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와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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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와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 최철수(전 천수한의원 원장)
  • 승인 2011.07.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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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라 함은 돈과 지위보다는 먼저 사람이 존중 받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인데 이러한 사회는 말과 같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 철학적 사고와 각성된 시민의 사회정치적인 의식과 문화적 바탕이 없이는 지난날의 독재시대에서와 같이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등의 일시적인 정치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를 한번 고찰해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통하여 어느 사회에서든지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은 항상 대접을 받아 왔다. 문제는 돈이나 지위가 없는 사람도 사람대접을 받고 그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라야 진정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있고 지위 있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 돈과 지위가 대접을 받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가 돈과 지위를 잃으면 당장 그 대접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이 대접을 받는 다는 것, 즉 사람을 대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사람을 볼 때에 오직 그의 돈이나 지위만을 보지 말고 그의 말과 행동을 함께 보아서 평가하고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그의 돈과 지위를 떼어놓고 볼 때에라야 그의 진면목이 보이는 것이다. 그의 말과 행동을 보아 그 사람의 진실됨을 보아야만 인정이 생긴다. 마음속으로부터의 존경이나 동정이나 사랑이 생긴다.

대체로 없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갖는 것이 인정이다. 따뜻한 마음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무시하는 것은 인정이 아니다. 선량한 마음이 아니다. 거짓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되듯이 그 사람의 진실 됨은 보지 않고 오직 돈과 지위가 없다는 것으로써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도 또한 악의 근원이다.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속에는 돈과 지위만을 우선시하는 탐욕심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돈과 지위가 있는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고, 없는 사람은 멀리하려고 하는 것은 자기 과시욕에서 비롯되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기는 하겠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까지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냉혹하고 비정한 사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이 욕심과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때에는 그 마음은 비양심이다. 욕심과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은 때의 마음이 양심이다. 평정한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 양심적인 상태일 때에는 진실된 말이 나오고 비양심적인 상태일 때에는 거짓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거짓을 유발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돈과 지위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부당한 돈이나 지위를 경계함으로써 평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란 진실된 사회이고, 돈과 지위가 대접받는 사회는 세력만을 쫓는 사회, 거짓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직 돈과 지위만을 쫓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진실된 사회가 아니다. 따뜻한 인정이 흐르는 사회가 아니다. 때문에 부유한 나라가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때에 생기는 감정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짓은 남을 속이지만 부지불식간에 자신도 속이게 되는 것이다. 거짓에 얽혀서 자신의 마음도 헝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헝클어진 상태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란 인간이 인간을 무시하지 않고 배척하지 않고 서로의 인격과 사상을 존중하며, 돈과 지위에 관계없이 양심과 법에 따라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공정하고 거짓이 없고 따뜻한 인정이 흐르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돈과 지위가 인정받지만 반면에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노동자의 인격도 함께 존중받는 사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통치자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사람의 마음이 욕심을 따라 편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공정하고 정직하고 선량한 상태가 되어야만 가능할 수 있는 현실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사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나 사상을 종교적인 면으로 말한다면 이것이 다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의 말씀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인데 이것을 정치적인 면으로 추구하려하면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이 사람이 좌파이거나 심하면 무슨 빨갱이가 아닌가 하는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고정관념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사회는 바로 이러한 사회이며 이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곧 공산주의 사회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인류애의 정신이나 애인휼민(愛人恤民)의 사상은 공산주의가 출현되기 이전에 이미 종교나 학문의 형태로 유구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가 이것을 권력의 형태로 독점하려 함으로써 새로운 공산 독재가 생겼고 이 독재가 인류의 불행을 초래한 것이었다.

평등에만 집착하는 공산주의의 편협성이 같은 인류인 유산자를 증오하는 모순에 빠지게 하였고 이것이 오히려 인류애의 정신을 훼손하게 된 것이다. 인류애의 정신에서 공산주의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공산주의가 인류애를 실현시킨 것은 아니었다. 공산독재는 인류애의 가면을 쓴 새로운 독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가 출현된 이후에 인류애의 정신이나 인류평등의 대의를 따르는 양심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 거꾸로 부도덕한 세력에 의하여 특히 우리 남한에서는 북한이 공산화됨에 따라 이를 빌미로 한 친일 반민족 세력에 의하여 좌파나 빨갱이란 이름으로 몰리어 제거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고, 이렇게 되어 친일 반민족 반민주세력이 권력을 잡아서 이 나라의 주류세력으로 군림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몽매하고 비인간적인 김정일 공산 독재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우리는 그들을 깨우쳐서 그들의 민주화를 돕고 나아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류애의 정신에 바탕을 둔 우리의 민주주의와 오직 사유재산제도를 없애려는 공산주의의 실체를 정확히 판별하여 좌우의 이념에 몰입된 잘못된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할 것이며, 더구나 권력을 위하여 반대파나 남북의 화해를 주장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 부치는 범죄행위는 더 이상 저지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성을 회복하여 남북의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욕하고 증오하는 어리석음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아무리 경제성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민주화된 서구의 선진 문명국의 반열에는 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이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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