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야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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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어야 여유롭다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7.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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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나라의 명문장가인 소동파(蘇東坡)는〈춘야행(春夜行)〉이라는 시에서 한가로운 시간(春宵一刻値千金 봄날, 달밤의 한 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 얼마나 멋들어진 표현인가! 꼭 꽃피는 봄 날 달밤이 아니더라도, 차 한 잔 내리며 고단한 하루의 일상을 내려놓고, 또 다른 나를 관찰해보는 여유는 누구에게도 있으련만, 나 역시 시계를 보면서 내일 아침 일어날 시간을 미리 계산하여 이부자리를 편다.

손전화의 액정이 이따금 보이지 않더니 며칠 전부터 아예 먹통이 되어 전화를 할 때면 일일이 수첩이나 명함을 뒤져야하고, 문자알림은 전혀 볼 수 없어 여간 불편 한 게 아니었다. 주위 분들은 “스님, 보상판매가 되니 이참에 좋은 것으로 바꾸세요”하고 몇 번이고 권했지만 속으로 아무리 보상판매라고는 하지만 거저 주는 법은 없을 텐데, 하면서 불편한데로 살다보니 나름대로 적응이 되어갔다.

가깝게 지내는 시주님이 나의 주머니 사정을 알았는지 조심스럽게, 동생이 1년 전에 구입한 최신식(?) 전화가 용도에 맞지 않아 두어 달 사용하다가 그냥 두고 있는데, 괜찮다면 그것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며 물어 왔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전화기는 예전 것에 비하여 참으로 많은 기능들이 들어있었다. 그 중에 우선 덮개를 덮어도 시간을 볼 수 있는 큼지막한 화면이 마음에 들어 시계부터 맞추기로 했다. 시계선택에 들어가니 ‘디지털시계’와 ‘아날로그시계’가 있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번갈아 화면을 꾸며보면서 바쁘게 사는 것과 여유롭게 산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날로그시계를 택했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시계의 숫자에 길들여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약속장소에서 누구를 기다릴 때면, 정해진 시간의 숫자가 바뀜과 동시에 전화를 걸게 되고 상대방이 ‘몇 분 뒤에 도착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할라치면 잠시라도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좀 전에 통화했던 시간을 찾아내어 시간을 계산해보는 습관 등등…….

아날로그시계가 일반적으로 사용 될 때는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 모두 앞뒤 5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시계가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정확히 숫자로 시간을 표현한다. 물론 고속철도가 달리고, 광케이블통신으로 초(秒)를 나누어 사용하는 현장에서의 5분의 여유는 지구를 수 십 바퀴 돌아 올 만큼의 오차가 생겨 큰 사고가 나겠지만, 일상에서는 그리 급박하게 다투어야 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인들은 시간에 매여 살다 못해, ‘時테크’라는 말처럼 ‘시간은 돈이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실속 없이 그저 바쁘게 피곤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퇴근은 물론 신명풀이를 하려고 들어간 노래방에서도 시간에 맞춰야 하며, 설령 길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시간에 쫓겨 가볍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일상의 연속이니 말이다.

‘시테크’의 개념은 주자(朱子)의 권학문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봄풀은 꿈을 아직 깨지 못했는데 계단 앞 오동잎이 이미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라고 나오는 아주 고전적 개념이다.

“봄날, 달밤의 한 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라는 소동파나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 하여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라는 주자나 현대인들이 말하는 ‘시테크’ 모두 바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가르침은 분명한데,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을 그저 바쁘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시간을 나타내는 한문의 시(時)자는 절에 사는 스님들의 일과를 형상화하고 있다. 일탄지(一彈指)의 시간까지도 소홀하지 않는 스님네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늦은 9시에 일과를 마친다. 이렇게 절 집의 하루는 빽빽한 듯 보이지만 숨을 몰아 쉴 만큼 바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리를 쭉 펴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각자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통제하며 적당한 긴장감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여유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이렇듯 여유 있는 삶은 물론, 시간이 돈으로 변하는 데는, 숫자로 표현되는 급박한 시간이 아니라 한 숨 쉬어 가는 느긋함 속에 매 순간 순간 자신을 놓치지 않고 알차게 살아가는 깨어 있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요즘은 필자도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짧은 시간 너무나 빨리 변화하는 세상을 보면서 여유를 가져보자는 생각에서 몇 해 전에 썼던 글을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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