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는 대통령의 허리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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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벨트는 대통령의 허리띠가 아니다
  • 김용일
  • 승인 2011.03.12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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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충청민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충청민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속을 뒤집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국제과학벨트 가로채기로 충청의 민심을 우롱하더니, 구제역, 치솟는 물가, 전월세 대란, 실업난 등으로 국민의 속을 뒤집으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집권당의 지지율은 두 달 연속 하락하고 있고 대통령의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잡겠다던 물가는 미쳐 날뛰고 서민들은 비명을 지르는데 대통령은 '물가 문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 모르쇠다. 경제를 살리겠다더니 나라 빚은 제2의 IMF 사태를 걱정할 지경이고, 실용을 부르짖더니 남북 관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간다. 4대강 공사로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녹색성장을 외친다. 이러니 '친서민'이나 '공정사회'란 달콤한 말에도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늘 이렇다. 안 한다고 했다가 해야겠다, 잘 하겠다고 했다가 내 탓이 아니다, 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하지만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저버리면서도 국민을 향한 설득의 노력은 없다.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을 취소했다고 보수언론에게조차 욕을 먹는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은 이 정권의 많은 나쁜 점 중에서도 특히 나쁜 점이다. 󰡐모르쇠󰡑야말로 대통령과 이 정권의 성격을 잘 집어주는 말 아닌가.

이 정권은 지난 달로 3년을 채웠다. 지난 3년이 '악몽'같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뿐일까. 부자들과 대기업과 자기 지역만을 챙기면서 민생을 무너뜨리고 서민을 절망시킨 3년, 삽질경제 약속에 속아서 이러한 정권에 모든 희망과 재산과 인권을 내 주고 버텨 온 3년, 그러나 끔찍하게도 아직도 이년이나 더 남았다. 이 모든 불행이 신뢰의 상실, 약속 불이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은 신뢰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설 자리를 갖는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신뢰가 대통령에게는 꼭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의 말은 "과학벨트 추진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한 이후에 결정될 것이니까 그 이전에 정치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인데, 미안하지만 그 발언 이전이나 이후에나 과학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미 나와 있다. 모든 면을 검토해 보아도 충청권, 그 중에서도 세종시가 최적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충청권에 공약했고 전문가집단도 충청권을 적지라고 판단하는 마당에 왜 새삼 이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일까. 어쩌면 이번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 백지화 논란은 정권 차원의 교묘한 대충청민 기만술일 수도 있다. 세종시 사태와 마찬가지란 얘기다. 다음 총선과 그 다음 대선을 노린 '보따리 챙겨두기'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금껏 당연히 올 것으로 여겨지던 과학벨트 말고는 이 정권이 충청권에 생색 낼 일이 더는 없다. 그러니 이를 잠시 빼앗아두었다가 차기 총선이나 대선의 여당주자에게 그 보따리를 들려 보내서 충청권의 표를 얻겠다는 꼼수라는 것이다.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너희는, 충청권은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구제역 사태와 치솟는 물가로 온 국민이 고통스러울 때도 자신의 고향에 눈 많이 온 것이 더 걱정스러운 대통령이니 이런 상상도 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국제과학벨트는 대통령의 허리띠가 아니다. 대국민 약속인 공약은 옷 갈아입듯이 아무 때나 메고 아무 때나 풀어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대통령은 지역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민심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당하게 만드는 과학벨트 입지 재검토 발언을 즉각 취소해야만 한다.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입지 선정을 충청권에 확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충청권 과학벨트공약은 자신의 원래 약속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벨트는 아무데서나 풀어도 안 되고, 아무데서나 매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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