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행복
상태바
만원의 행복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6.09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주머니 속에 어떤 형태의 모바일이든 하나씩 넣고 다닌다. 물론 나 같은 승려들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검소하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수행자들이 너무나 세속적인 호사를 누린다고 한다.

무소유란 무엇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들을 소유하지 않음이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과 재산에 대해서도 집착을 놓아버림을 말한다. 지금 밖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다. 산사가 높은 곳에 위치해서인지 약간의 번개에도 누전차단기가 떨어지고 인터넷케이블을 타고 들어와 컴퓨터의 랜카드를 못 쓰게 하거나 메인보드를 망가뜨린다. 작년에는 외출하면서 전기선을 분리하지 않은 딱 한 번의 실수로 메인보드를 교체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전기선과 인터넷케이블을 빼어놓고 노트북에 내장되어 있는 배터리에 의존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신문사로 보낼 때까지 기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가서 전송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내고, 뉴스와 각종정보를 검색하는 컴퓨터는 호사를 누리기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일상이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편리함의 추구는 탐욕이라는 뿌리를 두고 있어 자칫 나태와 게으름으로 이어지지만, 지혜의 측면에 있는 효율성은 일의 능률을 높여주므로 추구해야한다. 그래서 ‘제도할 중생(세속)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치를 지니는 출세간(승려)’은 효율적 입장에서 세속의 변화와 함께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세간의 본분인 세속을 제도할 수 없다.

작년부터 시작된 설법 전 이전불사가 마무리되어 공사업자들이 떠난 지금, 혼자서 인부들이 미처 살펴보지 못해 거칠게 마무리 된 곳을 구석구석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모바일과 작업에 필요한 작은 공구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 승복바지에는 본래 주머니가 없다. 그래서 조끼주머니에 공구를 넣었더니 작업용 조끼가 아니어서인지 사다리를 오르거나 몸을 구부렸다 펼 때면 주머니가 걸려서 위험할 뿐 아니라 통이 넓은 바지도 한 몫 하여 여간 불편 한 게 아니었다.

마침 시내에 나갈 일도 있고 작업복 바지를 하나 살 겸, 망해서 70%를 세일한다는 플랜카드가 걸려있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매장은 망했다고 보기에는 비교적 깔끔했고 옷들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쇼핑에 서투른 탓도 있겠지만 70%세일이라는 플랜카드만 생각하여 가격표는 보지도 않고 맘에 드는 바지하나를 골랐다. 일단 입어보라는 종업원의 권유에 따랐고, 몸에 잘 맞았다. 하나 더 골라서 계산대에 갔더니 바지 하나에 6만7000원씩 이라고 했다.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가격에 놀라, 무슨 죄라도 지은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너무 비싸서 못 사겠노라며, 유명메이커라서 그렇다는 종업원의 친절한 설명을 뒤로하고 황급히 빠져 나왔다.

문득 옷을 파는 도로변 노점이 생각났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잠시 전의 사건을 기억하며, 세 장에 만원이라는 글씨를 보면서도 내심 ‘저것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형편없는 미끼상품일거야’ 하면서 ‘최소한 한 장에 만원은 하겠지’ 라며 바지 한 장을 골라, 주인아저씨께 내밀었다. 주인아저씨는 계산은 하지 않고 치수를 살피더니 모양과 색깔이 다른 것을 몇 장 더 가지고 오시더니 두 장을 더 고르라며, 바지가 맘에 안 들면 티셔츠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로 만원에 바지 세 장을 샀다.

만원에 바지 세 장이 며칠 동안 기쁘게 했다. 왜냐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기분이 좋다고 설명하며 하나를 선물하고도 입지 않은 새 것 한 장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6만7000원의 바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지가 가지는 기능과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 비싸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며칠 지나면 시들어 보기 흉하게 변한다. 그것은 아름다움 속에 시든다는 속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 속에 내재되어 있는 추함이 들어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할 때 유지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미 치료적 성격에서 시작된 성형수술이 미인 만들기의 상업의료로 변질된 지 오래되었고, 명품족이니, 된장녀니 하는 말들이 겉모습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부자들은 서민들에게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의 명품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성형미인, 명품족, 돈으로 서민들의 기를 죽이는 부자 등 이러한 모든 것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한낱 물건과 겉모습에 자신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