 투명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것은 다문화운동이 도덕적이며 선행(善行)으로 비춰지므로 공개적 입장에서 비판하기 어렵고, 둘째는 국가예산을 받아서 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사업으로서 충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다문화는 반드시 함께 살아가는 쪽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다문화의 발생은 소위 말하는 경제선진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제적 여유가 저출산 고령화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국가발전에 필요한 인구구조가 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든다면 3~4명 정도의 자녀를 둔 대다수 70~80대 부모들이 자녀들로부터 봉양을 받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되었고 국가의 복지혜택 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정책으로 태어난 2명 자녀 세대들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들의 출산율은 더 떨어져 1.3명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출산율을 단순수치로 계산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3명의 자녀가 4명의 부모세대를 책임져야 하며, 고령인구가 누적되는 초고령사회에 있어서는 그 부담은 몇 갑절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위와 같은 인구구조에서는 출산율증가의 노력만큼이나 이주민들의 노동력은 국가미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자본을 따라서 들어온 이주민󰡑 즉, 자본을 따라 다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국가사활이 걸린 문제임은 분명하다.

이주민들을 받아들여야만 국가가 유지될 지경에 다다른 우리 사회는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함께 살아가야할 이주민들의 문화 특성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같은 한옥이라도 사찰과 향교는 유교와 불교의 이념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사찰은 극락이라는 이상향의 세계를 상징화하여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미는 반면, 향교와 사당은 사치를 배격하고 절제와 지조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을 담아서 간결하고 소박하게 지어졌다. 이때의 한옥은 공간(자연환경)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결과물로써 유교와 불교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미쳤다면, 사찰과 향교의 건축양식은 각자의 가르침을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다문화에 비유한다면 영하 40C˚~50C˚에서 생활하던 러시아 사람은 한국의 겨울날씨를 포근하게 여겨 옷을 가볍게 입고, 반대로 적도지방에서 살던 사람은 따뜻한 봄 날씨에도 겨울옷으로 중무장을 해야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외부적 조건에 따라 입는 옷이 달라지듯이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방식을 한국사회에 맞게 바꾸어나가도록 유도하고 우리문화를 이해시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 없이 벌어진 현상만을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필자는 수년 전 다문화의 현장인 원곡동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이들은 한국을 돈 버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한국의 제도와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돈을 따른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다문화운동이 자칫 이주민들의 불법과 탈법을 동조 내지 보호하는 꼴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을 목적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이 자본보다 더 중요한 행복을 배우고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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