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어도 대한민국의 역사에 있어서 민중은 언제나 패자이다.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 등으로 잠깐씩 승자가 되어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고, 민주주의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 정권을 거푸 탄생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친일·친미의 불행한 과거사를 온전히 정리하지 못한 탓에 세상권력은 늘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무능한 통치권력 때문이며,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은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이다. 무능한 권력의 특성은 강한 외세에 대해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체면 없는 사대(事大)를 하고, 약한 백성들에게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것이다.
조선의 예에서 보듯이 사대(事大)와 가렴주구는 반드시 망국으로 이어진다. 사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명분이며, 가렴주구는 권력의 무자비한 횡포이다. 사대는 이소사대(以小事大)를 말하는 것으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의미 외에도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섬긴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조선과 한국의 주류세력들은 명나라와 일본·미국에 사대하고, 명나라는 중화(中華), 일본은 개화(開化), 미국은 반공(反共)을 내세워 침략과 지배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시작으로 친일·친미의 사대주의자들이 다시금 부활하여 남북관계를 긴장시키고, 서민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더니 급기야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일본이 세운 만주국장교로서 가장 악랄하게 독립군과 독립군을 후원하는 우리 동포들을 학살했던 간도특설대 장교인 백선엽을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일본의 패망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승리이며, 6·25를 남북전쟁으로 규정하고 반공을 정의로 내세우는 것 역시 사대주의적 발상이며 순진한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전쟁에 있어서 승패의 관건은 그 나라의 주력부대의 향방에 달려 있다. 그래서 군사전문가들은 일본의 패전 원인은 주력부대인 관동군이 만주에서 발이 묶여 일본군 전체 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전쟁에 끼어 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KBS가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백선엽은 일본의 주구가 되어 관동군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던 독립군과 간도의 선량한 조선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백선엽이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이유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계승하고 있는 미국이 세웠던 극동전략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극동전략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를 지배하게 되면 경제시장을 장악하는 것이고, 둘째는 조선의 실질적 지배였다.
그래서 미국은 이승만을 내세워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출범을 돕기 위해 미·소가 협력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엉뚱하게도 ‘신탁통치’로 왜곡하여 민중을 혼란에 빠뜨렸으며, 여기에 반공을 내세워 친일파에게 친미의 명분을 주는 동시에 그들과 손잡고 (남·북)단일정부를 열망하던 인사들과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여 남북분단을 초래했고 백선엽 역시 여기에 동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6·25는 앞서 말했던 사대와 가렴주구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그래서 6·25의 이데올로기인 반공은 미국의 정치적 명분이었으며, 미국의 주구들은 반공을 명분삼아 독립운동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한편 친일행적을 감추어서 애국자로 둔갑했고, 지금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정당화하기 위해 완전한 독립이라 할 수 있는 통일을 외면한 채 영원한 분단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인터넷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왜 KBS는 이 시점에서 백선엽에 이어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까지 영웅으로 만들려 하고 있을까? 여기에서 잠시 세상의 한 축인 경제로 돌아가 보자. 우리 국민들의 상당수가 반공교육을 받았고, 박정희의 경제개발에 대한 향수가 있으며, 일본자금을 지원 받아 활동하고 있는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역사관을 적극 지지하는 곳이 ‘대한상공회의소’이다. 이것은 사회의 실질적인 힘이라 할 수 있는 경제 역시 이승만, 백선엽과 같은 맥락에서 성장했음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위에서 말한 친일·친미세력의 부활이었으며, 이들은 과거와 같이 언론만 장악하면 자신들의 세상이 된다는 착각에서 방송과 신문을 장악했지만, 두 번의 보궐선거에서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언론의 위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며 젊은 층들의 무서움을 경험했다. 그래서 연평도사태와 천안함사건으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은 반공 논리로 민중이 가지고 있는 애국심을 자극하고, 인터넷과 모바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계층을 결집하여 친일·친미정권을 유지하려는 마지막 수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